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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규제보다는 의식의 변화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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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규제보다는 의식의 변화가 먼저다

동아일보입력 2014-06-03 03:00수정 2014-06-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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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로 인해 생긴 국민들의 상심이 큰 만큼, 정부 조직의 큰 변화가 발표 됐다. 박 대통령의 담화문에 언급되었듯이 인간(선장, 회사, 해경, 관피아)이 사고의 원인이었다. 동시에 인간(세월호의 영웅들)에게 희망이 있었다.이런 인간과 조직이 안전 시스템에 미치는 연구들이 심리학, 사회학, 인간공학 분야에서 지난 30년간 많이 진행되어 왔다.

●인간이 사고의 원인이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불완전한 인간이 복잡한 시스템과 제도들을 만들고 운영한다. 그러다 보니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게다가 인간은 되도록 쉽게 일을 하려고 한다. 조직은 저비용으로, 단기 성과를 목표로 일을 한다.

만일 우리가 맡은 작업에 대해 안전 규제를 살짝 어기고도 안전사고 없이 좋은 성과를 내면 더 무사 안일해지고 대충, 작은 비용으로, 신속하게 일을 하려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그러다 안전사고가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예일대의 사회학자인 찰스 페로우 교수는 30년 전 ‘정상적인 안전사고(Normal accident)’라는 책에서 항공, 선박, 화학 공장, 핵발전소 같이 특별히 복잡한 시스템에서 안전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2003년 우주 왕복선 컬럼비아호가 텍사스주 상공에서 공중분해된 사고는 기술결함에 의한 것만이 아니었다. 2006년 아프칸에서 영국군 정찰기가 추락한 사고도 마찬가지다. 일정 지연 없이 신속히 그리고 더 작은 예산으로 해야한다는 압력 때문에 인간이 잘못된 결정을 하였다.

제한된 자원 아래 다양한 가치와 목적의 타협을 이뤄야 하는 인간 사회에서, 아무리 안전 규제를 잘 만들고 잘 지키는 선진국이라 해도 안전사고는 계속 일어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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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를 막는 것도 인간이다

역설적이게 들리겠지만 그래도 인간만이 희망이다. 미국의 전 국방장관 럼스펠드가 말한 것과 같이 우리가 사는 복잡한 세상에는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위험 요소가 많이 존재한다. 게다가 창조 지식 경제 시대에서는 우리가 예상 못하는 위험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과감하게 도전해야 될 때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위험 요소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상황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하는 인간에게 희망을 걸 수 밖에 없다. 맨체스터대학의 심리학자 제임스 리즌 교수는 ‘인간의 기여(human contribution)’에서 인간이 안전사고에 잘 대응할 수 있는 자질로 훈련과 리더십, 철저한 직업적 사명감 그리고 직관에 의한 임기응변을 꼽았다. 인간의 이런 양면적인 역할을 고려할 때 규제와 처벌만이 모든 걸 해결하지 않는다. 어떤 해결안이 있을까.

●조직 회복 능력이 관건이다

복잡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가운데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장 경제에서 안전을 개선, 유지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은 조직 회복력(resilience)이다. 단순히 선형적으로 규제하고 처벌하는 것만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되면서, 전체 조직 회복력이 중시됐다.

덴마크 남부대 인간 공학교수 에릭 호나겔 교수가 제시한 조직 회복 능력이란 조직이 사고 발생 전에 징조를 미리 감지하여 대응할 수 있는 능력과 사고 발생 후에 객관적인 분석을 통한 학습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안전 사고가 발생하기 전 사고 잠복기가 있다. 그 기간에는 여러 형태의 경고 메시지들이 발생된다. 예를 들어 미미한 안전 사고, 직원들의 태만, 고객의 불만 같은 것들이 점점 빈번하게 또는 점점 더 큰 강도로 나타난다. 어떤 메시지에 대응할지, 또는 간과할 지는 그 조직과 구성원의 의식과 가치에 달려 있다.

이런 의식과 가치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경고 메시지를 무시하여 대형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려면 적절한 경고 메시지들을 미리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는 조직의 능력과 환경을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민간 항공업계는 지난 40년간 승객의 안전도를 10배 이상으로 향상시켰다. 이는 여러 노력들의 결과이지만, 독립적인 안전 관리 기관의 역할이 주효했다. 기관은 경고 메시지를 여러 경로로 수집했다. 과거의 데이터를 바탕으로지속적으로 항공사들에게 사고의 위험을 경고했다. 항공업계는 이렇게 철저하게 경고 메시지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능력과 환경을 갖추게 된 것이다.

●사고 이후가 중요하다

이렇게 초기 대응을 열심히 해도 안전사고는 여전히 발생한다. 그러므로 조직 회복력의 또 다른 핵심은 안전 사고가 발생한 뒤 그 원인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여 배울 수 있는 능력이다. 사고가 난 뒤 단순히 책임소재만을 따지거나, 정치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해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 이래서는 진정한 교훈을 얻지 못한다.

대형 사고뿐만 아니라, 가까스로 발생을 피한 안전사고, 작은 실수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배울 수 있는 능력과 환경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특별히 잠재 위험 요소가 많은 산업의 경우엔 사고뿐만 아니라 실수를 통해 학습하는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예를 들면 영국 의료 시스템은 국가 환자 안전청(National Patient Safety Agency)의 국가 의료사고 및 실수 보고 학습 시스템(National reporting and learning system)을 활용하고 있다. 민간 항공 시스템은 유럽 항공 안정청(European Aviation Safety Agency)의 항공 관련 실수 경영 시스템(Aviation error management system)을 운영한다.

실수를 수집, 분석, 학습하여 예상하지 못했던 안전 개선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한 능력과 환경을 조성하려는 노력이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실수 보고 시스템의 적용 과정을 통해서 정직한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고, 각자의 실수경험을 나누고, 같이 배워서 안전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안전 문화와 의식을 바꾸는데 더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의식과 문화를 바꿔야 한다…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고

진정한 조직 회복력을 갖추려면 개인, 회사, 정부가 모두 같이 참여하여 안전 문화와 의식을 바꿔야 한다. 몇 십 년간 성장과 경쟁,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 있는 우리가 안전 위주의 문화와 의식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영국과 미국에서 환자 안전 문제가 대두되었던 2000년 초반. 환자 안전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과 문화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가 화두였다. 당시 필자가 참가한 환자 안전 관련 국제 학회 기조 연설의 주제는 ‘환자 안전 개선을 위한캠페인을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역사상 가장 끈질긴 사명감을 가지고 노예 무역 금지 캠페인을 벌였던 영국의 정치인 윌리암 윌버포스로부터 무엇을 배울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윌리암 윌버포스는 ‘어메이징 그레이스’라는 영화로도 대중에게 소개된 인물로, 1800년대 초반 영국에서 노예 무역을 금지하는 법안을 성공적으로 통과시킨 정치인이었다. 당시 노예 무역은 대영 제국 경제의 근간이었다. 법안을표결 할 대다수의 국회의원들은 노예 무역을 통해 막대한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 영국 국민들은 머나먼 캐리비안에 있는 노예들의 고통에 대해 무관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윌버포스는 20년동안 사명감을 가지고 매년 법안을 올렸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캠페인 전략 및 방법을 만들고 활용했다. 이렇게 해서 당시로선 전혀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을 해낸 것이다.

미국은 2000년 중반부터 ‘십만 명 생명 살리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의료 사고로 매년 사망할 수 있는 생명을 구하자는 캠페인을 구체적인 숫자와 시간을 목표로 정해서 시작했다. 영국도 ‘환자 안전 우선 캠페인(Patient Safety First)’을 벌인다. 이 캠페인에선 잘못된 부위 수술, 수술 후 의료 기구 봉입 등 절대 발생하면 안될 의료 사고(Never events) 여덟 항목을 정하고, 여기에 집중하면서 병원의 의식과 문화를 하나씩 바꿔가고 있다.

●신념과 해결책을 향한 긴 여정을 시작해야

상투적인 문구 같지만 이제는 세월호와 같은 여러 안전사고를 둘러싼 분노와 비방의 에너지가 신념과 해결책을 향한 긴 여정을 출발하게 하는 에너지로 승화되어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싶다.

새롭게 안전을 맡게 될 국가안전처와 같은 정부 기관이나 회사들은 단순한 규제와 처벌 강화에만 집중해선 안 된다. 유기적으로 복잡하게 연결된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인간의 긍정적인 역할을 고려하여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경고 메시지에 대해 적절하게 대응하고 사고와 실수를 통해 지속적인 학습을 할 수 있는 환경 말이다. 규범적인 규제와 더불어, 캠페인을 통한 사회적인 제약과 자발적인 제약이 같이 만들어져 개인의 의식과 문화의 변화도 시작되길 빈다.

현실적으로 안전 사고는 완전히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만, 좀 더 드물게 발생하고, 발생하더라도 대참사로 이어지지 않는 대한민국을 다 같이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다. 이 목표는 절대로 저절로 달성될 수없다는 것을 잊지 말자.

전규찬 교수·영국 러프버러 대학, 러프버러 디자인 스쿨
Human Factors and Complex Systems Research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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