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고이즈미 무릎굽혀 사죄한 역사현장 되살리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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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주민들 ‘독립공원 순국열사 추모비’ 복원 청원
2001년 방한때 식민지배 반성 참배… 2009년 철거후 추모조형물로 대체
“아베 우경화 경종위해 흔적 남겨야”

2001년 10월 15일 한국을 방문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가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독립공원 추모비 앞에서 헌화하는 
모습(위 사진). 역사적 사건을 목격한 이 추모비는 2009년 철거되고 ‘민족의 혼 그릇’ 추모 조형물로 대체됐다. 동아일보DB·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제공
2001년 10월 15일 한국을 방문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가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독립공원 추모비 앞에서 헌화하는 모습(위 사진). 역사적 사건을 목격한 이 추모비는 2009년 철거되고 ‘민족의 혼 그릇’ 추모 조형물로 대체됐다. 동아일보DB·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제공
한일 공동 월드컵을 한 해 앞둔 2001년 10월 15일. 한국을 방문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일본 총리는 정상회담에 앞서 옛 서대문형무소 자리에 있는 ‘서대문독립공원’을 찾았다. 일제의 잔혹함을 재현한 지사 고문실 등을 둘러보고, 이곳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비 앞에 무릎을 굽혀 헌화하고 참배했다.

그는 추모비 앞에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안겨준 데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마음으로부터 사죄하는 마음으로 시설을 둘러봤다”고 말했다. 이어 “외세의 침략, 조국 분단 등 참기 힘든 곤경과 수난 속에서 (한국 국민이) 받은 고통은 나의 상상을 초월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일본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집권한 뒤 집단적 자위권을 공식 추진하고, ‘독일식 사죄 방식을 따를 수 없다’고 주장하는 등 우경화의 길을 걷는 상황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건이다. 하지만 이 같은 역사가 담긴 추모비는 현재 폐기돼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이에 서울 서대문구 주민들이 역사적 현장을 되살리자는 청원을 전개하고 있다.

추모비는 한때 철거 위기에 놓였던 서대문형무소가 1998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조성되면서 함께 건립됐다. 서대문형무소에서 모진 고문 끝에 목숨을 잃은 애국지사 400여 명 가운데 당시까지 공식 기록으로 확인된 유관순 열사 등 90명의 이름을 오석(烏石)에 금박 형태로 붙였다.

하지만 2009년 역사관을 종합 정비하면서 추모비는 철거되고, ‘민족의 혼 그릇’이라는 추모 조형물로 대체됐다. 박경목 서대문형무소역사관장은 “옛 추모비는 이름을 새겨 넣은 것이 아니어서 잘 떨어졌고, 추모비 자체도 많이 파손됐었다”며 “추모비를 만든 뜻을 훼손하려 한 게 아니라 더 잘 보존하기 위해 공모를 통해 새롭게 조형물을 조성했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역사의 현장을 보존해야 한다며 아쉬움을 보였다. 추모비가 바뀐 뒤 역사관을 찾는 사람들은 옛 사실을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역사관은 당시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 사진과, 논어(論語)의 한 구절인 ‘사무사(思無邪·마음에 사악함이 없다)’라고 적은 방명록을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지만 상설 전시는 하지 않고 있다.

청원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장태봉 목사(73·서대문구 연희동)는 “폴란드는 1970년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나치 정권하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장면을 조형물로 만들어 기념하고 있다”며 “우리도 역사적 모습을 살려 후세에 널리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민들은 고이즈미 전 총리의 참배 모습과 발언 등을 담은 동판 형태의 조형물이라도 세우자고 주장한다. 역사적 모습이 복원될 때까지 청와대, 총리실, 국가보훈처, 서울시 등에 탄원하고, 필요하면 모금운동도 전개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역사관 측은 “주민들의 뜻에는 원칙적으로 공감하며 필요하면 구체적인 방법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서대문구#독립공원 순국열사 추모비#고이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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