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중세의 감성 vs 근대의 감성 vs 현대의 감성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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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사회/최기숙 소영현 외 지음/380쪽·1만8000원·글항아리

감성(感性)이라…. 참 흔히 쓰는 말인데, 막상 정의를 내리자니 멈칫한다. 사전을 찾아보니 ‘자극이나 자극의 변화를 느끼는 성질’ 혹은 ‘이성(理性)에 대응되는 개념. 외부 대상을 감각하고 지각하여 표상을 형성하는 인간의 인식 능력’이란다. 다행히 이 책도 학술서나 철학책이 으레 벌이는 ‘개념 정의’에 진을 빼진 않겠단다. 고맙다! 호기롭게 펼쳤다가도 공자 왈 맹자 왈 수십 쪽 넘게 나와 조용히 덮은 적 많다. 연세대 국학연구원 HK(인문한국)사업단 소속 학자들이 3년 동안 함께 연구해 한 꼭지씩 논문을 맡은 이 책은 ‘비문자 언어’인 감성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존재해왔고 경험됐는지 그 실체 추적에 초점을 맞췄다.

게재된 논문 10개는 순서도 상관없고 선택도 마음대로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감성에 관심이 많다면 3장 ‘법과 감정은 어떻게 동거해왔나’와 4장 ‘살인사건을 둘러싼 조선의 감성 정치’를 읽어보면 좋다. 특히 3장은 15세기 장모인 정씨 부인과 사위 강순덕 사이에 벌어진 재산 분쟁을 통해 당시 법체계가 감정을 어떤 식으로 담아냈는지 고찰한다. 조선엔 소원(訴寃·원통함을 하소연하다)제도를 통해 백성의 억울한 감정을 처리하는 시스템이 있었다. 유교사상의 엄격한 질서를 근간으로 하되 인정(人情)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노력은 현대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쉬운 점도 있다. 중세와 근대를 소재로 삼은 글은 내용이 구체적이면서도 어렵지 않아 읽는 맛이 있다. 그런데 현대사회나 철학적 면을 다룬 장은 꽤나 난해하다. 2장 ‘도덕감정-부채의식과 죄책감의 연대’는 최근 국내 상황과도 잘 맞는 훌륭한 내용이나, 학자의 식견을 따라잡기가 벅차다. 살짝 학술용어를 줄이고 실생활을 담았으면 어땠을까 싶다.

사전 정의에도 나왔지만 과거 ‘반(反)이성’으로 여겨지며 홀대받던 감성은 최근 학계에서 주목받는 화두다. 특히 사회적 소통의 중요성이 커지는 이때, 감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는 건 반가운 일이다. 다만 이럴수록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진 말길. 감성사회가 또 다른 규정 틀이 되지 않길 바란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감성사회#감성#중세#근대#현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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