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조운선, 당시 연장-제작 방식으로 재현 구슬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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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마도 1호선’ 실물 복원 현장을 찾아

18일 전남 목포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옆 마당에서 홍순재 해양유물연구과 학예연구사가 복원 중인 마도 1호선의 저판(底板·밑바닥)을 대패질하고 있다. 고려 배는 선체를 아름드리 통나무를 그대로 쓰기 때문에 제작이 훨씬 어렵다. 목포=정양환 기자 ray@donga.com
18일 전남 목포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옆 마당에서 홍순재 해양유물연구과 학예연구사가 복원 중인 마도 1호선의 저판(底板·밑바닥)을 대패질하고 있다. 고려 배는 선체를 아름드리 통나무를 그대로 쓰기 때문에 제작이 훨씬 어렵다. 목포=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18일 오전 전남 목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을씨년스러웠다. 갤 거라던 일기예보와 달리, 가느다란 빗줄기가 연신 흩뿌려서일까. 본관 옆에서 목공 장비를 챙기던 한 연구원은 문득 바다를 바라보다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하긴 지금 누군들, 뭔들 손에 잡힐까. 2주일 전쯤 정한 취재 약속이었건만 서로가 심란하긴 마찬가지였다. “잘 왔다”며 손을 내밀던 소재구 연구소장도 몇 마디 나눌 틈도 없이 ‘진도 현장’ 상황을 체크하느라 바빴다. 연구소 소속 탐사선 ‘씨뮤즈 호’와 발굴선 ‘누리안 호’가 전날 세월호 사고 현장에 급파됐기 때문이다. 수중문화재 전용선이지만 뭐라도 도울 게 있을까 싶어서였다. 》

2010년 충남 태안군 근흥면 마도 앞바다에서 발굴, 인양된 마도 1호선의 부재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2010년 충남 태안군 근흥면 마도 앞바다에서 발굴, 인양된 마도 1호선의 부재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마도 1호선’ 바닥 골격이 세워진 옆 마당은 곧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마도 1호선은 고려시대 조운선(漕運船·정부 곡식을 옮기는 배)으로 2010년 충남 태안군 마도 앞바다에서 일부 선체가 발굴됐다. 함께 발굴된 목간(木簡)을 통해 1208년에 침몰한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달 25일 복원사업이 시작됐는데, 야외작업이라 이날처럼 비가 오면 보통은 일을 멈춘다. 하지만 이날 연구원들은 누구도 쉴 생각을 안했다. 쓱싹쓱싹, 다들 말도 없이 대패 소리만 처연하게 퍼져나갔다.

“속이야 뒤숭숭하죠. 다들 자식 키우는 아비 어미고, ‘바다 일’하는데…. 허나 험한 데서 고생하는데 우리라고 쉴 순 없지요. 게다가 이번 복원은 옛사람의 얼을 새로 찾는 일 아닙니까. 조상님들께 ‘피지도 못한 꽃들, 제발 살펴주세요’라고 빌며 못질 하나에도 정성을 쏟을랍니다.”(홍순재 학예연구사)

한반도 끝자락에서 별 주목을 못 받고 있지만, 마도 1호선 복원은 한국 선박 복원사(史)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될 사업이다. 1994년 ‘완도선’을 시작으로 연구소는 그간 배 4척을 복원했다. 하지만 추정 하나 없이 100% 수중 발굴한 유물과 문헌기록만을 바탕으로 고려 배를 다시 만드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당시 방식대로 거의 껍데기만 벗긴 지름 60∼70cm 아름드리 통나무로 배의 뼈대를 삼으며, 나무못으로 잇고 대나무 돛을 올린다. 소 소장은 “공정도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자귀나 대패, 끌과 같은 전통연장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냥 겉모습만 복원하는 게 아니라 당시 방식대로 바다에 띄워 항해할 수 있게 만드느라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올해 말 완성할 예정인 마도 1호선의 3차원(3D) 복원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올해 말 완성할 예정인 마도 1호선의 3차원(3D) 복원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복원은 준비기간만 2년 넘게 걸렸다. 마도 1호선은 부재 60여 편이 발굴됐으나, 주로 배 밑바닥 위주였다. 이 때문에 나머지 부분은 지금까지 발굴된 다른 고려 배 9척의 형태를 적용했다. 예를 들어 고물비우(船尾材·배꼬리 널판)는 ‘달리도선’과 ‘안좌도선’, 외판(外板·선체 외곽을 이루는 판)은 ‘마도 2, 3호선’을 기반으로 삼았다. 그래도 부족한 건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고려도경 같은 옛 문헌을 참조했다. 최근 ‘신안 보물선의 마지막 대항해’를 출간한 김병근 학예연구사는 “대나무 돛은 고려시대 거울인 ‘황비창천명경(煌丕昌天銘鏡)’에 그려진 배의 생김새를 따왔다”고 설명했다.

마도 1호선은 길이 15.3m, 폭 6.6m의 약 43t급 배로 올해 말 완성을 목표로 한다. 탑승인원은 15∼20명, 곡식은 가마니로 500∼800섬을 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난관은 남아있다. 무엇보다 나무 구하는 게 어렵다. 고려 배는 휘어진 부분을 굽은 나무를 통째로 썼는데, 한반도 낙엽송(적송) 가운데 맞춤한 걸 찾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연구원들이 강원 산간에서 1년 가까이 발품을 팔아 80%는 구했지만, 아직 더 찾아내야 한다.

“마도 1호선의 완성은 단지 고려 선박의 복원에 그치는 게 아닙니다. 이런 제작기술이 차곡차곡 쌓여 선박 복원 학자들의 마지막 꿈을 향해 달려가는 거죠. 최종 꿈이 뭐냐고요? 바로 충무공의 거북선을 복원하는 겁니다. 그날까지 연구와 시행착오는 계속될 겁니다.” (신희권 해양유물연구과장)

목포=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마도1호선#조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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