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재우고 테레비]“슬픔-분노 가라앉히려면… TV는 잠시 꺼두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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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하는 통합뉴스룸에는 TV 모니터가 많다. 취재 현장에 나가지 않을 때는 뉴스룸에서 여러 채널의 방송을 켜놓고 일한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처럼 불행한 사고가 났을 때 TV 시청은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다. TV 시청과 인터넷 서핑을 함께하는 것은 더더욱 권하고 싶지 않다.

세월호 침몰 사고의 발생과 구조 작업, 그 와중에서 벌어지는 혼란을 보다 보면 모두가 예민해지는 듯하다. 한 뉴스 앵커는 지금의 상황을 ‘정신적 재난’이라고 표현했는데 동의한다. 타인의 비극에 아파하면서도 도울 길이 없다는 사실에 우리는 무기력해진다. 관료들의 무능함과 엉뚱함, 속보 경쟁을 벌이다 발생하는 기자들의 잘못은 비참함을 넘어 분노를 키운다. 수많은 인터넷 게시글을 읽다 그 분노가 아픔과 더해져 무서우리만치 커졌다는 생각을 했다.

더 무서운 것은 이렇게 축적된 분노가 특정인을 향해 집단적으로 해소될 때다. 연예인은 대표적인 분노의 타깃이다. 오래전 확정해 놓은 대형 콘서트를 해야 하는 가수와 다음 달 콘서트를 앞둔 아이돌 그룹한테는 “이런 때 노래를 부르고 싶냐”고 화낸다. 희생자들을 위해 성금을 낸 연예인은 “이미지 관리한다”고 깎아내리고, 그렇지 않은 연예인에겐 “왜 기부 안 하느냐”고 따진다.

연예인들은 ‘동네북’이 되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린다. 예정된 영화 시사회나 음반 발매, 약속된 인터뷰도 줄줄이 취소하며 최대한 언론 노출을 줄인다. 연정훈 한가인 커플이 결혼 9년 만에 임신하고도 “국가적인 참사로 인한 애도 기간이어서 조심스럽다”고 했을 때 연예인으로 사는 게 꽤 힘든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그래도 축하해요, 한가인 씨.)

타인의 불행을 나눠 갖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는 일은 우리의 의무다. 하지만 정당하지도 조절되지도 않은 분노는 누구를 위로하지도 돕지도 못한다. 지금 우리에겐 슬픔과 분노를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잠시 TV를 꺼두는 게 좋겠다. 인터넷도 함께 말이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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