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기자의 히트&런]역발산 넥센, 역발상 ‘염갈량’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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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승 선착 이끈 염경엽 감독의 혜안


화투판에서도 뒷장 잘 붙는 사람을 이길 재간이 없다. 요즘 넥센이 그렇다. 잘되면 좋고, 안 돼도 그만인 패를 내는데 내는 족족 대박이다. 넥센은 15일 LG전에서 승리하며 가장 먼저 10승 고지에 선착했다. 이 덕분에 염경엽 감독(사진)은 다음 날 오전 3시에 편안히 잠자리에 들었다.(억울하게 진 날은 오전 5시에나 잠드는 게 보통이다)

대표적인 게 ‘포수’ 로티노(34)의 발견이다. 로티노는 10일 KIA와의 안방경기에서 처음으로 포수 마스크를 쓰고 선발 투수 밴 헤켄과 배터리를 이뤘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첫 외국인 배터리였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안정적인 포구와 공격적인 리드로 5-2 승리의 주역이 됐다. 송구에서 미숙함을 드러내긴 했지만 7회 결정적인 블로킹으로 3루 주자 김선빈을 잡아내기도 했다.

포수 기근에 시달리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넥센은 허도환 박동원에 이어 세 번째 포수를 얻게 됐다. 넥센은 앞으로 로티노를 밴 헤켄의 전담 포수로 기용할 계획이다. 16일 LG전에서도 로티노는 밴 헤켄과 배터리를 이뤄 또 한 번의 승리를 합작했다.

많은 사람이 넥센에 운이 따른다고 생각한다. 염 감독 스스로도 “운이 좋았다”고 했다. 그런데 과연 모든 걸 운으로 돌릴 수 있을까. 포수 로티노의 탄생 이면에는 넥센의 역발상이 숨어있다.

올 시즌부터 외국인 선수가 3명(NC는 4명)으로 늘면서 각 팀은 외국인 타자를 한 명씩 데려왔다. 팀 사정에 따라 포지션은 달랐지만 일단 ‘거포’를 원했다. 수비가 좀 떨어지더라도 ‘한 방’을 쳐 줄 수 있는 타자가 우선 선발 기준이었다.

넥센은 달랐다. 한 방이 아니라 출루율을 먼저 봤다. 다른 팀에서 뛰고 있는 용병들과 비교할 때 로티노는 이름값과 기록에서 크게 뒤진다. 메이저리그 통산 홈런은 겨우 3개에 불과하다. 그 대신 마이너리그 10시즌 동안 출루율은 0.362에 이른다. 게다가 포수로 305경기나 뛰었다. 로티노는 1루수, 3루수, 좌익수 등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유틸리티 플레이어지만 가장 많은 경기를 뛴 포지션은 포수였다. 염 감독은 “지난 시즌을 치르면서 경기 후반 대타나 대수비를 낼 때 포수가 부족하다는 걸 절감했다. 로티노라면 포수로서 충분히 1이닝 정도는 책임져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박병호가 있는 우리 팀에 또 한 명의 4번 타자는 필요치 않았다”고 했다.

로티노는 미국 애리조나 전지훈련 때부터 스스로 포수 장비를 챙겨 왔다. 포수 로티노는 오랜 계획과 준비 끝에 얻은 선물인 셈이다. 로티노는 11일 한화전에서 마무리 손승락의 공을 받아 세이브를 합작하는 등 한국 투수들과의 호흡에도 큰 문제를 보이지 않고 있다.

발상의 전환은 13일 한화전에서 고졸 데뷔 선발승을 거둔 하영민(19)에게서도 찾아 볼 수 있다. 2차 1순위로 올해 입단한 하영민에게서 선발 투수로서의 가능성을 본 염 감독은 개막전부터 그를 1군 선수들과 함께 다니게 했다. 비록 1군 엔트리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1군 선수들과 함께 먹고 자며 분위기를 익히도록 한 것.

대개 경기 직전 1군 호출을 받는 2군 선수들이 생판 다른 분위기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1군 선수 대접을 받은 하영민에게 1군 마운드는 그리 낯설지 않았다. 고교 시절 130km대 후반에 머물던 직구 최고 스피드는 넥센 입단 뒤 146km까지 치솟았다.

올해부터 필승조로 자리 잡은 신인 2년차 투수 조상우(20)도 마찬가지다. 조상우는 지난해 8월 25일 KIA전에 마지막 1군 선수로 등판했지만 이후에도 줄곧 1군과 동행했다. 왼손 손목 부상을 당한 또 다른 신인 내야수 김하성(19)도 요즘 1군 선수들과 함께 다닌다.

염 감독에게는 또 하나의 원칙이 있다. 실수나 실책으로는 절대 선수들을 질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선수 개개인마다 각각 수준이란 게 있다. 서건창에게 박병호를 기대할 순 없는 것 아닌가. 그러기 위해서는 선수의 능력치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다만 열심히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선수는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해 처음 지휘봉을 잡은 후 지금까지 염 감독에게 혼이 난 선수는 아직 단 한 명도 없다. 역발상과 철저한 준비야말로 업그레이드 된 넥센의 힘이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염경엽#넥센#로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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