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광표]책값과 교과서 값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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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표 정책사회부장
이광표 정책사회부장
70대의 황치영 할아버지는 늘 묵직한 가방을 둘러메고 다닌다. 가방은 교열 원고로 가득하다. 역사나 전통문화 관련 책을 내는 국공립 박물관이나 출판사들은 그에게 원고 교열을 맡기는 경우가 많다. 그의 교열은 꼼꼼하다. 특히 역사적 지명이나 인명, 문화재 이름, 각종 역사적 사건, 연대 관련 오류를 무섭게 잡아낸다.

그가 얼마 전 2014년판 초등학교 사회과부도를 들고 찾아왔다. 160여 쪽의 얇은 책이었지만 곳곳이 빨간 펜 교열 흔적이었다. 포스트잇도 빼곡했다. 몇 년 전에도 초등학교 사회과부도와 중고교 사회·역사 교과서를 들고 찾아온 적이 있다. 그때는 아예 교과서 오류를 공책 한 권으로 정리했었다.

그의 열정은 감동적이다. 이를 뒤집어보면 우리 교과서의 부실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단순 오류라고 말할지 모른다. 지나치게 자주 바뀌는 교과과정, 인력 부족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교과서 맨 뒷장을 보면 연구진 집필진 심의진 등의 이름이 나온다. 보통 30여 명에 이른다. 그 많은 사람들이 인명 지명 오류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다니.

사회과부도 같은 국정교과서의 경우 감수를 소홀히 한 교육부의 안일함이 크다. 더 근본적으로는 교과서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교과서에 대한 예의나 철학 없이 그냥 책을 만드는 것 아닐까.

서점에 가면 “요즘 책값이 너무 비싸”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조사에 따르면 2013년 국내 출판도서의 권당 평균가격은 1만4678원. 책 한 권이 대략 1만 원, 2만 원 하는 셈이다. 맥줏집에서 수입맥주 한 잔이 1만 원 안팎이다. 누군가에겐 수입맥주가 책보다 더 귀할 수 있겠지만, 책 한 권이 수입맥주 한두 잔 값에 불과한 현실. 우리나라 책값이 비싸다고 말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최근 교과서 가격을 놓고 교육부와 출판사가 갈등을 빚었다. 고등학교 교과서의 경우 출판사들이 제출한 권당 희망가격은 9991원이었다. 교육부는 이를 5560원으로 줄이라고 했다. 9991원은 서점에서 파는 일반 단행본보다 훨씬 저렴하다. 교육부는 “학생들이 사용하는 교과서는 공공성이 강하기에 저렴한 가격에 공급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출판사는 “제작비가 많이 들어갔기 때문에 내릴 수 없다. 이명박 정부 때 가격을 자율화해놓고 왜 이제 와서 말을 바꾸느냐”고 반박한다.

교육부의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교과서는 무조건 싸야 한다는 생각도 납득하기 어렵다. 혹, 교과서를 적당히 사서 쓰다가 버리는 학습교재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류는 여전한데 출판사가 지나치게 좋은 종이를 쓰고 디자인에 너무 신경을 써 값이 올라가게 한 것도 재고를 해봐야 한다.

교과서의 본질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를 잘 찾아 읽으면 우리 문학사에 빛나는 명시(名詩)를 두루 감상할 수 있다. 그것만 잘 읽고 되새겨 봐도 문학의 정수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손쉽게 시를 모아 시선집을 펴내면 그 책은 돈 주고 열심히 사 보면서도 국어 교과서는 좀 만만하게 생각한다. 씁쓸한 일이다.

교과서는 교재 그 이상이어야 한다. 인생을 가르치는 소중한 책이어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교과서를 만들고 그런 생각으로 교과서를 대해야 한다. 그래서 기꺼이 충분한 대가를 치르고 구입할 만한 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교과서도 당당한 책이었으면 좋겠다.

이광표 정책사회부장 kplee@donga.com
#황치영#교과서 오류#교과서 가격#학습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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