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뒷談]그많던 ‘싸이 친구’들은 어디로 갔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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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못읽은 원조 SNS… ‘1촌-도토리’ 대부분 떠나보내

“동문 주소록을 수첩 형태로 만드는 선배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30대 중반의 직장인 김영훈 씨는 인터넷이 확산되던 1990년대 후반에 대학을 다닌 덕분에 학교나 군대 친구는 물론이고 입사 이후 인맥 관리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해결했다. 회원 수첩을 만든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모임 특성에 맞춰 카페나 커뮤니티를 만들기만 하면 손쉽게 선후배들의 바뀐 연락처나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아이러브스쿨, 다음카페, 프리챌 등 여러 서비스 가운데 가장 정든 곳이 싸이월드(일명 싸이)”라며 “2003년 이후 10년 가까이 함께 해왔지만 이제는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등으로 갈아타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대부분의 지인이 ‘싸이’를 그만뒀기 때문이다.

15년 남짓한 국내 SNS 시장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당대의 트렌드에 따라 뜨는 서비스와 지는 서비스가 끊임없이 교차했다. 싸이월드는 이런 변화를 주도하면서 이용자들의 뜨거운 응원 속에 국내를 넘어 세계 시장을 넘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싸이를 주목하는 이들은 거의 없고 카톡, 밴드, 라인 등 모바일 메신저 얘기로 뜨겁다. 싸이는 왜 힘을 잃었을까.

SNS 원조 싸이월드의 몰락


“마이스페이스는 실명을 감추고 페이스북은 대학 캠퍼스 안에서만 통용되는 서비스입니다. 싸이월드는 마이스페이스보다 더 오프라인 지향이고 페이스북보다 더 열려 있습니다. 우리는 구글을 능가하는 기업이 될 겁니다.”(2006년 5월 미국 진출을 선언한 유현오 SK커뮤니케이션즈 사장)

싸이월드가 글로벌 원조(元祖) SNS라고 선언한 SK커뮤니케이션즈(SK컴즈)는 2005년 말 미국 일본 중국 등 해외 시장 진출에 나섰다. 만약 이 도전이 성공했더라면 오늘날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대표되는 글로벌 SNS 시장은 크게 바뀌었을지 모른다. 실제 싸이월드의 초기 성공 스토리는 미국 최초의 SNS인 마이스페이스(2003년)와 페이스북 등 후발 기업들에 영향을 미쳤다.

당시 인터넷 문화는 한국 업체들이 글로벌 트렌드를 선도한다는 인식이 널리 공감대를 얻었기에 가능한 도전이었다. 2003년 이후 ‘폰카’로 사진을 찍어 인터넷 친구들과 공유하는 ‘싸이질’은 국민적 놀이 문화로 정착했다. 그런데 미국 등 서구 시장에서 ‘셀피’로 불리는 폰카가 유행한 것은 2010년 이후로 우리보다 한참 늦다.

2004년 삼성경제연구소는 가입자 1000만 명을 돌파한 싸이월드를 그해의 히트상품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심지어 싸이로 인해 여러 어휘의 뜻까지 바뀔 정도였다. 부모와 자녀 간 촌수를 의미하는 ‘1촌’은 싸이월드에서 ‘온라인 친한 친구’로 변했다. 친구를 넓혀가는 ‘파도타기’나 가상화폐 ‘도토리’ 역시 시사 상식이 됐다. 2008년 가입자 3000만 명을 돌파한 싸이월드는 한 해 도토리 판매액만 800억 원이 됐다. 이 덕분에 회사의 시가총액은 1조 원을 넘나들었다.

그렇게 잘나갔던 싸이월드는 점차 해외 SNS 서비스에 안방을 내주기 시작했다. 동시에 싸이월드와 플랫폼을 공유했던 포털사이트 ‘네이트’의 검색 점유율은 1% 아래로 추락했다. 한동안 국민 메신저로 불렸던 ‘네이트온’도 카카오톡에 밀려 존재감을 잃었다.

최근 들리는 소식은 온통 잿빛이다. 9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한 SK컴즈는 3년째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벌이며 인력을 4분의 1 수준으로 줄이고 있다. 싸이월드를 비롯해 싸이메라 등 핵심 서비스는 올해 초 종업원인수(EBO) 방식으로 분사를 마쳤다. 싸이월드의 로고와 이름, 서비스는 그대로지만 직원 30명 규모의 스타트업 수준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인터넷 업계 관계자는 “2000년대 인터넷 사대천왕(四大天王)이 지배한 국내 포털 시장은 사실상 네이버의 천하통일로 막을 내렸다”며 “궁핍한 벽지로 내몰린 다음만이 생존에 성공했을 뿐 이미 몰락한 야후코리아에 이어 싸이월드와 네이트의 운명도 풍전등화(風前燈火) 신세”라고 정리했다. 싸이월드에 관여했던 전현직 임직원 7명을 만나 그들이 말하는 몰락의 7가지 이유를 들어봤다.

한때는 페이스북도 따라했던 싸이월드


싸이월드 도토리 상품권
싸이월드 도토리 상품권
2009년 SK컴즈를 퇴사한 직원 A 씨는 “회원 3500만 명을 보유했던 싸이월드가 이제는 가수 ‘싸이’의 영향력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아쉬워했다. 또 “SK컴즈는 페이스북과 카카오톡 같은 알짜를 일찌감치 양손에 쥐고도 제 가치를 몰라서 몰락한 셈”이라고 덧붙였다.

마케팅을 담당했던 임원 B 씨는 ‘준비 안 된 해외 진출’을 첫 번째 몰락의 이유로 꼽았다. 글로벌 SNS 시장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해외 사업을 벌였다가 실속을 챙기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검색 업무를 맡았던 직원 C 씨는 ‘인재 유출’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동종업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과 경력직에 대한 노골적 차별로 네이버, 다음 등에 꾸준히 인재를 빼앗겼다는 얘기다. 홍보에 관여했던 전직 직원 D 씨는 ‘무리한 인수 합병(M&A)’을 꼽았다. 싸이월드의 성공에 힘입어 검색엔진 엠파스, 교육업체 이투스, 블로그 이글루스 등을 잇달아 인수했지만 딱히 시너지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갖가지 실패 이유 가운데 전현직 직원들이 공통적으로 꼽은 대목은 ‘잦은 최고경영자(CEO) 교체’다. 2002년 출범한 SK컴즈는 초대 서진우 사장에서 12년이 지난 현재 이한상 대표까지 모두 7명의 CEO가 거쳐 평균 재임기간이 1.7년 정도다.

작은 벤처에서 시작해 이제는 글로벌 인터넷 기업으로 성장한 아마존(제프 베저스), 구글(래리 페이지), 페이스북(마크 저커버그), 야후 저팬(손정의)은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네이버(이해진), 카카오(김범수) 등은 CEO가 10년 이상의 집권을 통해 성공 방정식을 찾아냈다.

2007년 무렵 해외 사업의 잇따른 실패에도 싸이월드는 여전히 기세가 등등했다. 전 국민이 가입자라고 해도 좋을 만큼 국내 시장은 확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시장 지배력은 2009년 애플발 ‘아이폰(모바일) 혁명’에 의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인터넷 시장이 PC에서 스마트폰으로 빠르게 이동했지만 미처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당시 싸이월드는 PC 메신저인 네이트온과의 긴밀한 연동을 통해 사용자들을 쉽게 타사에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점차 모바일 환경에서의 메시징 서비스에 목말라 했다. 싸이월드가 모바일 서비스를 출시하면 간단히 해결될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데는 또 다른 사정이 있다. 모회사인 이동통신사 측이 카카오톡 등의 공짜 메시지 시장에 대해 반감이 컸다는 후문이다.

전직 직원 E 씨는 “비교적 일찍 출시했던 모바일 싸이월드조차 당시 SK텔레콤의 주력이던 옴니아폰에서는 제대로 보였지만 아이폰에서는 일부 깨져 보일 정도로 모바일 투자에 소극적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러는 사이 2010년 강력한 경쟁자 카카오톡(카톡)이 등장했다. 카톡은 스마트폰에 최적화한 간편한 가입과 친구 등록으로 순식간에 이용자들을 휩쓸어 갔다. 그제야 부랴부랴 모바일 대응에 나섰지만 한 번 떠난 사용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신뢰 잃어

2005년 12월 5일 일본 도쿄의 한 미술관에서 열린 싸이월드 일본서비스 공식 오픈 기자간담회에서 이동형 저팬 싸이월드 사장, 탤런트 박솔미 씨, 유현오 SK컴즈 사장(왼쪽부터)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SK커뮤니케이션즈 제공
2005년 12월 5일 일본 도쿄의 한 미술관에서 열린 싸이월드 일본서비스 공식 오픈 기자간담회에서 이동형 저팬 싸이월드 사장, 탤런트 박솔미 씨, 유현오 SK컴즈 사장(왼쪽부터)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SK커뮤니케이션즈 제공
악재는 끊임없이 찾아왔다. F 씨는 2011년 7월에 벌어진 ‘싸이월드·네이트 회원 3500만 명 정보유출’ 사건을 몰락의 주원인으로 지목했다. 이는 SK컴즈를 노린 중국 해커에 의해 사실상 전 국민의 개인정보(실명, 주민등록번호, 휴대전화번호, 비밀번호)를 빼앗긴 사건이었다. 국내 대표 포털사가 자신의 서버를 해커에게 통째로 내줬다는 점에서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이 사건은 싸이월드의 재기 노력에 치명상을 안겼다. 실제 해킹 직후 싸이월드와 네이트온 채팅창에는 피싱(지인을 가장해 돈을 요구하는 수법) 사고가 빈발해 SNS의 신뢰성을 크게 훼손했다. 또 한창 모바일 환경 대응에 바쁜 직원들이 해킹 사건의 뒷수습을 위해 소중한 기술 개발 시간을 허비한 셈이 됐다.

보안에 대한 투자만 적절히 했어도 막을 수 있었던 사건이기에 직원들이 느끼는 아쉬움은 더욱 컸다. 2년 전 SK컴즈를 퇴직한 G 씨는 “개인정보를 대규모로 유출한 IT 회사가 승승장구한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라고 아쉬워했다.

인터넷 기업이면서도 기업문화가 폐쇄적인 점을 침체 원인으로 지적하는 이도 있다.

페이스북이 점차 한국에서 인지도를 높여가던 2010년 무렵 인터넷 미디어 업체에서 일한 H 씨는 조금 색다른 경험을 했다. 그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비교해 싸이월드의 미온적 대응을 질타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자 SK컴즈 관계자가 “회사에서 볼 수 있으니 글을 내려 달라”고 요청해왔다. H 씨는 “이 같은 사례는 SK컴즈가 글로벌 SNS 사업의 본질과 미래 가치를 제대로 몰랐다는 반증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싸이월드의 영향을 받은 국내외 SNS 업체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한동안 싸이월드의 아류작으로 불린 페이스북은 시가총액 250조 원, 가입회원 13억 명이 넘는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으로 떠올랐다. 라인을 성공시킨 네이버는 시가총액이 27조 원, 카카오톡은 5조 원 안팎으로 급성장했다.

싸이월드가 좀 더 현명하고 합리적으로 대응했다면 글로벌 인터넷 시장의 판도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싸이월드#일촌#도토리#싸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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