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건 기자의 그런거野]번호로 남은······ 전설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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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야구 스타는 하나 더, 등번호도 남긴다. 그것도 영원히.

야구 선수들의 등번호는 ‘또 하나의 이름’이다. 그 번호를 다른 선수가 쓰지 못하도록 구단이 결정하는 것은 선수로서 최고의 영예다. SK 퓨처스팀 박경완 감독(42)이 그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SK는 5일 박 감독의 ‘영구결번식’을 연다. 구단으로서는 처음이며 프로야구 사상 12번째다.

역대 최고의 포수로 꼽히는 박 감독은 1991년 쌍방울 유니폼을 입고 데뷔했다. 2003년부터 SK에서 뛰었다. 23시즌 동안 2043경기에서 타율 0.249, 1480안타, 314홈런, 995타점을 기록했다. 정규리그 최우수선수 1회, 홈런왕 2회, 골든글러브 4회 수상에 포수 최초 300홈런의 주인공이다. 박 감독은 요즘 선수 시절 번호인 26번이 아닌 72번을 달고 있다. 선수들이 앞 번호를 선택할 수 있도록 70번대 이후로 등번호를 고르는 코칭스태프의 관례를 따른 것이다. SK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퓨처스 감독에 선임됐을 때만 해도 자신이 영구결번 대상이 될 것을 몰랐기에 자연스럽게 72번을 택했다”고 전했다. 물론 예외는 있다. 역대 5번째로 영구결번 된 이만수 SK 감독은 선수 시절의 22번을 지금도 달고 있다.

한화는 장종훈-송진우-정민철 번호 동판으로 한화는 국내 구단 중 가장 많이 영구결번을 지정했다. 대전 홈구장에 3개의 번호를 새긴 커다란 동판을 걸어 놨다. 35번은 장종훈, 21번은 송진우, 23번은 정민철. 한화이글스 제공
한화는 장종훈-송진우-정민철 번호 동판으로 한화는 국내 구단 중 가장 많이 영구결번을 지정했다. 대전 홈구장에 3개의 번호를 새긴 커다란 동판을 걸어 놨다. 35번은 장종훈, 21번은 송진우, 23번은 정민철. 한화이글스 제공
야구의 등번호는 1929년 뉴욕 양키스 선수들이 처음 단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7년부터는 모든 선수의 의무가 됐다. 메이저리그 영구결번의 전통은 1939년 은퇴한 양키스의 루 게릭(4번)부터 시작됐다. 현재 양키스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한 자리 등번호는 2, 6번뿐이다. 그나마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내야수 데릭 지터(2번)의 영구결번도 확실해 내년부터는 6번만 남는다. 특정 구단이 아니라 모든 팀의 영구결번도 있다. 1947년 흑인 최초로 메이저리거가 된 재키 로빈슨의 등번호 42번이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그의 데뷔 50주년인 1997년 이 번호를 전 구단 영구결번으로 정했다. 데뷔일인 4월 15일에는 모든 선수가 똑같이 42번이 박힌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나선다. 일본은 천재 투수로 이름을 날리다 1944년 전쟁에 징용돼 전사한 사와무라 에이지(14번) 등 15명이 영구결번 됐다.

1982년 출범한 국내 프로야구 첫 영구결번은 1986년에 나왔다. OB(현 두산) 포수였던 김영신(54번)이다. 젊은 나이에 사고로 숨진 그를 추모하기 위한 구단의 뜻이었다. 10년 뒤 ‘국보 투수’ 선동열이 영구결번 2호가 됐고 김용수, 박철순, 이만수 등 최고의 스타들이 뒤를 이었다(표 참조).

2012년 이종범 이후 2년 만에 영구결번이 탄생하면서 팬들 사이에서는 영구결번 대상으로 또 다른 선수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영구결번은 신중하게 결정돼야 한다. 성적이 좋았다는 이유만으로 영구결번이 된다면 머지않은 미래에는 선수들이 ‘등번호 기근’에 시달릴 것이다. SK는 박 감독의 영구결번 결정은 선수로서의 개인 성적뿐 아니라 팀에 대한 기여도와 리더십, 그리고 현재 퓨처스 사령탑으로 구단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다는 것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이라고 밝혔다.

아! 양키스의 지터처럼 국내에도 영구결번이 예고된 선수가 있다. 삼성의 이승엽(36번)이다. 어느 면을 봐도, 그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야구#영구결번#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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