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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인터뷰]건축가 승효상이 말하는 ‘貧者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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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인터뷰]건축가 승효상이 말하는 ‘貧者의 미학’

동아일보입력 2014-04-03 03:00수정 2014-04-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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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건물 5층이면 100층 짓고 싶어도 낮춰라”
승효상 이로재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는 1989년부터 ‘빈자의 미학’이라는 철학을 더해 스승인 1세대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세계와 다른 자신만의 개성을 찾았다. 2세 경영인들이 새겨볼 만한 대목이다. 그는 “내가 짓는 집이 옆집에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래서 내 소유의 집도 사유재산만으로 볼 수 없다. 집은 주변과 어울리게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DB
승효상 이로재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62)는 건축가로는 최초로 2002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주관하는 ‘올해의 작가’에 선정됐다. 그는 국내 대표적인 건축가 중 한 명이다. 1세대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의 문하에서 15년 동안 건축을 배워 스승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독립한 뒤에는 자신만의 색깔을 찾는 데 성공했다. 1989년 ‘빈자(貧者)의 미학’이라는 화두를 던졌고 이후 자신만의 건축 세계를 쌓고 있다. 스승과 함께 경동교회(1980년), 서울지방법원 청사(1984년) 등의 도면을 그렸고 독립한 뒤에는 웰콤시티(2000년), 조계종 불교전통문화센터(2006년), 퇴촌주택(2011년) 등을 설계했다. 경기 파주출판도시의 건축코디네이터와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을 맡기도 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는 승 대표를 만나 작품 세계와 독특한 통찰을 들어봤다. DBR 150호(4월 1일자)에 실린 인터뷰 기사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프로젝트를 팀으로 진행할 때가 많다.

“건축가가 직원들과 함께 팀을 꾸려서 작업을 할 때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건축가가 모든 사안을 주도하고 결정을 내린다. 결과에 대한 책임도 전적으로 건축가의 몫이다. 반면 다른 건축가들과 함께 대등한 위치에서 작업할 때도 있다. 이때는 상황이 다르다. 가령 두 건축가가 함께 프로젝트를 맡으면 업무를 절반씩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전체 마스터플랜은 한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 전체적인 그림을 한 사람이 결정하지 않으면 책임을 맡은 구역별로 다른 프로젝트가 진행될 공산이 크다. 경기 파주출판도시를 설계할 때 건축가 40명이 참여해서 건물 160동을 지었다. 내가 마스터플랜을 짰는데 층수, 건물 크기, 재료 등 가이드라인을 정해서 이에 동의하는 건축가에게만 일감을 나눠줬다. 공동체라는 의식이 허물어진 건물은 개별적인 특성만 가지게 된다. 전체적인 조화를 깬 것은 이미 건축이 아니다.”

―건축가와 건축주가 이견을 보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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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주변 환경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주변 건축물이나 사람들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건축주는 자신의 돈을 쓰는 일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건물을 지어서는 안 된다. 공공성을 해치거나 건축에서 기본적인 사항을 깨는 요구를 거듭하면 건축가는 해당 프로젝트를 포기해야 한다. 과거 한 건축주가 길 가까이에다 집을 지어달라고 했다. 그런데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려면 길에서 비켜서 지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건축주는 풍수지리를 고려해 집을 지으려 했다. 하지만 그렇게 설계하면 옆집에 위압감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건축주는 ‘법을 어기는 것도 아니고 내 집을 짓는 것인데 왜 그러느냐’며 화를 내고 돌아갔다. 이 건축주는 3년 뒤 더 큰 프로젝트를 내게 맡겼다. 자꾸 내 생각이 났고 결국 내 주장이 옳았다는 것을 깨달은 뒤 새 프로젝트를 가져온 것이다. 건축가가 신념을 가지고 정당한 주장을 하면 건축주는 결국 이해하게 된다.”

―스승 김수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렇다. 하지만 스승에게서 독립한 이후에는 스승의 작품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 해서는 안 된다. 스승에게 배운 것에다 자신의 철학을 얹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자신만의 특성을 발견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반드시 해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아류에 그칠 뿐이다. 스승에게서 독립할 당시 나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다. 아는 것은 김수근의 건축뿐이었다. 막막했다. 이후 2, 3년 동안 다른 건축가들이 어떻게 작업하는지 다시 쳐다보기 시작했다. 건축가마다 설계하는 방식이 모두 다르다. 어떤 건축가는 내부 공간을 중심으로 도면을 그린다. 또 다른 건축가는 건물 외형에 관심을 쏟는다. 땅을 기준으로 설계하는 건축가도 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아이디어를 디자인으로 이끌어 내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나는 과거 내가 살았던 공간과 환경에 대한 생각을 떠올렸다.(그는 어린 시절을 부산의 달동네에서 보냈다) 그래서 만든 게 ‘빈자의 미학’이다. 빈자의 미학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미학이 아니다. 가난할 줄 아는 사람들을 위한 미학이다. 100층짜리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능력을 가져도 옆 건물이 5층이면 층수를 낮추고 막다른 골목이라면 길을 내줘서 사람들이 다니게 해주는 게 빈자의 미학이다. 빈자의 미학은 나의 어릴 때 환경과 기독교적인 영향 등을 종합해서 만들었다. 빈자의 미학을 정립한 뒤 스승과는 다른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이후에는 빈자의 미학에 맞춰서 도면을 그렸다. 빈자의 미학에 맞지 않는 프로젝트는 맡지 않았다. 욕심 같아서는 ‘이것을 해야 직원들의 월급을 주는데’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혹에 굴하면 안 된다. 숱한 유혹이 찾아왔지만 한 번도 유혹에 고개를 숙여본 적은 없다. 그런 유혹에 휘둘렸다면 지금쯤 항상 돈이나 생각하면서 살고 있을 것이다.”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많다.

“결정의 상황에서는 항상 주저하게 된다. 나의 결정에 따라서 건물 이용자의 행복과 불행이 갈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축가는 대범하지 못하고 소심할 수밖에 없다. 밤을 새우며 고민하는 날도 많다. 전문 분야에서 결정을 잘 내리려면 다방면으로 공부해야 한다. 건축을 뛰어넘어서 공학, 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해야 한다. 미국에 큰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단지가 조성될 때 이상적인 주거 형태라고 언론에서 찬사를 받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 단지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단지는 흑인과 백인 등 계층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구조였다. 아파트 구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했고 급기야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집에서 편리함이 항상 가장 중요한 요소일까. 요즘 사람들은 잘 걷지 않는다. 그래서 주택을 일부러 불편하게 설계하면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삶에 대한 공부가 없으면 좋은 건축물을 만들 수 없다.”

―집을 설계할 때 건축가는 어느 부분까지 결정해야 하는가.

“스마트폰은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사용자는 기호에 따라 기능을 골라서 사용한다. 집도 이런 식으로 설계해야 한다. 거주자가 어떤 방식으로 생활하도록 건축가가 모든 것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건축가는 모든 가능성을 생각하고 인프라스트럭처만 깔아 놓아야 한다. 나머지는 비워둬야 한다. 그렇게 해야 거주자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석양이 보고 싶으면 창문을 열고, 별빛이 생각나면 뚫린 천장으로 별을 볼 수 있다. 여백을 남겨서 그 여백을 건축주가 스스로 채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취향에 따라 집을 마음대로 고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야 한다. 이것이 바로 비움의 미학이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승효상#이로재#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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