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송천]정부대책 비웃는 해커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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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송천 카이스트 교수
문송천 카이스트 교수
부동산을 생각해보자. 부동산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최종 책임은 주인이 진다. 마찬가지 원리로 주민번호가 문제가 된다면 책임 소재는 안전행정부라는 국가 조직에 있을 것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 우리나라처럼 만능키 중의 만능키인 주민번호를 자유자재로 쓰는 나라는 없다. 주민번호는 조각 조각난 파편 형태의 개인 신상을 레고 퍼즐처럼 전체 그림으로 꿰맞추게 하는 열쇠다. 그야말로 핵무기급 데이터다.

해커들은 “이번에도 주민번호는 건드리지 않네. 문제가 뭔지도 아직 모르고들 있으니 안심해도 되겠네”라며 안도하고 있다. 정부가 해커 무력화에는 힘을 못 쓴 채 해커 조력자(?)로서 도우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도 주민번호를 고수하겠다면 해커를 무력화시키는 가능한 방법은 딱 하나다. 변경 가능한 주민번호로 탈바꿈시켜 주면 간단히 해결된다. 정보 보호 선진국인 영국에서는 주민번호는 없고 여권번호와 운전면허번호를 주로 활용한다. 은행계좌 개설 시에도 그렇다. 여권번호와 운전면허번호는 언제든 변경 가능하다. 이것만으로도 해커들을 엄청나게 골치 아프게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정보처리비용이 크게 늘거나 속도가 느려지는 것도 아니다.

주민번호 변경에 착수하지 않으면 국방에도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현대전은 공중전을 펼치기 전에 사이버전을 먼저 가동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교전 상대국의 사회 인프라 부문의 데이터베이스 최고관리자를 표적 공격하는 고도의 지능적 심리전이다.

국민의 개인정보까지 송두리째 외국 해커들에게 노출된 현 상황에서 사이버전에 돌입한다면 우리는 십중팔구 참담하게 패배할 것이다. 현재 국민 전체 정보가 안행부에 한 카피, 중국 해커에 한 카피, 북한 해커에 한 카피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이처럼 주민번호 문제는 단순히 개인정보 유출 문제에 국한되지 않으며 크게는 국가안위에 직결되는 심각한 문제다. 정부의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

문송천 카이스트 교수
#해커#주민번호#정부#개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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