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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금나라 황릉, 개성 고려 왕릉 벤치마킹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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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금나라 황릉, 개성 고려 왕릉 벤치마킹 했다

동아일보입력 2014-03-13 03:00수정 2014-03-13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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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희 한서대 교수 비교논문 《 ‘중국 금나라 황릉의 모델은 고려 황릉(왕릉)이었다.’ 12세기 북중국을 장악했던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1115∼1234) 황릉이 고려 황릉과 형제처럼 꼭 닮았다는 비교 연구가 국내에서 처음 나왔다. 금 태조 완안아골타(1068∼1123)가 10세기에 건국한 고려를 ‘부모의 나라’라고 불렀던 것을 감안하면, 당대 사회적 문화적 역량을 총집결시켰던 국책사업인 황릉 조성을 한반도에서 벤치마킹했던 것이다. 》     
      

북한 개성시 외곽 만수산 자락에 있는 고려 태조의 황릉(왼쪽)과 중국 베이징 시 팡산(房山)에 있는 금 태조 황릉. 배산임수의 요지에 조성했단 공통점을 지녔다. 장경희 교수 제공
장경희 한서대 문화재보존학과 교수는 최근 학술지 ‘동방학’에 게재한 논문 ‘12세기 고려·북송·금 황제릉의 비교 연구’에서 “고려와 금 황릉은 양식적으로 매우 유사하며 같은 시기 북송 황릉과 뚜렷이 구별된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2010년 북한 학계와 연계해 개성 지역 고려 황릉을 직접 방문 연구했으며, 2012년 중국에서 현지 실태조사를 벌였다. 장 교수는 고려도 황제국을 자처했기에 왕릉 대신 황릉이라 부르는 게 옳다고 봤다.

고려와 금은 능 위치를 선정하는 기준부터 송과 달랐다. 세 나라 모두 풍수사상을 바탕에 뒀으나 적용하는 방식이 달랐다. 고려 황릉은 북쪽은 산이 둘러싸 높고, 남쪽은 낮고 물이 흐르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요지에 조성됐다. 흔히 배산임수(背山臨水)라고도 하는데, 과학적으로도 겨울철 차가운 북서풍을 막고 물 공급도 용이하단 장점을 지녔다.

금나라도 장풍득수의 기준을 적용했다. 다만 태양을 숭배하는 여진족 성향이 반영돼 동남쪽으로 15% 정도 방향이 틀어져 있다. 반면 송나라는 능묘의 하관이 대략 서쪽으로 향한다. 송 황가는 조(趙)씨인데 오행설(五行說)의 목(木), 서쪽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치도 산을 앞에 두고 물을 뒤에 두는 배수면산(背水面山)을 선호했다. 장 교수는 “고려와 금은 산자락에 능을 조성하는데 송은 평지를 선택했다는 점도 다르다”고 설명했다.

규모나 부대시설도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고려와 금 황릉은 ‘검박함’을 기본으로 했다. 고려는 태조 왕건 때부터 백성에게 부담이 없도록 간략한 절차를 미덕으로 여긴 까닭이다. 금은 여진족 시절 별다른 국장제도가 없다가 고려를 따라 작은 규모의 황릉을 조성했다. 행궁(行宮·왕이 임시로 머무는 거처)과 능실(陵室·제례를 지내는 건물) 정도만 세우는 것도 닮았다. 반면 송 황릉은 마치 또 다른 궁궐이라도 짓듯 여러 건물을 웅장하게 세웠다. 장례 기간도 두 나라는 한 달 정도인 데 비해, 송나라는 7개월이 넘게 걸리곤 했다.

고려-금-북송 황릉 형태 비교 고려 광종(왼쪽)과 금 태조(가운데), 송 인종의 황릉 평면도. 한눈에 봐도 고려와 금 황릉은 형제처럼 닮아 송 황릉과 큰 차이를 보인다.
뭣보다 황릉의 봉토(封土·무덤에 흙을 쌓는 것) 형태 자체가 달랐다. 고려와 금 황릉은 동그란 원형인데, 송나라는 중국 진한시대부터 이어진 네모난 장방형(長方形)이었다. 재밌는 것은 이후 명·청시대가 되면 봉토가 원형이나 타원형으로 바뀐다. 장 교수는 “고려와 금은 황릉 근처에서 산신제(山神祭)를 지냈는데, 송나라에는 없는 이 풍습 역시 명과 청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금 태조 황릉의 석호(왼쪽)와 송 진종 황릉의 석호. ‘고려 스타일’인 금나라 석호는 둥글둥글하고 담박한 반면 송나라 석호는 근육질에 입체적이다.
황릉 주변 석조물도 구분된다. 고려와 금나라는 문무석을 포함해 14∼16기를 배치했다. 송은 코끼리에 타조, 심지어 마부와 외국 사신까지 최대 64기나 세웠다. 두 나라는 문무석상 크기가 2m 안팎인데, 송나라는 4m 가까이 됐다. 석호(石虎)도 송은 1.9∼2.3m로 양국보다 2배 이상 컸다. 표현 양식도 고려와 금은 간결한 생김새에 친숙하고 해학적인 맛을 살린 데 반해, 송나라는 정교하고 구체적이나 엄숙하고 위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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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교수는 이번 발표를 계기로 향후 고려와 금 황릉의 출토 유물, 두 나라 황릉이 조선과 후금(청)에 끼친 영향도 연구할 계획이다. 조유전 경기문화재연구원장은 “고려와 금이 같은 뿌리를 가진 민족이란 건 어느 정도 인지돼 왔으나 직접 능을 비교 연구한 건 신선한 충격”이라며 “민족의 정통성을 제고한다는 측면에서도 이번 논문은 큰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장경희#고려#금 황릉#북송 황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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