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참을 수 없는 빈뇨, 癌 못지않은 고통”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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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시대, 안녕들 하십니까]
노인들 삶의 질 위협하는 생활질환

10일 서울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고령화 시대, 노인의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각종 생활질환과 보건의료정책 개선 방안’ 세미나에서 유준현 대한노인병학회 이사장이 인사말을 하고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10일 서울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고령화 시대, 노인의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각종 생활질환과 보건의료정책 개선 방안’ 세미나에서 유준현 대한노인병학회 이사장이 인사말을 하고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경기 안산시의 한 양로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김모 씨(81)는 요즘 밤에 화장실을 자주 가는 빈뇨 때문에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잠을 자다 소변을 참기 어려워 두세 번은 화장실을 가느라 잠을 설치기 일쑤다.

낮에는 빈뇨 증상이 더 잦아진다. 소변이 마렵다는 느낌이 시작되면 참기 어려워 길을 가다 급하게 화장실을 찾아 헤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화장실을 제때 찾지 못해 옷에다 ‘실수’를 하는 요실금이 나타날 때도 종종 있었다. 실수가 잦아지자 요즘에는 외출할 때 아예 패드를 착용한다. 김 씨는 “암 같은 큰 병은 아니지만 소변 문제 때문에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고 하소연했다.

김 씨가 앓고 있는 과민성 방광은 방광근육의 수축이 비정상적으로 자주 발생해 나타나는 병이다. 건강한 사람들은 방광에 400∼500mL가량의 소변이 찰 때까지 크게 불편함이 없지만 과민성 방광 환자들은 방광에 적은 양의 소변만 차도 화장실을 가게 된다.

인구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과민성 방광과 같이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초래하는 각종 생활 질환이 노인들의 삶의 질을 위협하고 있다. 암이나 심장병처럼 생명에 직결된 병은 아니지만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울 만큼 큰 불편을 준다는 점에서 노인들의 고통이 심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 고령화 사회의 복병, 생활 질환

우리나라는 2000년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2%를 기록하면서 고령화 사회 진입 기준인 7%를 처음으로 넘었다. 통계청 장래인구 추계에 따르면 한국은 2018년에 고령 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중 14% 이상), 2026년에 초고령 사회(20% 이상)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화 사회에 들어선 지 26년 만에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것으로, 이는 150년 정도가 걸린 서유럽 선진국보다 6배가량으로 빠른 속도다.

고령 인구가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건강 문제는 노인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노인들은 건강 문제(35.5%)를 경제적인 어려움(38.6%) 다음으로 큰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이런 응답이 나온 것은 당뇨병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2011년 이뤄진 보건복지부의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88.5%가 평균 2.5개의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서는 65세 이상 노인의 44.4%가 자신의 건강 상태가 ‘나쁘거나 매우 나쁘다’고 평가했다.

최근에는 수명 연장으로 병을 안고 오래 사는 ‘유병 장수’ 노인이 늘어나면서 질 높고 만족스러운 노년의 삶에 대한 노인들의 욕구가 커지고 있다.

고령화 시대에 노인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각종 생활 질환과 이와 관련된 건강보험급여 개선 방안은 10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 세미나에서도 깊이 있게 다뤄졌다. 노용균 대한노인병학회 의료정책이사(한림대 의대 교수)는 발제를 통해 “노인들의 병을 다룰 때는 생명을 위협하는 중증 질환뿐 아니라 일상생활이 가능한 활동 능력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핵심 요소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목욕과 식사, 배변 등 스스로 자신의 몸을 돌보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신체 기능을 잃게 되면 중증 질환자 못지않게 삶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세미나는 국회 보건복지위원인 양승조 민주당 최고위원과 보건복지위원장을 지낸 같은 당 이석현 의원이 주최하고, 대한노인병학회와 대한배뇨장애요실금학회가 주관했다.

식사를 하거나 변을 보고, 잠을 자는 등의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2011년 복지부의 노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85세 이상 노인의 43%가 우울증을 호소했다.

우울증에 경제적 빈곤이 겹쳐 자살을 선택하는 노인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2011년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80.3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 부작용 개선한 새 치료제 도입 필요

노인들의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는 요인으로는 과민성 방광과 같은 비뇨기 질환을 비롯해 관절염, 수면장애, 우울증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과민성 방광은 60세 이상 인구의 61%가 앓고 있는 대표적인 노인 생활질환이다. 지난해 10월 현재 60세 이상 노인 인구 870만 명 중 530만 명이 이 병 때문에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과민성 방광의 원인은 아직까지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치료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하면 증상을 크게 개선할 수 있다. 대표적인 치료법은 방광의 수축을 억제하는 ‘항무스카린제’를 장기간 지속적으로 복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시판되고 있는 항무스카린제는 입 마름과 변비, 배뇨 곤란 등의 부작용 때문에 환자들이 복용을 기피하는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입이 마르면 환자들이 물을 많이 마시게 돼 소변을 자주 보는 악순환에 빠지고 식욕도 떨어지는 부작용에 시달리는 것이다. 과민성 방광은 치료제를 지속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만성질환인데도 부작용 때문에 약 복용을 중단해 병이 재발하는 환자 비율이 약 60%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비뇨기과 이규성 교수는 10일 국회 세미나에서 “과민성 방광으로 고통 받는 노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기존 치료제의 부작용을 개선한 새로운 약제를 신속하게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노령화#빈뇨#고령화시대#생활질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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