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만한 외국작가 싹쓸이”… 심하다! 대형출판사 판권 쏠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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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시장에서 잘 팔리는 해외 작가의 작품 판권이 몇몇 출판사에 심하게 편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몇 년간 해외 문학서 판매 순위 5위 내에 들었던 외국 작가들. 왼쪽 윗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기욤 뮈소, 댄 브라운, 더글러스 케네디, 무라카미 하루키, 히가시노 게이고, 베르나르 베르베르, 파울루 코엘류. 동아일보DB
국내 시장에서 잘 팔리는 해외 작가의 작품 판권이 몇몇 출판사에 심하게 편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몇 년간 해외 문학서 판매 순위 5위 내에 들었던 외국 작가들. 왼쪽 윗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기욤 뮈소, 댄 브라운, 더글러스 케네디, 무라카미 하루키, 히가시노 게이고, 베르나르 베르베르, 파울루 코엘류. 동아일보DB
“번역을 마친 원고를 대형 출판사에 넘기고 3년이 지나도록 책이 나올 조짐이 없더군요. 그 이유를 출판사에 물었더니 ‘출간을 기다리는 책이 워낙 많아서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답이 돌아왔어요.”

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일본 장르소설 작가의 책을 번역한 국내 번역자의 얘기다. 그는 인기 해외작가 작품의 판권이 소수 대형 출판사에 집중된 탓에 독자들이 신작을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대형 출판사들의 해외 판권 확보 경쟁은 갈수록 과열 양상을 보여 ‘뜰 만한 외국 작가 작품은 일단 선점해 두고 보자’는 분위기다. 그러다 보니 출판계에선 “몇몇 대형 출판사의 경우 지금까지 확보한 작품만 모두 책으로 소화하려 해도 4, 5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는 말까지 나돈다.

이른바 ‘잘나가는’ 해외 문학서의 주요 출판사 집중도는 얼마나 될까. 동아일보는 교보문고에 의뢰해 2010년부터 2013년까지 매년 판매 순위 100위 안에 든 해외 문학서가 국내 어느 출판사에서 출간됐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100위 안에 든 책을 많이 낸 상위 5개 출판사의 100위권 도서 점유율은 2010년 57%에서 2011년 49%로 잠시 낮아졌다가 2012년 53%, 2013년 54%로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해외 문학서 판매 상위 100권 중 절반 이상을 5개 출판사가 독식하는 셈이다. 이들 상위 5개 출판사에는 문학동네와 열린책들, 밝은세상출판사가 4년 내내 5위 안에 들었다. 민음사와 미래엔(옛 대한교과서)이 각각 3회, 웅진싱크빅이 2회씩 들었다. 약간의 순위 변동 말고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

상위 5개 출판사 집중도는 국내 문학서보다 해외 문학서에서 매년 3∼10% 높았다. 오랜 작가 관리 노하우가 필요해 대형 출판사에 유리하다고 알려진 국내 문학서보다도 해외 문학서 시장의 독과점 현상이 더 심해졌음을 보여준다.

해외 유명 문학상 수상작이나 베스트셀러 작가의 신작을 중심으로 한 ‘싹쓸이’에 가까운 이런 독과점 현상은 당연히 판권료 거품을 초래했다. 해외 문학을 취급하는 한 중소출판사 편집자는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같은 일급작가의 신작 판권료는 25억 원,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 같은 장르소설 작가조차 2억 원을 호가한다”며 “이 정도 판권료를 지불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한국이 해외 출판 에이전시 사이에서 ‘봉’으로 통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판권료 상승은 결국 ‘본전’을 뽑기 위한 마케팅 비용 상승을 부추겨 결국 책값 인상이란 형태로 독자에게 전가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출판문화협회가 조사한 문학도서의 가격 인상률(정가 기준)은 2011년은 5.2%, 2012년은 3.8%, 2013년은 1.7%로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2011년 4%, 2012년 2.2%, 2013년 1.3%)을 매년 웃돌았다. 국부를 유출하고 중소 출판사의 생존권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독자들에게 피해를 안겨 주는 과도한 판권 확보 경쟁을 자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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