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중독 아이는 ‘팝콘 브레인’… 독해력 떨어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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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문제 지문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초중등학생이 크게 늘면서 짧고 단편적인 정보에 지나치게 노출돼 독해력이 저하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데이비드 레비 미국 워싱턴대 교수는 현대사회에 즉각적인 현상에만 반응하는 ‘팝콘 브레인’이 늘고 있다고 지적하며 그 원인 중 하나로 스마트폰 사용 증가를 꼽았다. 동아일보DB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초중등학생이 크게 늘면서 짧고 단편적인 정보에 지나치게 노출돼 독해력이 저하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데이비드 레비 미국 워싱턴대 교수는 현대사회에 즉각적인 현상에만 반응하는 ‘팝콘 브레인’이 늘고 있다고 지적하며 그 원인 중 하나로 스마트폰 사용 증가를 꼽았다. 동아일보DB
‘부채꼴 N1M1B1을 그리고, 중심이 D1, 반지름의 길이가 C1D1이고 중심각의 크기가 π/2인 부채꼴 D1M1C1을 그린다…(중략)’.

대학수학능력시험 수리탐구영역에 나왔던 이 문항은 그림 3개를 포함하고, 문제 길이만 11줄에 달한다.

장민영 양(서울 진관고 3학년)은 “이 정도 길이의 문제는 배점이 높더라도 사실상 읽기를 포기하고, 문제 길이가 짧은 것부터 푼다”고 토로했다. 서울의 한 고교 수학 교사도 “교사들끼리도 시험 문제를 출제할 때 ‘문제가 5줄 이상이면 못 풀겠지?’라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며 “학생들은 조건부 확률이나 함수처럼 설명이 긴 문제들을 특히 어려워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 우리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의 독해력 저하가 심각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문·이과 구분 없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 서울 명덕고 물리과 이세연 교사는 “문제의 의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 질문하는 학생이 많다”며 “독해력이 떨어지면 인문사회 과목뿐만 아니라 과학과목 성적도 나빠진다”고 말했다.

○ 스마트폰이 독해력 저하 원인

전문가들은 독해력의 차이가 벌어지는 시기를 중학교로 보고 있다. 실제로 본보가 서울시의 중학생 26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10명 중 3명은 교과서에 나오는 단어나 문장을 부분적으로만 이해하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어의 뜻이 너무 어렵고, 문장 표현이 이해가 잘 안 되며, 한자가 아주 많다는 것이 이유였다.

짧고, 단편적이며, 자극적인 디지털 정보에 지나치게 노출돼 있다는 것도 학생들의 독해력을 떨어뜨리는 주 원인으로 꼽힌다. 중국 연구진은 하루에 10시간 이상 인터넷을 사용하는 대학생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촬영한 결과, 하루 2시간 미만 사용자들보다 생각 중추를 담당하는 회백질의 크기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를 2011년 학술지 ‘플로스원’에 발표하기도 했다.

데이비드 레비 미국 워싱턴대 교수는 팝콘이 튀어 오르는 것처럼 즉각적 현상에만 반응할 뿐 생각하지 않는 이런 뇌 상태를 ‘팝콘 브레인(popcorn brain)’이라고 이름 붙였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초중등학생이 크게 늘면서 짧고 단편적인 정보에 지나치게 노출돼 독해력이 저하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데이비드 레비 미국 워싱턴대 교수는 현대사회에 즉각적인 현상에만 반응하는 ‘팝콘 브레인’이 늘고 있다고 지적하며 그 원인 중 하나로 스마트폰 사용 증가를 꼽았다. 동아일보DB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초중등학생이 크게 늘면서 짧고 단편적인 정보에 지나치게 노출돼 독해력이 저하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데이비드 레비 미국 워싱턴대 교
수는 현대사회에 즉각적인 현상에만 반응하는 ‘팝콘 브레인’이 늘고 있다고 지적하며 그 원인 중 하나로 스마트폰 사용 증가를 꼽았다. 동아일보DB
서울 경희여중 국어과 강용철 교사는 “요즘 학생들은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통해 디지털 정보를 받아들이는 ‘디지털 리터러시’는 뛰어나지만, 종이책을 읽고 해석하는 능력은 많이 떨어진다”며 “학생들이 스마트폰에 과도하게 노출돼 있는 만큼 ‘팝콘 브레인’도 독해력 저하 원인 중 하나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 과학 잡지 만들고, 밤새워 책 읽고

최근 일부 학교를 중심으로 학생들의 독해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단순히 눈으로 읽기만 하는 기존의 독서 방식에서 탈피해 학생들이 읽고, 말하고, 쓰는 ‘3박자 독서’교육이 대표적이다.

서울 경기여고에는 2년 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과학잡지 동아리 ‘PABC’가 있다. 2012년부터는 매년 한 권씩 ‘과학의 영혼(Soul of Science)’라는 제목의 과학잡지도 발간하고 있다. 김유진 양(2학년)은 “기사를 쓰기 위해 친구들과 토론하고 학교 도서관에서 관련 책을 찾아 읽는 일 모두가 많은 공부가 되고 있다”며 “기사를 직접 쓰면서 내가 몰랐던 부분이 뭔지 명확해진다는 사실도 깨달았다”고 말했다.

‘밤새워 책읽기’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서울 광성중은 교내 독서 동아리만 7개나 있다. 김영찬 수석교사는 “혼자 읽는 것보다 함께 읽으면 독서가 더 쉽고 재미있다”며 “학부모와 자녀가 함께 참여하는 ‘밤새워 책읽기’는 부모와 자녀 간 서로 몰랐던 부분을 알아가는 ‘힐링 캠프’ 역할도 한다”고 설명했다.

동아사이언스가 시작한 ‘작은 도서관 캠페인’의 발기인 대표인 우종천 서울대 물리학과 명예교수는 “초등학생 때 우연히 구한 원자력 관련 책을 보고 원자탄이 가장 센 폭탄이라는 걸 알았고, 그에 대한 궁금증이 물리학의 세계로 이끌었다”며 “책이 주는 감명과 여운, 책장을 넘기면서 얻는 여유는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경험”이라고 강조했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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