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문제 정확히 정의할 때 창의적 해결법 나오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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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왕’ 황성재가 말하는 창의력

황성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박사과정 연구원은 “문제를 빨리 잘 풀어내는 사람보다 문제를 잘 정의하는 사람이 더 각광받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황성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박사과정 연구원은 “문제를 빨리 잘 풀어내는 사람보다 문제를 잘 정의하는 사람이 더 각광받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양가가가양가가.’ 고등학교 성적표에 학업성취도 ‘양’보다 ‘가’가 많았던 학생. 고1 때까지 삼국을 신라가 아닌 고구려가 통일했다고 알고 있던 학생. 힙합바지를 입고 사람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 부르길 즐기던 학생. 발명 특허를 150건 이상 보유한 황성재 씨(33·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박사과정 연구원)의 학창시절 이야기다. 고1 때까지 성적이 최하위권이었던 황 씨는 현재 주목받는 젊은 발명가다. 그가 지난 5년간 발명으로 벌어들인 기술이전료만 8억 원이 넘는다.

황 씨는 △스마트폰에 글과 그림을 입력할 수 있는 자석 펜 △터치패드의 줌인·줌아웃처럼 두 손가락이 필요한 기능을 한 손가락만으로 수행하는 기술 등 150여 건의 국내외 특허를 출원했다. 고등학교 시절 ‘꼴찌’에 가깝던 그는 어떻게 성공한 발명가가 됐을까. 최근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카페에서 황 씨를 만났다.

공부는 목적이 아닌 도구

부산 양운고 재학시절 황 씨는 상상을 즐기는 학생이었다. 고1 때까지는 수업시간에 집중하기보단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냥 노트에 끼적이기 일쑤였다. 그 노트를 ‘서울 구경을 하러 갈 수 있겠다’란 생각에 지원한 ‘대한민국 학생발명대전’에 제출했다. ‘낭비 방지 휴지걸이’로 장려상을 받았다. 휴지를 한 번에 일정량 이상 사용하면 덮개가 내려와 자동으로 휴지를 끊어준다는 아이디어였다.

“대회에서 수상 후 제 아이디어를 소개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칭찬해줬어요. 살면서 처음 희열감을 느꼈죠. 발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황 씨)

황 씨는 발명가가 되기 위해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우선 발명품을 구현해 내기 위해서는 수학, 과학을 알아야 하고, 아이디어를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려면 영어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외국인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면 한국에 대해서도 소개해줘야겠다는 생각에 국사도 공부했다.

“발명을 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어요. 공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한 도구로 하게 된 거죠. 공부가 재밌더라고요.”(황 씨)

황 씨는 고1 때 150점대(400점 만점)였던 모의고사 성적을 200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는 354점까지 끌어올렸다. 광운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한 황 씨는 학점 4.44(4.5점 만점)로 졸업했다. 이후 KIST 전산학과 석사과정,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박사과정을 밟으며 본격적으로 발명을 했다.

“많은 청소년이 대학 진학을 위한 공부를 마치면 그때서야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해요. 하고 싶은 걸 정한 뒤 그걸 하기 위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알면 공부에 흥미를 찾을 수 있는데 말이지요.”(황 씨)

답은 문제에 있다


수많은 특허를 출원한 황 씨. 창의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그는 “창의적 아이디어는 ‘문제가 무엇일까?’ 정확히 정의할 때 나온다”고 말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문제 해결방법을 오래 고민하면 나온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무엇이’ ‘왜’ 문제인지 원인을 정확히 정의하는 것만으로도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

황 씨는 자신이 개발한 스마트폰 타임라인바를 예로 들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황 씨는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며 타임라인바를 조작할 때마다 불편을 느꼈다. 영화의 앞뒤 장면으로 넘어가기 위해 타임라인바를 조금만 움직여도 영화의 장면들이 너무 큰 단위로 넘어간 것. 황 씨는 문제가 무엇인지 정의하려고 애썼다.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황 씨는 ‘스마트폰 아랫부분에 표시되는 타임라인바 길이가 너무 짧기 때문’이라고 문제를 정의했다. 짧은 타임라인바를 늘려야 한다는 해결법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스마트폰 액정 바깥 부분을 빙 두르는 박스 테두리 모양의 타임라인바가 탄생했다. 이 기술은 삼성전자에 8000만 원에 팔렸다.

“안 풀리는 문제를 오래 붙잡고 연구하는 자세도 중요합니다. 문제를 해결하진 못해도 고민하는 과정에서 했던 생각들이 중요한 경험이 되기 때문이죠. 컴퓨터가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미래엔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질 가능성이 높겠지요.”(황 씨)

“가끔은 베짱이가 되세요”


문제를 정의하려면 자신만의 전문분야가 있어야 한다. 축적된 자신만의 지식을 바탕으로 문제를 발견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

황 씨가 한 방송프로그램에 발명품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을 때였다. 만두가게를 20년 넘게 운영한 사장이 발명 아이디어 15개를 갖고 왔다. 우산 손잡이에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결합해 어두운 앞을 잘 볼 수 있도록 한 발명품, LED를 지팡이와 결합한 아이디어 등 특별할 것이 없는 아이디어였다.

“만두집을 20년 넘게 운영한 만두 전문가이시니 만두와 관련된 아이디어를 내보면 어떻겠느냐고 조언해드렸어요. 만두가 들어간 포장 박스를 힘을 줘 구부리면 간장을 담을 수 있는 종지가 생겨나는 만두 포장 박스를 개발해 오시더라고요. 멋진 발명이었죠. 이처럼 창의력을 발휘하려면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황 씨)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종종 사색과 여유를 즐긴다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는 데 도움이 된다. 황 씨가 3일 동안 집 안에서 책만 읽거나 캠핑을 떠나는 것도 그런 이유.

“인류의 위대한 발견들도 사색을 즐기다가 나온 것이에요. 아르키메데스가 부력을 발견했을 때 욕조에서 반신욕을 하던 중이었고, 뉴턴도 사과나무 아래에서 쉬다가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했죠. 꾸준히 축적된 지식이 새로운 자극을 받아 창의적 아이디어로 발현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개미처럼 공부와 일만하지 말고 가끔은 베짱이처럼 여유도 가져보세요.”(황 씨)

글·사진 김재성 기자 kimjs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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