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부림’ ‘유서 대필’ 무죄, 진영논리로 재단할 일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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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의 모티브가 된 부림 사건과 강기훈 씨의 유서 대필 사건에 대해 재심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부림 사건은 수사기관의 증거가 불법으로 수집됐고, 강 씨의 유서 대필 사건은 필적 감정의 결과가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합리적으로 수집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증거만이 유죄를 만든다는 형사소송의 원칙을 확인한 판결이다.

부림 사건은 1981년 공안 당국이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 등 19명을 적발해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한 사건이다. 부산지법 형사항소2부는 “피고인들이 수사기관에 자백을 했지만 진술서가 자백이 이뤄진 지 상당 시간 경과한 뒤에 작성된 데다 불법 구금 기간이 오래돼 진술서의 증거 능력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에는 부림 사건 피고인들이 판사 앞에서 당당하게 사회주의 이념을 주장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번 무죄 선고는 부림 사건의 실체와는 상관없이 불법 수집한 증거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의미를 지닌다.

영화 ‘변호인’에서는 피고인들을 고문하는 장면이 등장하지만 재판부는 고문의 존재 여부에 대해 판단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안전기획부 보안사령부 경찰에서 조사받은 다른 사건을 보더라도 부림 사건에서도 고문이 행해졌을 가능성은 있다. 재판부는 경찰의 불법적인 장기 구금만으로도 무죄 판결의 이유가 충분했기 때문에 세월이 오래 흘러 증거가 없어진 고문에 대해 판단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은 1991년 강 씨의 대학 후배였던 김기설 씨가 ‘노태우 정권 퇴진’을 주장하며 분신자살을 한 후 강 씨가 김 씨의 유서를 대필한 혐의를 받아 징역 3년을 복역한 사건이다. 당시 법원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제출한 필적 감정 결과를 증거로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지난해 국과수의 새로운 필적 감정 결과와 재심에서의 감정 결과가 당시와는 다르게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0부는 “1991년 국과수는 정자체와 속필체를 단순 비교했다”며 “유서는 강 씨가 대필한 것이 아니라 김 씨가 작성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두 사건 모두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또는 권위주의의 그림자가 남아 있던 정권 때 벌어진 일이다. 23년도 더 지난 이 사건들을 좌우 진영논리의 연장선 위에서 바라보며 논쟁을 더 끌어갈 이유는 없다. 이번 판결은 과거의 잘못된 수사와 재판을 바로잡은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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