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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의 독도’ 20년 잠 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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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의 독도’ 20년 잠 깨다

동아일보입력 2014-01-30 03:00수정 2014-01-30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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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이후 무인도 된 격렬비열도… 해경함 타고 가보니 흰 등대 손짓
올해 有人化… 영토-영해주권 강화
국토 최서단에 있는 무인 열도인 충남 태안군의 격렬비열도 전경. 태안=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조각칼로 한 줄 한 줄 깎아낸 듯한 절벽 위에 12.7m 높이의 하얀 등대가 외롭게 서 있었다. 바다 한가운데 우뚝 선 주상절리(용암이 바다와 닿으며 육각형 기둥 모양으로 굳은 지형)에 잔잔한 파도가 밀려와 부서졌다.

격렬비열도(格列飛列島). 우리 국토의 서쪽 맨 끝에 위치한 무인 열도로 ‘서해의 독도’로 불린다. 세 개의 섬이 날개를 펴고 푸른 바다 위를 나는 모습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27일 오전 9시 반. 충남 태안군 신진도항에서 출발한 지 1시간 반쯤 걸렸을까. 태안해양경찰서 소속 해경경비함 ‘해우리 20호’ 앞으로 격렬비열도가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섬 전체가 암벽으로 이뤄져 접안시설도 갖출 수 없는 환경. 해경경비함을 바다 위에 임시 정박시킨 채 10인승 고속정으로 갈아타고서야 7000만 년 전에 생겨난 신비의 화산섬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섬 꼭대기 등대까지 난 비탈길엔 야생동물의 배설물이 수북했다. 섬 중턱에 빽빽이 늘어선 동백나무 잎사귀도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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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비열도는 우리의 영해 범위를 결정하는 영해기점 23곳 중 하나다. 중국에서 오는 화물선과 여객선이 처음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서해상 우리 영해의 제1관문이다. 중국 산둥반도와 268km, 충남 태안에서는 불과 55km 지점에 위치한다. 서쪽으로 90km만 가면 한중 잠정조치수역이어서 한국 영해 안으로 들어와 고기를 잡으려는 중국 어선과 한국 해경의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이다.

해양수산부 소속 대산지방해양항만청은 이르면 올해 하반기 격렬비열도에 등대원 3명을 파견하기로 했다. 1994년 등대원이 철수한 지 20년 만에 사람이 사는 섬이 되는 셈이다. 우리의 영토주권을 강화하기 위한 유인화(有人化) 조치다. 앞서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해양경찰서, 국립해양조사원, 대전지방기상청, 대산지방해양항만청 등은 지난해 6월 유인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정부에 예산 반영을 요청했다. 관련 예산은 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 中과 EEZ-방공구역 협상에 ‘금쪽같은 섬’ ▼

20년 만에 사람이 상주할 수 있도록 하는 예산이 책정됐지만 현재로서는 등대원이 머물 만한 변변한 숙소도 없다. 1909년부터 1994년까지 등대원들이 사용하던 숙소가 있지만 지금은 폐가로 방치돼 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한 김영삼 정부가 등대원들을 모두 철수시켰기 때문이다.

그간의 무관심을 보여주는 것일까. 숙소에 걸린 달력은 아직도 ‘2011년 10월’에 머물러 있었다. 아무렇게나 걸린 파리끈끈이, 생필품 쓰레기가 그나마 한 달에 한 번 등대와 기상관측장비를 점검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해양항만청과 기상청 직원들의 흔적이다.

해양항만청은 새 숙소와 헬기장을 짓기 위한 설계 작업에 나섰다. 굴착기를 섬으로 들여와 낡은 집을 철거하고 등대원 3명의 숙소를 짓는 데 6, 7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비상시를 대비해 숙소 위에 헬리콥터 이착륙장도 만든다.

○ 중국과 분쟁 대비해 거점 확보 필요성

격렬비열도는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국제법상 각국이 주장할 수 있는 배타적경제수역(EEZ)은 영해기점으로부터 200해리(약 370km)까지. EEZ 안에서도 외국 국적 선박이나 항공기 왕래는 자유롭지만, 수산물이나 광물 채취권, 해양 관측 및 조사권, 시설 및 구조물 설치권 등은 인정되지 않는다.

한중 양국이 200해리 기준으로 EEZ를 획정할 경우 양국 EEZ에 중첩지역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보통 중복되는 면적에 중간선을 그어 EEZ로 설정하는 것이 관례이지만 중국은 인구나 국토 면적에 비례해 더 넓은 EEZ를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양국은 어쩔 수 없이 각자가 주장하는 EEZ가 겹치는 부분을 잠정조치수역으로 설정해 양국 어선들의 조업을 허용하고 있다.

국토 최서단에 있는 무인 열도로 ‘서해의 독도’라고 불리는 격렬비열도에 20년 만에 등대원 3명을 파견한다. 서해상에서 실질적 영토 주권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사진은 격렬비열도 위에 세워진 등대 전경. 태안=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이렇게 설정된 잠정조치수역이 끝나는 곳이 격렬비열도 서쪽 90km 해역이다. 문제는 잠정조치수역에서 고기를 잡던 중국 어선들이 고기 떼를 따라 허가 없이 한국 영해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 2012년 한 해에만도 중국 어선 1685척이 격렬비열도 근처에서 영해를 침범했다.

우리의 방공식별구역(KADIZ)도 격렬비열도 서쪽 100km를 지난다. 현재로선 KADIZ 침해가 현실화되지 않고 있지만 중국이 기존 주장을 굽히지 않은 채 EEZ 확장을 고집할 경우 사정은 달라진다. 격렬비열도에 헬기장을 건설해 실질적인 항공순찰 영역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도 이런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김대영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현재로선 우리 해군이 통상적인 경계활동만 펼치고 있지만 중국의 예상치 못한 움직임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백령도와 제주해군기지뿐 아니라 격렬비열도를 거점으로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취재진과 함께 격렬비열도를 찾은 새누리당 성완종 의원도 “격렬비열도는 중국과 코를 맞대고 있다. 독도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격렬비열도의 존재를 많은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 황사-미세먼지 예측에도 도움

파견되는 등대원들은 등대 관리·점검뿐 아니라 이 섬의 기상 상황 및 해양 환경을 조사하는 역할도 함께 맡는다. 중국발 황사와 초미세먼지는 백령도-격렬비열도-흑산도 축을 거쳐 3시간 내에 한국에 도착하는데 이곳에서 얼마나 빨리 황사와 미세먼지를 관측하느냐에 따라 주의보나 경보를 발령하고 대처하는 시간이 달라질 수 있다. 허삼영 대산지방해양항만청장은 “기상청의 도움을 받아 유·무인 기상 관측을 동시에 실시해 황사와 미세먼지의 예측력을 높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격렬비열도는 멸종 위기를 맞고 있는 매와 괭이갈매기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격렬비열도(태안)=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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