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기적의 빛… 태양은 지옥마저 천국으로 인도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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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태양/데이비드 올리버 렐린 지음/김병화 옮김/496쪽·1만5000원·혜화동
두 의사의 ‘히말라야 백내장 프로젝트’

2007년 ‘히말라야 백내장 프로젝트(HCP)’를 이끄는 제프리 태빈 박사가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퀴하 지역 병원에서 자신이 수술한 환자들에게 둘러싸여 환하게 웃고있다. 그와 산두크 루이트 박사는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네팔 내로 한정짓지 않고 전 세계 빈민들을 대상으로 무료 의술을 펼쳤다. 혜화동 제공
2007년 ‘히말라야 백내장 프로젝트(HCP)’를 이끄는 제프리 태빈 박사가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퀴하 지역 병원에서 자신이 수술한 환자들에게 둘러싸여 환하게 웃고있다. 그와 산두크 루이트 박사는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네팔 내로 한정짓지 않고 전 세계 빈민들을 대상으로 무료 의술을 펼쳤다. 혜화동 제공
무식한 소리일 텐데, 네팔이란 나라는 묘하게 ‘야릇한’ 기운을 풍긴다. 히말라야 칸첸중가…. 이름은 들어 봤지만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들의 땅. 왠지 그곳 사람들은 청렴결백, 안빈낙도할 것 같다. 맑은 공기와 천혜의 자연에 둘러싸여 나쁜 생각은 티끌만큼도 안 하겠지. 가난할지언정 물욕도 없고, 행복지수는 세계 상위권을 차지할 거야. 그래, 그곳은 신들의 영역이리라.

허나 막상 되짚어보면, 지옥 없이 홀로 존재하는 천국은 없다. 분명 좋은 이들이 수북하겠지. 다만 가파른 오지는 누릴 수 없는 게 너무 많다. 이 책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산두크 루이트가 의사가 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일주일 가까이 걸어야 닿는 병원, 약 한 첩 제대로 못 쓰고 숨진 여동생, 요즘 유행인 ‘1일 1식’을 강제로 해야 하는 삶. 그는 척박함이 결코 미덕이 아님을 온몸에 문신처럼 새기며 자라났다.

루이트 박사와 또 다른 주인공 제프리 태빈을 다룬 ‘두 번째 태양’은 줄거리만 요약하자면 간단명료하다. 네팔 출신 안과의사와 그의 의협심에 공명한 미국인 의학교수가 네팔을 중심으로 제3세계 빈민들의 눈을 공짜로 치료하는 얘기다.

이쯤에서 뻔한 스토리라고 여길 사람도 있겠다. ‘역시 이런 착한 분들이 있어 세상은 살 만한 곳이야’ 하며 어디 기부할 곳 좀 뒤져 보다 다시 바쁜 생활에 쫓기며 살면 되겠다. 끝.

자, 떠난 사람은 할 수 없고 왠지 뭔가 더 있을 것 같은 이들은 페이지를 넘겨 보자. 사실 논픽션 작가인 저자도 처음부터 맘먹고 두 사람을 취재했던 건 아닌 모양이다. 에베레스트 산에서 활동하는 셰르파(등반 도우미)에 관심을 갖다 ‘열정적인’ 태빈 박사의 너스레에 휩쓸려 자기도 모르게 빠져든다. 괜히 그런 척한 것 같긴 해도, 그럼 또 어떤가. 두 사람의 행보를 듣다 보면 누구라도 어느새 입이 떡 벌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텐데.

이들은 그냥 ‘훌륭하다’라는 표현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삶을 산다. 괴나리봇짐을 지고 위험천만한 고갯길을 넘어 백내장이란 말조차 들어 본 적 없는 이들의 눈을 수술한다. 그것도 하루에 수백 명씩, 잠과 끼니는 물론 오줌도 참아 가며. 실제로 산두크가 제프리에게 ‘참을성(?)을 기르라’며 책망하는 대목도 나온다.

‘수백 명’이 거짓말 같다고? 이들은 헛간과 다름없는 임시 진료실의 침침한 백열등 아래에서 보통 10분 내외로 수술을 끝마친다. 루이트 박사는 실제로 열악한 환경에서 순식간에 끝내는 수술을 창안한 주인공. 2006년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과 지난해 ‘안과 의학계의 노벨상’ 참팔리마드 비전상을 받은 위대한 의사다.

태빈 박사도 못지않다. 원래는 예일대와 하버드대 의대를 제집처럼 들어간 천재지만 산에 미쳐 일곱 대륙 최고봉을 모두 등반했다. 우연히 히말라야에서 한 소녀의 눈 수술을 목도하고 안과로 전과한 뒤 운명처럼 루이트 박사와 조우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HCP(히말라야 백내장 프로젝트)’를 이끄는 주역이 된다. 루이트 박사가 이 위대한 여정의 물꼬를 튼 이라면, 태빈 박사는 서구의 자본과 관심을 끌어들여 개울물을 대하로 퍼뜨린 인물이다.

아까 떠났던 사람도 돌아오게 ‘미끼’ 좀 던져보자. 이 책, 되게 재밌다. 눈물과 감동만 가득한 게 아니라, 꽤나 낄낄거리게 만드는 유머코드가 야채 빵 양파처럼 촘촘히 박혀 있다. 특히 루이트 박사에게 배우러 그 오지까지 유학 온 북한 의사 2명은 큰 비중은 없으나 상당히 ‘웃프다(웃기지만 슬프다)’.

산두크가 수술한 한 78세 목동은 몇 년 만에 눈을 뜬 뒤 덩실덩실 춤을 추며 외친다. “태양을 볼 수 있는 걸 넘어서 내가 바로 태양입니다.”

실명방지국제협회에 따르면 세계에서 시력 장애를 겪는 이는 1억6100만 명인데, 4분의 3 이상이 제3세계 빈민이다. 그들에게 태양을 찾아주는 일이 얼마나 급박하고 중요한 문제인지, 두 사람은 오늘도 말없이 천길 낭떠러지를 오르며 온몸으로 웅변한다. 지옥? 참 태양은 그곳마저 깃들어 천국으로 인도한다. 가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두 번째 태양#네팔#히말라야 칸첸중가#빈민#백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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