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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만난 사람/김순덕]국가건축정책위원회 김석철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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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만난 사람/김순덕]국가건축정책위원회 김석철 위원장

동아일보입력 2014-01-13 03:00수정 2014-01-1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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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이상 먹고살 수 있는 한반도 설계가 내 마지막 業”
4강에 둘러싸인 한반도가 김석철 국가건축정책위원장에게는 무궁무진한 보물섬이다. “DMZ 희망도시, 세종시의 물류 세계도시화…미래와 세계를 내다본 한반도 국토인프라 설계가 내 마지막 업입니다.” 칠순의 김 위원장은 보물섬 탐험에 나선 소년처럼 벅찬 포부를 펼쳤다.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 한 달 전쯤 김석철 명지대 석좌교수(70·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 대표)가 전화를 걸어 왔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다들 하지 말라고 해요. 김 기자(그는 20년째 필자를 이렇게 부른다) 얘기 듣고 결정하려고 전화했어요.” 김 교수는 12년 전 위암 수술을 받은 뒤 암세포들을 미운 친구처럼 끼고 산다. 작년 여름 또 다른 암이 발견돼 넉 달밖에 못 산다는 선고까지 받았다. 독한 진통제를 밥 먹듯 먹으며 불같이 일하고는, 약 기운이 떨어지면 숨쉬기도 괴로워한다. 그 고통을 목격했던 필자는 순간 목이 메었다. “죄송해요. 선생님 (건강을) 위해선 안 해야 되는데 우리나라를 위해서 맡았으면 좋겠어요.” 전화통 저편에서 빙그레 웃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그 말이 듣고 싶었어요.” 작년 12월 27일 박근혜 정부의 건축정책을 수립하고 주도할 제3기 국가건축정책위원회(국건위) 신임 위원장에 김석철 교수가 선임됐다는 정부 발표가 나왔다. 국건위는 국토환경 디자인 개선 및 건축문화 진흥을 위해 2008년 12월 출범한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다. 》

서울 광화문에서 숭례문까지 2km 구간을 ‘국가상징거리 1단계 사업’ 구간으로 정하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건립하는 기본 방향이 1기 국건위에서 나왔다. 하지만 한반도 전체의 국토 인프라 설계보다 지방자치단체 수준의 개별 사업에 치중한다는 비판도 없지 않았다.

DMZ내 에덴도시 건설 제안할 것

11일 동아일보 사옥을 찾은 김 위원장은 “작년 항암치료를 받고 퇴원하면서 마음이 급했는데 국건위 연락을 받았다”며 “비무장지대(DMZ)에 에덴동산 같은 21세기형 소도시 건설을 대통령에게 제안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행복시대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큰 그림은 보이지 않는다. 미래세대에 백년은 먹고살 수 있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 남북관계에서 답이 나올 수 있다. DMZ에 에덴동산이 있다. 지금은 우리가 분단돼 있지만 천혜의 자연환경이 그대로 보전된 DMZ야말로 인류역사에 공헌할 공간이다. 여기에 농업과 소프트산업을 결합한 인구 5000∼1만 명 규모의 소도시를 남북 합작으로 건설하면 통일을 내다보는, 또 세계가 보러 오는 희망의 도시가 될 수 있다.”

경기고교 시절부터 ‘천재’ 소리를 들어서일까, 금강산 입구 석왕사 앞에서 태어나 자연에 대한 감수성이 남다르기 때문일까. 김 위원장의 인문학적, 지경학적(地經學的) 상상력은 보통 사람의 생각 범위를 초월한다.

동북아 끄트머리의 이 작은 땅덩어리가 그에게는 무궁무진한 보물섬이다. 바다 공항을 끼고 있는 인천은 르네상스 시대의 베네치아를 능가할 ‘아시아의 진주’이고, 한반도 허리를 관통해 중국과 일본을 잇는 동서횡단 운하는 수에즈 운하의 경제성도 뛰어넘는 황금광이다.


하지만 국민도 마음이 급한 판국이다. 언제 실현될지 모르는 장기계획 말고 1년 안에 국민이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국건위 계획은 없느냐고 물었다.

한반도 전체가 무궁무진한 보물섬

“행복한 부동산, 창조적 재건축, 도시 수출의 3개 프로젝트가 있다. 쉽게 예를 들겠다. 10년 전 서울 북촌에 자그마한 한옥을 사서 건축사무실로 개조를 하려는데 한옥 목수가 없더라. 이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한옥에 물받이 홈통은 다 있으니까 홈통 가게를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싶어 찾았더니 정말 홈통 수리를 하고 있었다. 지금은 북촌이 한옥촌이 됐고 목수는 300명이 넘고 외국인 관광명소로 떴다. 미국 영화감독 우디 앨런이 부인 순이를 위해 한옥촌 드라마를 만들지 모를 일이다.”

그는 국민 재산의 대부분이 부동산이므로 발상을 바꾸면 부동산이 국민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서울에도 개발할 곳은 얼마든지 있다. 4대강 주변도 한강변처럼 살릴 수 있다. 부동산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행복한 삶의 터전이 되고, 개·보수를 통해 일자리도 끊임없이 나올 수 있다. 선진국에선 신축보다 재건축 수요가 많다. DMZ 에덴도시 같은 소도시를 설계해 시공까지 통째로 ‘도시 수출’을 하면 청년 일자리 문제도 풀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여의도 마스터플랜, 서울대 관악캠퍼스, 경주 보문단지 건설을 해냈다. 이제 위원장을 맡았으니 ‘아버지 대통령 때 사람’이라는 소리가 또 나오지 않을까.

김 위원장은 일에 눈멀어 그 생각을 못 했다며 한방 맞은 시늉을 했다. “1970년대 말 박정희 대통령이 중동의 도시설계 진출을 시도해 내가 쿠웨이트 신도시를 설계할 수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에게는 한번 결정하면 밀고 나가는 힘이 있었다. 내 느낌에 박근혜 대통령도 그런 힘이 있다. 아버지가 못 이룬 도시 수출의 꿈을 박 대통령이 꽃피울 수 있지 않을까.”

서울∼세종시 지하 초고속철도 뚫자

―한번 정하면 밀고 나가는 스타일을 권위주의적이라고 한다.

“대통령이 국익에 좋은 일을 선택해 밀고 나간다면 아름다운 독재가 될 수도 있다. 하하.”

김 위원장한테도 독재적 면모가 없지 않다. 여의도를 보행중심 도시로 설계했는데 가로축 한복판에 5·16광장이 생기고, 서울대 관악캠퍼스를 과천까지 이어진 연구중심 대학도시로 계획했는데 반쪽이 된 것을 지금도 유감스러워 한다.

정치에선 이해 당사자의 의견을 두루 듣고 양보와 타협을 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건축과 도시설계에서 그는 자신의 원안이 옳다고 믿는 모습이다. 암에 걸린 뒤 그곳에 사는 사람과 보는 사람들, 100년 뒤 주변에 살 사람과 구경올 사람까지 좀더 생각하는 것으로 바뀌었지만.

―세종시가 현재 모습으로 굳어진 데는 박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 장차관부터 불편과 불만이 쏟아지는데 해결방안이 있나.

“정운찬(김 위원장의 가까운 후배)이 총리가 됐을 때 세종시 원안을 수정할 자신이 있느냐고 물었다. ‘상대가 여자’라고 대답하더라. 당시 박근혜 의원이 미생지신(尾生之信·미생이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애인을 빗속에서 기다리다 익사했다는 고사성어) 속의 미생인 걸 몰랐던 거지. 2004년 수도 이전 지역으로 충남 연기군이 발표되던 날 수도 이전 불가론을 주장했던 사람이 나다. 요즘은 ‘길에서 사는 사람들’이 내게 세종시를 부탁한다고 말한다. 이왕 이렇게 됐으니 세종시를 중부권의 수도로 만들어내야 한다.”

김 위원장은 금강변과 한강변의 한 지점을 지하터널로 연결해 15분 안에 초고속철도로 달리는 꿈같은 프로젝트를 제시했다. 그게 가능한 일이냐고 필자가 입을 딱 벌리자 그는 빙그레 웃었다. “서울에서 세종시까지 120km이지만 지하 직선코스를 뚫으면 프랑스와 영국 사이의 도버해협 유로터널(50.5km)보다 짧고 공사도 쉽다”는 거다.

초고속철도 유로스타로 20분 만에 도버해협을 건너 보면 누구나 절감할 수 있지 않던가. 영국이 더는 섬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세종시에서 서울을 눈 깜짝할 사이에 갈 수 있게 되면 한강변과 금강변 아파트값이 차이 날 이유가 없어진다. 그래도 세종시만으로는 경쟁력을 갖기 힘들다. 새만금 안바다를 활용하면 금강-새만금-세종시-대덕연구단지로 연결되는 물류 서비스산업 어번 클러스터가 가능하다. 금강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큰 배가 들어올 수 있는 강이다. 당나라 소정방이 5만 대군을 몰고 백제로 쳐들어 올 때 배를 타고 금강을 거슬러 왔다. 사람과 물류가 유라시아철도의 출발점인 중국 동부 연안의 롄윈 강에서 서해를 통해 금강으로 이어지면 세종시는 세계도시로 도약한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동남권 신공항 같은 지역공약이 쏟아질지 모른다. 국건위에서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정치인이 국토 인프라를 놓고 장난하는 것은 역적질이나 다름없다. 지방 신공항은 최소한 인천공항과 경쟁할 만한 스케일이어야지 내 고장 살리기 정도로는 안 된다. 거제도와 여수 사이에 21세기 신공항을 만들어 항만과 접붙이면 ‘아시아 크루즈 루트’가 탄생한다. 중국에서 급속히 늘어날 크루즈 인구를 생각하면 백년은 먹고살 일자리가 나오는 거다. 천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영호남 문제도 자연스럽게 풀릴 수 있다. 정치인이라면 세계와 미래를 보고 신공항을 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집권 기간은 짧다. 국건위는 긴 안목으로 한반도를 설계해야 한다.”

국토로 장난치는 정치인은 역적이다

그의 말을 듣노라면 한반도 전체가 보물단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4강에 낀 토끼 모양, 또는 새우 크기의 약소국가가 아니라 지정학적 강점을 타고난 세계의 중심국가다. 두만강 하구에 동북3성-시베리아-동해를 아우르는 항만과 공항을 만들면 북한 경제를 살리는 건 물론 파나마 운하보다 엄청난 유라시아 경제권역도 이룰 수 있다.

―말만 들어도 환상적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박차고 나오는 거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정파가 없고’(?) 맑고 옛날식 애국심이 있다. 120년 전 갑오개혁은 실패했지만 3년 후인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 선포와 함께 다섯 철도망과 항만을 연결하는 한반도 인프라 구축을 선언했다. 나는 박 대통령이 큰 대(大)자 대한민국을 성공시킬 것으로 믿고 싶다.”

다른 대통령, 새로운 2013년 체제를 꿈꿨던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평생 친구다. 김 위원장은 “백 교수 집을 설계할 때 진보가 좋은 집 짓는 것을 죄스러워 하더라”고 전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금융위원장을 지낸 김석동 씨는 그의 동생이다.

“가족들에게 남길 유산을 정리한 밤에 꾸란(이슬람 경전)을 보았다. ‘네가 죽은 뒤 가족이 너를 잊어도 네가 선행을 베푼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네가 인간 공동체를 위한 업(業)을 이룬다면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내게는 국건위가 마지막 업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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