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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이슈]야구장 시구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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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이슈]야구장 시구의 모든 것

동아일보입력 2013-11-02 03:00수정 2014-06-02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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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프게 던진 아리랑볼… 헛스윙은 왜 해주는 걸까
야구의 시구(始球)를 처음 한 인물은 105년 전인 1908년 일본 총리이자 와세다대 설립자인 오쿠마 시게노부로 알려져 있다. 이후 시구는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내는 야구의 필수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1] 몸에 달라붙는 레깅스를 입고 시구를 해 큰 관심을 모은 연예인 클라라 [2] 1일 삼성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공을 던진 영화배우 손예진 [3] 리듬체조 출신의 연예인 신수지 씨는 ‘360도 회전 시구’로 주목을 받았다 [4]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1958년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가 방한했을 때 당시 미국 야구의 관례대로 관중석에서 포수를 향해 공을 던졌다 [5] 올해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시구를 한 박근혜 대통령 [6] 2003년 대전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 마운드에 오른 노무현 전 대통령 [7] 프로야구 경기 시구를 3차례나 한 김영삼 전 대통령. 동아일보DB
시구는 정치(情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정치(情致)’를 ‘좋은 감정을 자아내는 흥치’라고 풀이한다. 야구에서 시구는 국가(國歌) 연주로 관중의 시선을 한데 모은 직후 진행한다. 시구는 환성 속에 공을 던지는 본인에게도, 유명인의 어설픈 투구 동작을 지켜보는 관중에게도 즐거운 감정을 자아내는 흥치다.

이런 흥치는 경기 장면보다 더 기억에 남는다. 끝내기 홈런 정도로 끝난 경기가 아니라면 마지막 타자가 삼진으로 아웃됐는지 유격수 땅볼로 아웃됐는지 기억하기 쉽지 않다. 한국시리즈라도 그렇다. 10월 27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올해 한국시리즈 3차전의 마지막 타자는 누구였던가. 웬만해서는 대답하기가 쉽지 않을 터. 하지만 이 경기에서 시구를 한 사람이 박근혜 대통령이었다는 건 야구팬이 아니라도 안다.

그래서 시구는 정치(政治)다.

“정치는 사회적 희소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는 데이비드 이스턴 교수(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의 정의에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행위가 시구이기 때문이다. 미국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 구단 뉴욕 양키스의 안방인 양키스타디움에서 시구할 수 있는 인물은 1년에 10명 남짓. 시구 행사를 안 하고 말지 아무에게나 마운드를 허락하지는 않는 것이다.

올해 프로야구 정규시즌에서 몸에 딱 달라붙는 레깅스 패션으로 시구를 해 큰 관심을 모은 연예인 클라라 씨는 “시구로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시구는 그래서 권력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권력의 속성을 잘 아는 정치인들이 시구를 사랑하는 건 이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들은 해마다 봄이 오면 수도 워싱턴의 내셔널스파크를 찾는다. 국민 투표 발의 요건을 명시한 헌법 96조를 개정해 평화헌법 개헌을 노리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등 번호 96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도쿄돔 마운드에 서서 “일본에 선전포고 권한을 달라”고 몸으로 얘기한다.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정치(政治)이자 권력인 이 ‘사회적 희소가치’를 처음 만들어낸 인물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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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총리를 두 차례(8, 17대) 지낸 오쿠마 시게노부(大외重信·1838∼1922)가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시구자다. 와세다(早稻田)대 설립자인 그는 1908년 11월 22일 효고(兵庫) 현의 고시엔(甲子園) 야구장에서 열린 이 학교 야구부와 메이저리그 선발팀의 친선 경기에서 시구를 했다. 미국에서는 이날부터 508일 뒤인 1910년 4월 14일 워싱턴의 홈 개막전에서 윌리엄 태프트 제27대 대통령(1909∼1913년 재임)이 시구한 게 처음이다.

와세다대 홈페이지는 당시 70세였던 오쿠마 전 총리가 하오리하카마(羽織袴·가문의 문장을 넣은 일본 전통 의상)를 입고 경기장에 등장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그가 던진 공은 스트라이크 존에서 한참 벗어났지만 와세다대 1번 타자는 그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내는 뜻에서 일부러 헛스윙을 했다. 한국과 일본 야구에서 타자가 시구를 헛스윙하는 전통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오쿠마 전 총리는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1905년 와세다대의 야구부원 12명을 미국에 보내 방문경기를 치르게 할 정도로 야구를 사랑했다. 전쟁 중이라 학교 내 인사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오쿠마 전 총리는 당시 일본인 평균 월급의 1000배가 넘는 5500엔의 교비를 들여 이들의 미국행을 도왔다. 1905년 4월 12일 요코하마(橫濱)를 통해 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간 이들은 미국에서 23경기를 치러 7승 16패(승률 0.304)의 초라한 성적을 거뒀지만 오쿠마 전 총리는 이들의 귀국을 뜨겁게 반겼다.
프레지덴셜 스위트(Presidential Suite)

한국, 일본, 대만 야구는 미국 야구와 스타일이 달라 ‘동양 야구’라고 따로 부른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동양 야구와 미국 야구는 시구 문화도 달랐다. 미국의 첫 시구자였던 태프트 대통령은 관중석에서 그라운드를 향해 공을 던졌다. 당연히 ‘헛스윙 예의’를 갖출 필요가 없었다.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 역시 이 문화를 따랐다. 이 전 대통령은 1958년 10월 21일 메이저리그 팀 세인트루이스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서울 동대문야구장 관중석에서 미국식으로 시구를 했다.

미국의 ‘관중석 시구’는 1960년대까지 이어지다 1970∼1980년 사이에 일본처럼 마운드에 올라 시구를 하는 문화가 퍼졌다. 누가 처음 ‘마운드 시구’를 시도했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대통령 중에서는 제40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1981∼1989년 재임)이 1984년 4월 2일 볼티모어 구장에서 처음으로 마운드 시구를 했다.

일본과 문화적으로 가까운 한국은 미국보다 훨씬 앞서 대통령이 마운드에서 시구를 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이 1961년 청룡기 고교야구대회 때 마운드에서 시구한 사진이 남아 있고,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1967년 제1회 대통령배 고교야구 개막전 때 마운드에서 공을 던졌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 개막을 알리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시구 역시 마운드 위에서 이뤄졌다.

동아일보 지면에 시구라는 낱말이 처음 등장한 건 경남 진주에서 열린 야구 경기를 소개한 1921년 3월 25일자 3면이었다. 구체적으로 시구 형태를 소개하고 있지는 않지만 별다른 설명 없이 “경남도지사 사사키(左左木) 씨의 시구로 개식(開式)이 됐다”는 표현을 볼 때 당시부터 시구가 일반적인 일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감동과 서커스, 그 사이

우스갯소리로 요즘 여자 연예인의 인기를 재는 척도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그 연예인을 ‘제2의 이효리’라고 써댄 기사가 몇 개인가 하는 것, 또 한 가지는 프로야구 경기에서 시구를 한 적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걸그룹 ‘핑클’ 출신인 가수 이효리 씨는 ‘텐미니츠(10minutes)’로 홀로서기에 성공한 2003년 한국시리즈 2차전 때 시구자로 나섰다. 9차전까지 열린 이듬해 한국시리즈에서도 10차전 시구 예정자가 이 씨였다. 당시 이 씨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던 걸그룹 ‘주얼리’의 박정아 씨는 2003년 최종전인 7차전과 2004년 1차전을 연달아 시구하는 이색 기록을 남겼다.

그때만 해도 야구팬들은 여자 연예인이 야구장을 찾는다는 사실, 그 자체에 열광했다. 하지만 배우 홍수아 씨가 웬만한 젊은 남자들의 시구를 능가하는 빠른 공을 선보이며 ‘홍드로’(홍수아+페드로 마르티네스)라는 별명을 얻은 뒤로 여자 연예인들도 강속구를 던지기 위해 애쓰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어지간한 시구로는 화제를 모으기 어렵다. 리듬체조 선수 출신 신수지 씨처럼 ‘360도 회전 시구’ 정도는 해 줘야 이목을 끌 수 있다.

한국 시구가 액션 영화라면 미국 시구는 휴먼 드라마다. 메이저리그 탬파베이는 올해 5월 17일 홈경기 때 앨레이나 애덤스 양(9)을 시구자로 초청했다. 그가 마운드에 오르자 전광판에는 아프가니스탄에 파병 가 있는 아버지 윌 애덤스 중령이 등장했다. 동영상 속 아버지는 딸에게 “집중해서 던지면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 격려를 받은 앨레이나 양은 힘차게 던졌지만 공은 하늘 높이 솟구쳤다 땅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그런데 공을 줍는 포수 동작이 메이저리그 선수라고 하기엔 너무 엉성한 게 아닌가. 딸 몰래 귀국해 포수로 분장해 있던 아버지는 마스크를 벗고 환한 얼굴로 딸을 불렀다. 딸은 아버지를 향해 힘껏 달려갔고 관중은 기립 박수로 답했다. 오클랜드는 6월 13일 양키스와의 홈경기에서 사람의 움직임을 원격 센서로 전달 받아 그대로 따라 하는 로봇을 이용해 2900km나 떨어진 캔자스시티에 사는 희귀병 소년의 시구 소원을 들어줬다.
플레이 볼!

한국시리즈 3차전은 삼성의 마무리 투수 오승환이 두산 포수 양의지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 세우며 끝이 났다. 이 경기 첫 장면인 박 대통령의 시구 문제는 답이 엇갈린다. 누군가는 ‘댓글 정국’으로 시끄러운 이때 한국시리즈 시구는 부적절한 처사였다고 비판하고, 다른 누군가는 정치와 스포츠는 분리하는 게 옳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구의 평가 기준이라는 건 원래 변덕스럽다. 미국처럼 의미 있는 시구를 가치 있다고 여기는 팬들도 막상 자기 응원팀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선 여자 연예인이 환한 얼굴로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면 입을 헤벌리곤 한다. 어떤 게 ‘개념 시구’인지 정답은 없다.

105년 전 고시엔구장 마운드에 섰던 칠순의 야구광은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이렇게 수많은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대단한 전통의 창시자가 됐다는 사실을. 오쿠마 전 총리가 전쟁의 와중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야구라는 ‘놀이’였다. 시구는 경기를 앞둔 선수들에게 더 열심히 즐겁게 놀아보라고 격려하는 행위다. 그 마음만 잃지 않는다면 시구 형태는 문제될 게 없다. 시구가 끝난 뒤 주심이 외치는 첫마디는 ‘워크 볼(work ball)’이 아니라 ‘플레이 볼(play ball)’이니까.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야구장#시구#프로야구#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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