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국의 무예 이야기]인마일체로 활쏘는 종목 만들면 역동적 스포츠 될 겁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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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상무예’의 발전 가능성

최형국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 제공
최형국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 제공
무예는 문화의 산물이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 모습은 점차 변형되면서 당대 ‘신체 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래서 한 스승에게 무예를 전수받는다 하더라도 제자에 따라 그 모양새나 기술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스승을 뛰어 넘는 ‘청출어람(靑出於藍)’ 제자가 있다면 그 무예는 깊이를 더하며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무예에서 그러한 변화는 자연스러운 몸짓의 전환이며 몸 문화 발달의 초석이 된다.

그런데 인류 역사 이래 큰 변화가 없는 무예가 있다. 바로 인간과 말이 함께 호흡하며 펼치는 ‘마상(馬上)무예’다. 전장에 대량살상용 화약무기가 판치기 전까지 마상무예는 기병의 필수 훈련이었으며 최고의 전투 무예였다.

무예의 시작은 걸음걸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무예가 존재한다. 그중 ‘초학입예지문(初學入藝之門)’으로 불리는 맨손 무예는 기초체력을 다지고 기본 격투술을 닦는 것이 중요했다.

또 맨손무예를 통해 신체 활동 영역을 넓히고 무기를 사용할 만큼의 근력과 담력을 갖추는 것이 목표였다. 무예의 시작인 맨손무예도 여러 형태가 존재하는데 그 차이는 보법(步法), 즉 걸음걸이의 차이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 대표 무예인 태권도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택견은 걸음걸이에서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다. 태권도의 보법은 ‘주춤서기’를 중심으로 ‘앞굽이’나 ‘뒷굽이’ 등의 형태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택견은 ‘능청’과 ‘굼실’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품밟기를 통해서 자세가 연결된다.

두 무예 모두 화려한 발기술이 중심이지만 걸음걸이 차이 때문에 서로 다른 무예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주춤서기 없는 태권도는 태권도가 아닌 다른 무예라 할 수 있고, 발기술이 달라도 품밟기가 기본이라면 택견의 아류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발을 움직일 때 발바닥의 앞축이 먼저 닿느냐, 뒤축이 먼저 닿느냐에 따라 무예가 구분되기도 한다.

인간의 걸음걸이가 없는 마상무예

마상무예는 인간이 말 위 안장에 올라 앉아 펼치는 무예다. 기병이라면 말을 타고 달리며 활을 쏘거나 창칼을 휘두르는 전통적인 마상무예를 반드시 익혀야 했다. 따라서 마상무예에서는 인간 대신 말이 걸음을 걷는다.

말의 걸음은 일반적인 걸음인 평보, 조금 빨리 걷는 속보, 달리는 구보, 최고 속도로 달리는 습보로 크게 구분된다. 이런 걸음은 말의 종류에 관계없이 유사하다.

이 때문에 삼국시대 개마(介馬·갑옷 입힌 말) 갑주(甲胄·갑옷과 투구)로 완전무장한 고구려 기병의 마상무예나 서양 중세시대에 갑옷 입은 기사(騎士)가 활용한 무예가 비슷한 형태를 보인다. 말안장 위에 앉아 달려가며 전후좌우로 병기를 휘두르는 모습에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말을 타고 달리며 활을 쏘는 ‘기사(騎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일한 형태였다. 또 동양이나 서양이나 늘 최고의 마상무예 실력자는 말과 함께 호흡을 맞추는 경지인 ‘인마일체(人馬一體)’의 모습을 보인다.

옛 소설 삼국지(三國志)에 등장하는 명마 ‘적토마’가 훌륭한 장수를 만나 전장을 누비는 장면에 과거는 물론이고 오늘날의 독자도 열광하는 이유 역시 인마일체에 대한 공감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공통분모가 된 무예

마상무예는 세계인이 함께 공유하고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승마는 세계적으로 높은 인기를 누리는 스포츠로 자리 잡고 있다. 마상무예를 통해서도 세계인이 함께 즐기고 경쟁할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달리면서 과녁에 몇 개의 화살을 명중시켰는지, 몇 개의 표적물을 베어 냈는지에 따라 점수를 주는 것으로 승부를 가를 수도 있겠다. 마상무예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말과 인간이 만들어 내는 역동적인 움직임에 바로 열광할 수 있기 때문에 구기 종목이나 격투기 종목같은 복잡한 경기규칙을 만들고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마상무예는 박진감 넘치면서 단순명쾌한 종목이 될 것으로 본다.

또한 마상무예는 한 개인이나 국가의 전유물이 아니며 그 시작 또한 세계 각지의 민족마다 전통적인 무예로서 내려오고 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큰 축제를 만든다면 올림픽에 버금가는 세계인의 잔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최형국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역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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