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donga.com

[수도권]‘창신동 봉제마을’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더보기

[수도권]‘창신동 봉제마을’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동아일보입력 2013-10-14 03:00수정 2013-10-14 03:00
뉴스듣기프린트
트랜드뉴스 보기
■ 서울 마지막 달동네… 마을공동체가 이끈 신선한 변화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 종로구 창신동 봉제마을에 주민이 직접 만든 도서관, 전시관, 인터넷 방송국 등 문화·예술공간이 생겨나면서 변화가 일고 있다. 봉제공장에서 마을의 대표 복합문화공간으로 변모한 ‘○○○간’(공공 공간·사진 위)과 주민들이 직접 방송에 참여하는 방송국 ‘덤’. 서울 종로구 제공
“이 동네에 수십 년 살았지만 이렇게 바뀔지는 상상도 못했어요.”

깎아놓은 듯한 비탈길을 따라 낡은 봉제공장들이 다닥다닥 골목길을 사이로 마주하고 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협소한 골목길은 평탄한 곳 하나 없이 굽이굽이 길게 이어졌다. 다세대주택을 개조한 봉제공장 대부분은 5∼6평 남짓했다. 이곳이 봉제공장임을 알려주는 작은 간판조차 없었다. ‘드르럭 드르럭’, 밖으로 새어 나오는 재봉틀 소리와 바닥에 널브러진 천 조각들만이 이곳이 봉제공장임을 짐작하게 했다. 대부분의 이곳 주민은 봉제틀 하나에 의지해 20∼30년을 살아온 마을의 터줏대감이다. 10일 찾은 서울 종로구 창신동 봉제마을의 대부분은 여전히 옛 모습 그대로였다.

봉제마을은 동대문 의류타운의 주문이 급증하면서 공장이 한때 3000여 곳에 이를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10여 년 전부터 의류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자 봉제공장도 썰물처럼 떠나 현재 700여 곳만 간판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서울의 마지막 남은 달동네 ‘창신동 봉제마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봉제공장이 떠난 자리에 주민이 직접 만든 도서관, 전시관, 방송국, 문화·예술공간이 생겨났고 마을은 다시 활기를 찾았다. 변화의 중심에는 지난해 주민들이 스스로 만든 마을공동체 ‘창신마을 넷’이 있다. 매달 1번씩 회의를 열어 봉제마을 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결정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000간’(공공공간). 따로 사용 목적을 정해두지 않고 마을사람들이 함께 쓰는 복합문화 공간이다. 단층짜리 봉제공장을 새로 단장해 만든 이 공간은 이용자가 원하는 목적의 공간이 된다는 뜻에서 이름도 000으로 비워놓았다. 주민들이 차를 마시면 카페가 되기도 하고 아이들은 그림을 배우는 문화센터다. 봉제공장에서 버려지는 천 조각을 모아 마을 상품을 만들어 전시하기도 한다.

지역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커뮤니티 공간인 ‘뭐든지 도서관’도 인기 있다. 재능 기부나 자원 봉사를 통해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마을 도서관이다. 주민들이 직접 페인트칠과 바닥공사를 하고 책 등 필요한 물건은 집에서 가져와 하나하나 꾸몄다. 도서 대여는 물론이고 책읽기 프로그램, 야간 돌봄 프로그램을 운영해 밤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부모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책과 춤으로 수다 떨기’ ‘청소년과 화 내지 않고 대화하기’ ‘헝겊인형 만들기’ ‘영화 보기’ 등 부모와 청소년의 세대 통합을 위한 활동도 있다.

주민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라디오 방송국 ‘덤’도 이색적이다. 주민들의 사연이나 신청곡을 받아 매주 화요일 인터넷으로 방송을 내보내는데 주민 인터뷰나 토크쇼, 공개방송도 진행한다.

주요기사

원단이나 수명이 다한 봉제기계판 등 쓰레기로 넘쳐나던 마을의 자투리 공간은 주민들이 모여 예쁜 텃밭과 쉼터, 전시관 등으로 가꿨다. 봉제마을의 의미를 담아 ‘한땀 한땀 한평 공원’이라고 이름도 붙였다. 어둡고 지저분했던 골목길도 전등을 설치하고 벽화를 그려 넣어 화사해졌다. 김미아 해송지역아동센터 시설장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주민들은 돈을 벌어 창신동을 빨리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지금은 마을의 변화된 모습을 직접 몸으로 체감하면서 주민들이 마을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영달 기자 dalsarang@donga.com
#창신동 봉제마을#문화예술공간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주요뉴스

1/3이전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