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소비 주축 ‘액티브 시니어’가 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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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브 시니어가 온다]<1>한국 - ‘하프 보이’ 산업의 태동
대한민국 50대 대부분 “은퇴 뒤에도 계속 일하겠다”
‘올드 보이’ 아닌 ‘하프 보이’… 시장 움직일 중심세대로 급부상

《 롯데백화점은 지난달 말까지 진행된 여름세일 기간에 ‘6070 빅 핸즈(Big Hands)’ 고객 10만2000명에게 우수 고객용 직접우편(DM) 홍보물을 보냈다. ‘6070 빅 핸즈’란 이 백화점의 구매액 기준 상위 20% 고객 가운데 60, 70대 소비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롯데는 이들 60, 70대 ‘큰손’을 앞으로 가장 주목해야 할 소비 계층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이들은 씀씀이가 크면서도 상대적으로 경기에 덜 민감하다. 그 수도 2008년 5만6000여 명에서 지난해 10만2000여 명으로 81%나 늘었다. 》

사회·경제 전문가들은 이처럼 활동적이며 소비 성향이 강한 노년층을 ‘액티브 시니어’라고 부른다. 액티브 시니어란 말은 미국 시카고대 심리학과의 버니스 뉴가튼 교수가 “오늘의 노인은 어제의 노인과 다르다”며 붙인 신조어다. 이들은 스스로가 실제 나이보다 5∼10년 젊다고 생각하고, 소비뿐 아니라 생산의 주체로도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싶어 한다. 건강과 외모 관리에 관심이 많고 소비와 여가 생활을 적극적으로 즐기는가 하면, 자기계발이나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높다. 이런 점들이 사회적 약자라는 느낌이 강했던 기존의 ‘실버세대’와 액티브 시니어를 구별해주는 특징이다.

액티브 시니어는 1차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의 은퇴가 본격화하면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기존 60, 70대에 비해 문화 생활과 소비를 많이 했던 이들 세대가 시니어 계층에 편입되면서 소비자 구조와 주력 시장이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활동적인 50대인 이들은 액티브 시니어의 특징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으며, 앞으로 액티브 시니어의 중핵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국내에서도 액티브 시니어를 겨냥한 소비 시장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을 새로운 생산과 소비의 동력으로 유입시키려는 움직임은 상대적으로 더딘 편이다. 동아일보는 향후 국내 액티브 시니어 시장의 변화를 예상해 보고 우리보다 앞서 액티브 시니어들을 소비 및 생산의 중심으로 편입시킨 해외 선진국의 현장을 둘러봤다.

○ 92%가 인터넷 쇼핑 경험


‘올드 보이(old boy)’가 아니라 ‘하프 보이(half boy·반 젊은이)’.

이미 국내 노년층 중에서도 상당수가 ‘액티브 시니어’적 성향을 띠기 시작했다. 특히 노년기에 들어서기 시작한 50대 베이비부머는 많은 인구와 경제력을 기반으로 앞으로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즉, 이들이야말로 한국 액티브 시니어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다.

동아일보가 여준상 동국대 교수(경영학), 대홍기획과 함께 기획하고 리서치 전문업체 마크로밀엠브레인을 통해 지난달 23∼27일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50대의 92%는 이미 인터넷 쇼핑을 해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바일 쇼핑 경험 역시 26.8%에 달했다. 이 설문은 전국의 20∼50대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런 수요에 맞춰 GS샵은 올 4월, 시니어를 위한 맞춤형 인터넷 쇼핑몰 ‘오아후’를 열었다. GS샵 관계자는 “액티브 시니어 관련 시장이 2010년 44조 원에서 2020년 148조 원으로 큰 폭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돼 운영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시니어들이 기존의 ‘올드’한 상품군이 아닌 신세대 지향적인 상품군을 즐겨 찾는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주부 김영애 씨(57·서울 양천구 목동)는 최근 20, 30대가 선호하는 제조유통일괄형(SPA) 브랜드에서 몸에 달라붙는 스타일의 날씬한 청바지를 구입했다. 옷 사이즈에 몸을 맞추기 위해 열심히 다이어트도 하고 있다. 50대 초반까지 국내 디자이너 여성복과 수입 패션 브랜드를 즐겨 입었던 김 씨는 “50대 중반을 넘어서며 오히려 젊은 디자인과 합리적인 가격에 주목하게 되면서 SPA 브랜드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추세는 유통업계의 고객별 매출 추이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 꽃중년 베이비부머 클릭族… 92%가 “인터넷 쇼핑 경험” ▼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점 나이키 매장에선 60대 이상 고객 매출 비중이 2010년 8%에서 올해 7월 말 기준 16.2%로 뛰었다. 롯데백화점에선 유행 주기가 빠른 SPA 브랜드 매출에서 60대 이상 소비자가 차지하는 비중(올해 1∼7월)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9% 신장했다.

백화점들은 액티브 시니어 시장의 가능성을 발견함에 따라 관련 마케팅을 확대할 예정이다. 본보 설문 조사 결과 국내에 노년층을 위한 물건의 종류가 많은 편인지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34%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렇다’고 답한 답변(15.6%)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여 교수는 “국내에선 시니어 타깃의 제품과 서비스가 제대로 발전하지 않았다는 뜻”이라며 “이들을 타깃으로 한 산업이 곧 산업계의 ‘블루오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매년 전국의 만 11∼64세 1만 명을 대상으로 라이프스타일 관련 설문을 진행해 온 한국리서치는 올해부터 설문 조사 연령대를 69세까지로 확대했다. 60대 중반 이상의 시니어 소비자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진행해 최근 발표한 설문 조사에서 이 회사는 50∼69세 응답자 921명을 소비 및 가치관 등 성향에 따라 네 개의 집단으로 분류했다. 이 가운데 유행에 민감하고 적극적·합리적 소비 패턴을 나타내며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가치관을 가진 계층 211명이 액티브 시니어로 분류됐다. 이 인원은 유행과 소비에 관심이 없고 활동성이 낮은 ‘전통형 시니어’(176명)보다 많았다.

○ 50대 남성 100% “은퇴 후에도 일하고 싶다”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다. 대한민국 노년층이 꼽는 문제점 1위는 일할 기회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본보 설문 조사에서도 50대 응답자의 75.6%(복수응답)가 노년층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점으로 ‘일을 더 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다는 점(은퇴 시기가 너무 짧은 점)’을 꼽았다. 이 설문 조사에서 특히 50대 남성은 응답자 전원이 “계속 일을 하고 싶다”고 답해 눈길을 끌었다.

평생 은행원으로 일하다 6년 전 은퇴한 김용희 씨(65·경기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세계 증시를 파악하는 것으로 하루를 연다. 증시에 영향을 미칠 국제, 경제 뉴스도 꼼꼼히 체크한다. 그는 여유자금을 증시에 투자하며 개인투자자로 어느 정도의 소득도 얻고 있다. 김 씨는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 좀 더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기 위해 하는 투자”라고 말했다.

설문조사 결과 50대는 스스로를 사회의 주축으로 생각하고, 자신감 넘치며, 능력 있는 사회적 주체로 인식하고 있었다. ‘사회적 수명’은 다했을지 몰라도 ‘신체·정신적 수명’은 여전하다는 인식도 높았다.

본보 설문 조사에서 여러 가지 단어를 나열한 뒤 해당 표현이 50대를 설명하는 데 적절한지 물은 결과 긍정적인 단어를 택한 비중은 모든 연령대 중 50대가 가장 높았다. ‘자신감 넘치는’이라는 단어에 긍정 답변(‘그렇다’와 ‘매우 그렇다’)을 한 비중은 35.6%로 전체 평균(22.3%)보다 높았다. ‘능력 있는’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한 50대 답변도 49.2%로 전체 평균(32.5%)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50대의 절반(43.2%)은 스스로를 ‘사회의 주축’이라고 평가했다. ‘50대는 사회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연령대’라고 답한 비중도 이와 비슷하게(43.6%) 나타났다.

강익구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서울강원지역본부장은 “현역 시절 사회의 경제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한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베이비부머 세대는 은퇴 후에도 쓸모 있는 존재로 남고 싶어 한다”며 “이런 이유로 액티브 시니어층이 늘어나게 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최근의 흐름을 반영해 ‘액티브 시니어’를 고용하고 나선 기업도 있다. 유한킴벌리가 지난해 서울 종로 낙원상가의 실버영화관 허리우드 극장 내에 문을 연 시니어용품 전문매장 ‘골든프렌즈’는 영업 및 판매 경험이 있는 시니어 판매원 2명을 채용했다. 직원 최종례 씨(65·여)는 대학병원 간호사로도 일했고, 의료기기 판매 관련 일도 했다. 그는 “집 안에만 있으면서 느슨하게 사는 것보다 나 스스로의 존재감을 찾기 위해 재취업을 결심했다”며 “회사 측에서 하루 6시간 이상 근무하지 않도록 배려해줬지만 오히려 8시간 이상도 거뜬히 일할 정도로 활기차게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사회적으로는 액티브 시니어 활용에 대한 고민은 부족한 상황이다. 김일순 골든에이지포럼 회장(연세대 명예교수)은 “인간 수명 100세 시대가 되면서 현재 60대는 과거 40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집단”이라며 “일정 연령이 되면 은퇴시키는 현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해외 선진국 사례를 많이 참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진·권기범·김현수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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