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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uki, Murakami/하루키와 음악]음악이 문학으로, 문학은 다시 음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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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uki, Murakami/하루키와 음악]음악이 문학으로, 문학은 다시 음악으로

동아일보입력 2013-07-24 03:00수정 2013-07-24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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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호 ‘풍월당’ 대표
하루키의 소설에서 음악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단순한 멋부리기를 넘어선 수준 높은 음악론을 품고 있다. 하루키 사진과 합성되어 있는 리스트. 그의 음악 ‘순례의 해’가 바로 하루키의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배경이다. 풍월당 제공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손님처럼 몇 년의 간격을 두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것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소설이다. 그의 작품이 국내에 소개된 지도 벌써 30년을 헤아린다. 이제 하루키는 국내에서 가장 잘 팔리는 소설가의 이름이 되었을 뿐 아니라, 일본을 넘어서 유럽을 비롯한 세계의 출판계에서 굳건한 위치를 다지면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섰다. 국내에 번역된 그의 소설만 30여 종을 헤아리며, 에세이나 기행문 등도 20편이 넘는다. 대부분 번역되어 출판되는 즉시 국내 출판시장의 판도를 뒤흔든다. 분명 놀라운 일이다.

하루키 매력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기존 일본 문학과는 판이한 현대적 스타일, 마치 미국 작가가 쓰는 듯 코즈모폴리턴적인 시각, 쉬우면서도 묘한 매력을 불러일으키는 문체, 일상의 소소한 것들에 대한 섬세하고도 따뜻한 시각, 일반 독자가 공감하기 쉬운 주인공의 소시민적인 도회생활, 균형 잡힌 교양인으로서의 자세 그리고 세계 어디서나, 즉 뉴욕이나 로마나 서울의 독자도 마치 옆에서 일어난 것처럼 쉽게 느낄 수 있는 친근함 등을 열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만이 가진 독특하고 따뜻한 소재들이다.

하루키의 소설에는 흔히 볼 수 있는 특정한 소재들이 있다. 예를 들면 여행, 마라톤, 스파게티, 맥주, 야구, 미국 소설, 꿈, 고양이, 혼자 먹는 식사 같은 것들은 그의 작품에서 거의 매번 등장한다. 마치 허리춤에 소재의 주머니를 차고 있다가 손닿는 대로 집어내어 풀어놓는데 늘 맛깔스럽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것은 역시 음악이다.

음악은 하루키의 작품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에게 음악은 단순한 소재로서의 역할을 넘어서 종종 상당히 깊은 부분에까지 들어가고, 최근에는 아예 작품의 발단이 음악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하루키의 음악들은 재즈도 많고 팝송도 있지만, 역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클래식 음악들이다.
하루키의 소설에 등장하는 음악의 CD들.

그의 글 속에 음악 이야기는 이전에도 많았지만 크게 화제를 뿌린 것은 4년 전 국내에 출간된 ‘1Q84’일 것이다. 이 작품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켜, 원래 2권으로 출간되었던 것이 제3권까지 추가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그런데 당시 소설 못지않게 화제가 된 것이 음악이었다. ‘1Q84’의 첫 부분에 야나체크의 관현악곡 ‘신포니에타’가 나오는데, 이것은 소설의 시작이자 주인공이 겪게 되는 환상적인 경험의 도입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음악에 대해서 여주인공의 입을 빌려 상세하게 설명하는데, 그가 자주 음악을 얘기하는 방식이다. 도쿄 시내에서 택시를 탄 그녀는 고가도로 위에서 교통체증으로 오도 가도 못하게 된다. 그때 택시기사가 켠 라디오에서 이 음악이 흐른다. 그리고 소설이 진행됨에 따라 결정적인 순간마다 이 음악이 나오면서 변환의 계기를 만들어준다.

‘1Q84’의 성공은 소설 속 음악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졌다. 당시 도쿄의 서점들에서는 이 책을 탑처럼 쌓아놓고 팔았는데, 눈앞에서 동영상의 슬로모션처럼 탑이 계속 사라지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그런데 그 옆에 함께 탑으로 쌓아놓았던 ‘신포니에타’ CD까지 더불어 소진되었던 것이다. ‘신포니에타’는 사실 대중적인 작품도 아니고, 소설을 읽은 사람이 음반을 사서 플레이어에 넣는다고 하여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이 아니다. 실제로 야나체크의 작품 가운데에서 아름답고 감동적인 작품은 상당히 많다. 하지만 ‘신포니에타’에 그런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 그런데도 소설의 영향으로 이미 절판되었던 조지 셀이 지휘한 CD가 복원되어 나오는가 하면, 오자와 세이지의 음반은 베스트셀러 1위로 등극하는 등 여파가 대단하였다.

이번에 나온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도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데, 여기에도 음악이 등장하니 바로 리스트의 ‘순례의 해’이다. 작곡가 리스트 자신이 겪었던 순례의 여정을 그린 것으로, 피아노 독주곡으로서는 손꼽을 만한 아름답고 진지한 명곡이다. 보다 중요한 점은 이번 ‘순례의 해’는 지금까지 하루키의 다른 소설에 언급되었던 음악들보다는 한 차원 깊게 소설의 내용에 관여한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소설 속 음악에 대한 우리의 관심도 한 단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제목에 ‘순례’라는 단어가 들어 있는 것처럼, 소설의 내용 자체가 리스트의 ‘순례의 해’에서 나온 것이다. 쓰쿠루는 사라진 후배가 놓고 간 LP판을 듣는데, 그것은 피아니스트 라자르 베르만이 녹음한 3장짜리 ‘순례의 해’ 박스이다. 그는 그중 제2면의 여섯 곡을 반복해 들으면서 우울과 격리의 구렁텅이로부터 점점 빠져나오게 된다. 결국 쓰쿠루는 친구들로부터 자신을 버렸던 이유를 듣기 위해 네 명을 차례로 찾는 순례의 길에 오른다. 마치 리스트의 곡명처럼…. 그들과 헤어진 지, 아니 그들로부터 추방당한 지 16년 만의 일이다. 리스트의 음악이 하루키를 통해서 음악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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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이전의 하루키 소설들에서 이미 음악은 많이 등장하였다.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부터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 흐른다. ‘1973년의 핀볼’에는 비발디의 ‘조화의 영감’과 하이든의 G단조 소나타가 나오고, ‘양을 둘러싼 모험’에는 쇼팽의 발라드가 등장한다. ‘오후의 마지막 잔디밭’에서 주인공이 듣는 음악은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남긴 피아노곡들뿐인데, 그는 굴드의 음반 38장을 모두 소장하고 있다.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은 제목부터 비틀스의 노래 ‘노르웨이의 숲’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비틀스보다는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과 교향곡 4번이 등장하며 라벨과 말러를 좋아하는 주인공을 보여준다. 차라리 “바흐와 비틀스는 덤”이라고 그는 말한다.

‘댄스 댄스 댄스’에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과 ‘마술피리’가 언급되고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와 쇼팽의 발라드도 나온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는 그리그의 ‘페르귄트’를 비롯하여, 로시니의 서곡집, 베토벤의 ‘전원’,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가 등장한다. ‘태엽 감는 새’에는 “파스타를 삶을 때 틀어놓으면 면이 익는 시간이 정확하다”고 주장하는 로시니의 ‘도둑까치’ 서곡도 나온다. 그 외에도 차이콥스키, 슈만, 버르토크, 프랑크, 헨델 등이 대사 속에서 쏟아진다. ‘스푸트니크의 연인’에는 모차르트의 ‘제비꽃’, 쇼팽의 스케르초, 브람스의 발라드, 베토벤의 ‘발트슈타인’ 등이 언급된다.

하루키의 글에는 작품뿐 아니라 연주자의 이름도 적잖이 나온다. 호로비츠, 아바도, 아르헤리치, 바크하우스, 뵘, 카자드쉬, 푸르트벵글러 등이 그들에 대한 평가와 함께 소개된다. 음악에 대한 그의 조예는 콘서트보다는 많은 레코드 감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상당기간 음악에 천착했던 젊은 시절이 문학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소설인 ‘해변의 카프카’에는 음악에 대해 보다 깊은 이야기가 전개된다. 베토벤 피아노 3중주곡 ‘대공’이 자세히 묘사되는데, ‘백만 불의 트리오’로 알려진 피아노 3중주단, 즉 루빈스타인, 하이페츠, 포이어만 등 3인의 음반에 대해 말한다. 또 하이든 첼로 협주곡 1번도 나오고 이어서 하이든과 베토벤 두 작곡가의 재미있는 비교도 나오는 등 실로 음악에 대해서 어느 수준에서 자유롭게 휘젓고 다닌다는 느낌이 든다. 흥미로운 것은 야구팬이기도 한 하루키가 야구를 보는 자신과 음악을 듣는 자신을 비교하면서, 음악을 듣는 행위에 훨씬 높은 가치를 둔다는 점이다. “나는 늘 드래건스를 응원했지만, 드래건스가 자이언츠에 이긴다고 나의 삶이 향상된다는 말인가”라며 자조하는 것이다.

그는 또 ‘해변의 카프카’에서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D장조에 대해 철학적인 견해를 내보인다. “이 소나타를 완벽하게 연주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의 하나다. 곡 자체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든지 불완전한 연주인 것이다. 질이 높은 치밀한 불완전함은 인간의 의식을 자극하고 주의력을 일깨운다. 더이상은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완벽한 연주를 들으면서 운전을 하면 눈을 감고 그대로 죽어버리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소나타를 들으면 인간의 한계를 듣게 된다. 완전함이란 불완전함의 한없는 축적이 아니고서는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삶을 격려해준다.”

이 말에서 우리는 음악에 대한 그의 언급들이 멋이나 치기의 수준을 넘어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루키를 읽다보면 종종 기대하지 않았던 대목에서 그만의 음악론에 감탄할 때가 있는데, 하루키 독서가 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박종호 ‘풍월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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