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뒷談]스튜어디스 ‘강심장’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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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고강도 탈출-구조훈련… 초보도 ‘자동’으로 움직인다

아시아나항공 승무원 막내 기수인
156기 훈련생들이 10일 서울 강서구
오쇠동 본사 교육훈련동에서 비상탈
출 훈련을 받고 있다. 이들은 약 3개
월 동안의 강도 높은 안전·서비스 훈
련과 9개월의 인턴기간을 거쳐야 비
로소 ‘캐빈승무원’이 된다. 사진은 훈
련생들이 탈출 슬라이딩 훈련(위쪽,
오른쪽)과 승객구조 훈련(왼쪽)을 받
는 모습이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아시아나항공 승무원 막내 기수인 156기 훈련생들이 10일 서울 강서구 오쇠동 본사 교육훈련동에서 비상탈 출 훈련을 받고 있다. 이들은 약 3개 월 동안의 강도 높은 안전·서비스 훈 련과 9개월의 인턴기간을 거쳐야 비 로소 ‘캐빈승무원’이 된다. 사진은 훈 련생들이 탈출 슬라이딩 훈련(위쪽, 오른쪽)과 승객구조 훈련(왼쪽)을 받 는 모습이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그녀는 영웅이었다. 작은 체구의 소녀 같은 승무원이었지만 기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부상당한 사람들을 부축했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면서도 침착하게 사람들을 도왔다.”

6일 오전(현지 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륙하던 중 사고가 난 아시아나항공의 214편에는 모두 16명의 항공승무원이 타고 있었다. 그중 캐빈승무원(객실승무원)은 모두 12명이었다. 이들 중 일부는 동체 밖으로 튕겨져 나가거나 사고 충격으로 앉은 채 정신을 잃었다. 큰 부상을 당하지 않은 승무원들은 불시착에 따른 충격에도 냉정하게 탑승객들의 탈출을 진두지휘했다. 많은 사람들은 사고 원인이나 탑승객들의 안위와 함께 캐빈승무원들의 이런 활약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단순히 생글생글 웃는 ‘미모의 아가씨’ 정도로만 인식됐던 캐빈승무원들의 역할과 자질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강한 심장’을 갖게 됐을까.

군기 바짝 든 훈련생들

10일 찾은 서울 강서구 오쇠동 아시아나항공 본사의 교육훈련동에서 이런 궁금증을 일부나마 해소할 수 있었다. 이곳에선 이 항공사 막내 기수인 156기 훈련생들의 안전교육 훈련이 한창이었다. 입사 한 달이 안 된 풋내기들이다.

“탈출!”

검은색 옷에 굳은 표정의 교관이 힘차게 외치자 훈련생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5m 높이의 비상 탈출 슬라이드에 몸을 던졌다. 이 정도면 유격훈련에 나선 군인들도 한두 번은 머뭇거릴 만한 높이다. 베이지색 훈련복에 하나같이 쪽 찐 머리를 한 훈련생 30여 명은 주먹을 쥔 채 두 손을 앞으로 쭉 뻗은 자세로 슬라이드에 몸을 맡겼다. 아직은 서툴지만 몸의 좌우 균형을 잘 잡아야 몸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막아, 슬라이딩 도중 화상을 입을 확률을 낮출 수 있다.

비상상황에서 본인들이 무사히 탈출하는 것도 이 훈련의 중요한 목적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탑승객들의 안전한 탈출을 돕는 방법을 체득하는 일이다. 훈련 교관인 아시아나항공 국제선 캐빈서비스팀의 고창현 부사무장은 “문이 열린 뒤 슬라이드의 상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승무원들이 문밖으로 빠져나가려는 승객들에게 떠밀리지 않도록 집중적으로 훈련한다”고 말했다. 기내에 실신해 있던 승객들을 모두 밖으로 옮긴 뒤 승무원들이 탈출 슬라이드에 오르면 비로소 긴박한 탈출 과정이 끝이 난다.

아시아나항공 캐빈서비스훈련팀의 김경수 선임사무장은 “한 명이라도 더 구하려면 신속함이 필수지만, 탈출 시 앞뒤 간격을 유지해 탑승객들의 추가 부상을 최소화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평생 훈련, 훈련, 또 훈련

훈련은 곧 실전이다. 실제 상황 대처능력을 높이기 위해 모든 훈련은 ‘목업’(mock-up·기체 일부를 실물 크기로 만든 모형)에서 이뤄진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캐빈승무원으로 최종 합격하면 우선 ‘훈련생’ 신분으로 13주간 교육을 받는다.

첫 3주일 3일간은 비상탈출, 비상착수(항공기가 물에 빠졌을 때 탈출하는 것), 화재진압, 응급 처치 등 실전을 방불케 하는 안전훈련을 주로 받는다. 교육시간은 총 139시간에 이른다. 모든 훈련에 대해서는 ‘테스트’를 거치고, 2회 연속 통과하지 못하면 곧바로 짐을 싸야 한다. 이 때문에 훈련장에서 만난 예비 승무원들은 기합이 단단히 들어간 모습이었다.

정식 승무원이 된 지 약 1년 2개월이 된 고서연 승무원은 “훈련생 시절, 큰 소리를 내기 위해 dB(데시벨) 측정기기를 놓고 훈련받던 기억이 난다”며 “강도 높은 훈련을 반복해서 받았기에 아직 초보 승무원임에도 모든 업무가 몸에 밴 듯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안전훈련이 끝나면 10주일에 가까운 서비스 훈련을 받는다. 승무원이 갖춰야 할 자세와 마음가짐을 배우는 과정이다. 기본적인 승객 응대 요령은 물론이고 기내 영어, 메이크업 기술, 걸음걸이 등 서비스와 관련한 모든 것을 이때 터득한다.

훈련생 신분을 벗어나더라도 정식 승무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들에겐 9개월간의 인턴 기간이 기다린다. 실제 비행에는 투입되지만 선배 승무원들의 따가운 감시를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만약 기내 서비스를 수행할 때 태도 문제가 반복되면 승무원의 꿈은 그 자리에서 접어야 한다.

모든 과정을 통과해 정식 승무원이 됐다고 해서 훈련이 끝난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진정한 훈련은 이때부터다. 정식 승무원이 된 이후에도 매년 안전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 기내 서비스를 총괄하는 최선임 승무원이 될 때는 리더십 교육도 받는다.

19년 경력의 변성신 아시아나항공 사무장은 “캐빈승무원들은 짧게는 한 시간, 길게는 반나절 이상 밀폐된 공간에서 함께 지내야 한다”며 “최선임 승무원은 다른 승무원들을 안정감 있게 이끄는 한편 다양한 변수에 대처할 수 있는 리더십 훈련을 주로 받는다”고 설명했다.

승무원을 향한 치열한 경쟁

훈련 얘기만 듣다 보니 제 집 드나들 듯 세계를 오가는 승무원이 매력적이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캐빈승무원은 많은 여성들에게(최근에는 일부 남성들에게도) 여전히 선망 받는 직업이다. 이 때문에 선발 과정에서부터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다. 현재 진행 중인 아시아나항공의 국제선 여객기 기내승무원 공채에는 120∼150명 선발에 약 8000명 이상의 지원자가 몰렸다. 승무원을 양성하는 학원들도 꾸준히 성업 중이다.

승무원학원 ‘ANC’ 강남본점의 이진아 실장은 “요즘에는 승무원이 되기 위해 혼자 준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대부분 전문기관이나 학원을 다니고, 과외를 받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사실 학원이라고 해서 실제 항공사 입사 후 배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어 면접, 토론 연습 등도 준비하지만 비행기 구조, 객실업무 개론, 객실구조 개론, 항공 실무 등도 학원에서 모두 배운다.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정석을 배우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법시험이나 행정고시처럼 삼수는 기본이고, 장수 도전자들도 학원에는 넘쳐난다.

이들은 왜 이렇게 승무원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일까.

승무원 취직을 준비중인 이미연 씨(26·여)는 “관광객이 몰리는 서울 명동에서 화장품 판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세계 각국의 사람을 만나는 매력을 알게 됐다”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직업을 찾다 승무원을 꿈꾸게 됐다”고 말했다. ANC학원 수강생인 김태경 씨(27)는 “남자승무원은 흔치 않지만 단순 서비스직을 떠나 승객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전문적인 일이라는 데서 더욱 큰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승무원이 되려면 신체 조건이 맞아야 한다. 키 또는 암 리치(arm reach·발뒤꿈치를 든 상태에서 팔을 위로 뻗은 높이)가 기준이 된다. 현재 기내 승무원 지원 자격에 대해 대한항공은 ‘신장 162cm 이상’, 아시아나항공은 ‘암 리치 약 220cm 이상’이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 정도가 돼야 승객의 머리 위에 있는 수하물 칸에 짐을 자유롭게 넣고 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국내 항공사들이 큰 키와 외모 등 외형 조건을 많이 따진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한 외국항공사 관계자는 “카타르, 싱가포르항공 등은 암 리치가 208∼212cm면 승무원 업무 수행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본다”며 “국적사들이 원하는 자격 요건이 지나치게 높다”고 말했다.

캐빈승무원은 대표적 여초(女超)직종으로 꼽힐 정도로 남성 승무원의 비율은 낮은 편이다. 대한항공은 전체 승무원 6000여 명 중 약 511명(8.4%)이 남성이고, 아시아나항공은 전체 승무원 3600여 명 중 남성은 186명(5.2%)뿐이다. 대한항공은 1990년대 중반까지 남성 승무원을 소규모로 뽑았지만, 1996∼2010년에는 사내 다른 부서의 남성들 중 파견자를 받아 ‘스튜어트’(남성 캐빈승무원)를 충당했다. 이 회사는 2011년부터 남성 승무원 채용을 재개했다. 아시아나항공 또한 매년 5명 내외의 남성 승무원을 뽑고 있다.

승무원의 명(明)과 암(暗)

사실 승무원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장점은 적지 않다. 우선은 대다수 승무원 또는 예비승무원들이 말하는 것처럼 “세계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 가장 크다.

현재 대한항공은 세계 45개국 126개 도시에 취항하고 있고, 아시아나항공도 23개국 71개 도시와 연결돼 있다. 그만큼 가볼 수 있는 곳이 많다는 뜻이다. 출장 일수는 단거리 비행이냐 장거리 비행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일본이나 중국 등 가까운 곳으로 가면 바로 그 비행기를 타고 돌아와야 한다. 미주 노선이나 유럽 노선을 탈 때는 해당 비행기가 아닌 다음 편을 이용해 들어오기 때문에 보통 3박 4일 출장이 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상 하루이틀 정도는 자유시간이 주어지는 셈이다. 그러나 이 시간 동안 승무원들이 지켜야 하는 규정은 꽤 까다롭다. 승무원 유니폼을 입은 채 술집에 가지 말아야 하고, 비행 8시간 전에는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하는 등이다. 다만 항공사들은 세부적인 규칙들은 ‘사내 규정’이라며 외부에 알리지 않고 있다.

장거리 비행 때 승무원들이 일하는 모습은 보는 승객이 안쓰러울 정도로 노동강도가 세다. 캐빈승무원들은 2개조로 나눠 교대로 기체 뒷부분에 있는 벙커(Bunker)에서 휴식을 취한다. 벙커에는 기내에 탑승한 캐빈승무원의 절반 정도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침대가 있다. 쉬는 시간은 대개 1∼2시간 내외. 식사를 2회 제공하는 장거리 노선의 경우 주로 첫 번째 기내식 서비스를 마친 뒤 2개조가 번갈아가며 휴식한다. 기본적으로 이·착륙 및 기내식 제공 때는 모든 승무원들이 업무를 수행한다.

여직원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항공사에는 여성 친화적인 제도가 많다는 점도 눈에 띈다. 대표적인 것이 산전 휴가 지원이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승무원이 임신을 인지한 시점부터 최대 2년 동안 출산과 양육을 위한 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전사적으로 출산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며 “세 아이를 연달아 출산해 6년을 내리 쉰 직원이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실제로 아시아나 여성 직원 중 출산 후 1년 동안 쉬는 육아휴직을 쓴 비율은 2007년 56.3%에서 지난해 79.6%로 크게 늘어났다.

승무원은 업무 특성상 다양한 국적의 수많은 사람들과 직접 대면한다. 변 사무장은 “시간이 갈수록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보다 각지의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매력이 크다”고 말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장점이기도 하지만 승무원들은 ‘대표적인 감정노동자’로 거론될 정도로 큰 스트레스를 겪는다. 개인적으로 힘겨운 상황을 만나더라도 ‘승무원은 언제나 웃는 얼굴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이들에게 늘 부담으로 다가온다.

역으로 미소가 ‘노사 협상카드’로 활용된 경우도 있다. 홍콩 캐세이퍼시픽 노조는 지난해 12월 회사 측과 임금 협상이 결렬되자 ‘미소 없는 서비스’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노조 측은 “기내 승무원들의 기본 역할은 안전 운항을 돕는 것이고 식음료 제공 등은 단지 회사 측이 요구한 부가 서비스일 뿐”이라며 미소를 거부했다. 어쩌면 승무원들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항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다양한 문화권의 고객들을 대하다 보면 당황스러운 상황과 맞닥뜨릴 때도 많다. 고서연 승무원은 최근 일본인 고객의 짐을 살짝 만졌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다. 자신의 짐을 만지는 데 민감한 일본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실수였다. 그는 “당시엔 당황했지만 승객들의 문화적 다양성을 이해하는 것도 승무원으로서 중요한 과제라는 걸 깨닫는 소중한 경험이 됐다”고 말했다.

최근 한 대기업 임원의 ‘승무원 폭행’ 사건 이후 고객 응대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목소리도 많다. 익명을 요청한 승무원 A 씨는 “사건 이후 ‘나도 라면이나 끓여달라고 해볼까’는 등 농담조로 장난을 거는 승객들이 늘어났다”며 “반말은 물론이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승객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크다”고 하소연했다.

미모의 젊은 여성들이 많다 보니 남성 승객들의 대시를 받을 때도 있다. 한 승무원은 “기내라는 한정된 공간인 만큼 남성 승객들이 짓궂게 대시하기보다는 명함을 주거나, 쪽지에 내용을 적어서 건네는 편이 많다”며 “명함을 받아둔다거나 남자친구가 있다고 둘러대는 등 최대한 승객이 무안해하지 않게 대처한다”고 귀띔했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홍정수 인턴기자 고려대 통계학과 4학년

#스튜어디스#고강도탈출#구조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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