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고발하자 색출해 왕따… 휴게실로 자리배치후 파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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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정의의 휘슬’ 내부고발자 ‘보복의 사슬’
보건복지정보개발원에 무슨 일이

조직의 비리를 세상에 알린 ‘죄’로 윤상경 부장은 혼자가 됐다. 가족 외에는 아무도 그의 편이 돼주지 않았다. 파면된 지 일 년이 가까워 오지만 아직 그의 싸움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조직의 비리를 세상에 알린 ‘죄’로 윤상경 부장은 혼자가 됐다. 가족 외에는 아무도 그의 편이 돼주지 않았다. 파면된 지 일 년이 가까워 오지만 아직 그의 싸움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Justice is done(정의가 실현됐다). 이제야 우리 조직의 정의가 제대로 서게 됐군요.’

지난해 9월 10일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고객상담부 최○○ 실장은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 인사공지글에 이런 댓글을 올렸다. 사회서비스분과 윤상경 부장(44)의 파면을 알리는 게시글이었다. 회사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직무상 비밀을 누설했다는 것이 파면 이유였다.

윤 부장이 파면을 당한 것은 보건복지부 장관실에 보낸 문서 때문이었다. 윤 부장이 작성한 이 문서에는 개발원의 내부 비리를 고발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윤 부장은 “조직의 정의를 위해서였다”고 했다.

본보 취재팀은 윤 부장의 비리 고발 보고서와 개발원에 대한 국무총리실과 보건복지부의 감사보고서, 국민권익위의 결정문 등을 입수해 사건을 재구성했다. 그 결과 최 실장의 정의와 윤 부장의 정의는 달랐다.

“윤 부장이 내부고발자다”


윤 부장의 파면 6개월 전인 3월 21일. 개발원 소속 이○○ 연구위원은 ‘본부장님 급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구겨진 종이들을 찍은 사진 5장을 다른 부서 간부에게 보냈다. 그가 찍은 메모에는 ‘한겨레신문에서 원장 옷까지 벗겨준다고 내부 문제를 더 달라고 연락’ 등이 적혀 있었다. 모두 윤 부장의 쓰레기통에서 찾은 메모들이었다.

사진에 찍힌 윤 부장의 메모는 찢어지고 구겨진 상태였다. 이 연구위원은 9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나가다 우연히 본 것뿐”이라며 “누구의 지시를 받고 일부러 뒤진 것은 아니다”고 했다.

윤 부장은 지난해 2월 ‘만연한 비리로 파행 운영되는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이란 제목의 문서를 작성해 보건복지부 장관실에 보냈다. A4 용지 4장 분량의 문서에는 간부들이 현금을 갹출해 로비 자금을 조성하고 있으며 이봉화 원장이 학회장으로 있는 학회 행사에 직원이 강제로 동원되고 있다는 등 개발원 내부 비리를 고발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윤 부장은 자신이 내부고발자로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그가 지목되기까지는 보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연구개발본부 김○○ 본부장은 3월 5일 총리실 감사가 시작된 지 이틀 만인 3월 7일 윤 부장이 내부고발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진술서를 작성했다. 과거 윤 부장이 술자리 등에서 인사평가 등 회사에 대한 불만을 자주 말해왔기 때문에 윤 부장을 ‘밀고자’로 의심한 것이다. 곧 간부들 사이에서 “윤 부장이 신고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 연구위원이 쓰레기통에서 발견한 메모로 소문은 사실로 확인됐다.

이후 술자리나 식사 자리 등 구성원이 모이는 장소에서 “윤상경을 가까이 하지 말라”는 말은 마치 사규처럼 등장했다. 일부 간부는 개발원 내부 비리를 고발한 사람이 윤 부장이라는 게 알려지자 직원들에게 “윤상경과 어울리지 말라”며 집단따돌림을 조장했다. 아무도 윤 부장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투명인간이나 다름없었다. 담배를 피우러 가면 흡연실에 있던 동료들은 서둘러 피우던 담배를 비벼 껐다. 좁은 복도에서 동료들의 시선은 늘 바닥을 향했다. 윤 부장의 주변에선 다들 걸음을 재촉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질 즈음 윤 부장과 눈이 마주치는 직원들은 “선약이 있어서…”라고 먼저 말했다. 하나둘씩 윤 부장의 주변에서 사라졌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었다.

윤 부장은 7월 1일 임시조직인 중장기발전계획 추진단의 TF 팀장으로 인사발령을 받았다. 가로 3.7m, 세로 5m의 환기창도 없는 콜센터 옆 직원휴게실이 윤 부장의 새로운 사무실이 됐다. 직원들은 윤 부장의 사무실을 직원휴게실인줄 알고 찾아왔다가 돌아갔다. “여긴 도대체 뭐하는 부서야”라는 말이 문틈으로 새어 들어왔다. 개발원은 “윤 부장의 전문성을 고려한 인사발령이었고 개발원 공간이 부족해 직원휴게실을 사무실로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부장이 파면된 뒤에 그가 사무실로 썼던 공간은 소파 2개와 테이블이 놓인 직원휴게실로 원상복구됐다.

차마 눈 감고 넘어갈 수 없었던 조직의 비리

“간부회비 사용명세 보고하겠습니다.”

2011년 7월 윤 부장이 처음으로 참석한 부장단 친목모임에서 당시 자금을 관리하던 간부가 사용명세를 공개했다. 룸살롱, 골프 등의 단어가 그의 입에서 나왔다. 일부 간부가 “아직 모르는 사람도 있는데 여기서 얘기하면 어떻게 합니까”라며 말렸고 자금관리부장은 “내가 떼먹는다고 오해할 수 있어 해야겠다”고 했다. 당시 윤 부장은 ‘간부회비’가 어떤 돈을 말하는 것인지 몰랐다.

간부회비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의 보좌관 비서관들에게 접대를 하기 위한 돈이었다. 간식·식대·택시비, 유흥용도 등 다양한 접대를 위해 돈을 모았다. 1년에 한 번씩 본부장 50만 원, 부장 30만 원씩 현금으로 걷어서 모았다. 2년간 접대를 위해 총 39명의 간부가 모은 금액은 모두 1580만 원이었다.

총리실 감사 결과 2011년 10월 23일 이○○ 기획이사와 양○○ 기획총괄부장은 경기 안산시 제일컨트리클럽에서 골프를 친 것으로 밝혀졌다. 복지위 소속 민주당 의원의 보좌관들과 함께 쳤고 골프비용 109만 원은 양 부장이 카드로 낸 뒤 간부회비에서 현금으로 91만 원을 돌려받았다.

간부회비를 거둔 데 대해 이○○ 인재개발부장은 취재팀에 “간부회비는 친목모임을 위한 돈이었다”며 “아는 사람들끼리 소주 한잔 사는 차원인데 왜 나쁜 쪽으로 생각하나. 색안경을 끼고 보면 다 그렇게 보인다”고 설명했다. 자금을 관리한 허○○ 기획총괄부장도 “간부들의 친목모임과 회사 발전을 위해 모은 것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윤 부장은 간부회비와 별도로 매달 2만 원씩 간부들의 친목모임을 위한 회비를 내왔다고 반박했다.

개발원은 윤 부장의 내부고발로 총리실 감사가 시작되자 감사팀에 대한 직원들의 답변을 통제하고 조정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총리실 감사가 시작된 지 이틀 만인 6일 윤 부장은 개발원 권○○ 감사팀장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개발원 직원에게 보내진 메일은 ‘감사관련협조요청’이란 제목과 함께 ‘국무총리실 감사 관련해 질의 및 답변사항을 요약해 제출해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자금을 관리한 허 부장은 메일을 받기 전 총리실 조사에서는 “2011년 10월 일식당에서 경찰청 이모 정보관에게 50만 원씩 2번에 걸쳐 100만 원, 국정원 이모 조정관에게 50만 원을 줬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메일이 직원에게 전달된 다음 날 조사에선 “경찰청 정보관은 만난 적도 없고 국정원 조정관은 명함만 주고받은 사이”라고 진술을 번복했다. 그는 8일 “개발원 감사팀장의 메일을 받은 뒤 진술을 번복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다 끝난 얘기다. 대답하기 싫다”고 했다. 허 부장은 총리실 감사 직후 손으로 적은 간부회비 집행명세 종이를 폐기했다.

간부회비를 이용한 접대 이외에도 개발원 간부들과 직원들은 연말이나 국정감사 직전 복지위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1인당 10만 원씩 후원금을 냈다. 개발원의 한 부장은 총리실 조사에서 “2011년도 국정감사 한 달 전 이○○ 기획이사가 국회의원 리스트를 만들어 간부들에게 전달하고 후원금을 내도록 강요해 국회의원 정치후원계좌에 10만 원을 입금했다”고 진술했다. 이 이사는 취재팀과의 통화에서 “지시가 아니었고 참고용으로 안내를 해준 것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중앙선관위 정치후원금센터 관계자는 “직장 상사가 하급자에게 정치후원금을 내라고 하는 것은 안내나 권유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 이사는 현재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상태다.

이 밖에도 감사 결과 개발원 이봉화 원장이 학회장으로 있는 한국케어매니지먼트학회가 주최하는 학술대회에 직원 50명이 동원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원장의 업무추진비 중 상당 부분은 소속 직원이나 기관 업무와 직접 관련도 없는 조찬기도회 등에 쓰였다.

윤 부장만 회사를 나왔다

파면당한 윤 부장은 국민권익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 징계 정지와 집단 따돌림 중지 등 신분보장 조치 요구를 했다. 권익위와 중앙노동위원회도 파면은 부당해고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개발원은 두 기관의 판단을 인정하지 않고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윤 부장은 아직 복직되지 못했다.

총리실과 복지부 특별감사를 통해 윤 부장의 고발 내용은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윤 부장은 여전히 실직 상태지만 기사에 거론된 인물 대부분은 여전히 개발원의 주요 보직을 맡고 있다. 윤 부장의 내부고발 뒤 개발원은 대외활동을 위한 자금 조성과 부적정한 사용, 업무추진비의 부적정한 집행과 연구개발비 유용 등 총 8가지 부문에서 징계 및 경고 처분을 받았다.

윤 부장이 “아빠 왜 출근 안 해?”라는 자식들의 질문에 “곧 할 거야”라고 대답한 지 10개월이 지났다.

복지부 차관 출신으로 개발원의 초대 원장을 맡아 15일 퇴임하는 이봉화 원장은 최근 발간한 자서전 ‘이봉화의 일과 삶 40년. 남은 건 달랑 USB 하나’에서 이번 비리 사건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성과평가에서 최하등급을 받은 내부자가 앙심을 품고 신설기관에 나타날 수 있는 허술한 업무 처리들을 악의적으로 과장, 왜곡해 제보한 것이었다. 나를 음해하는 악의적인 투서 내용을 전달했는데 이는 정치에 첫발을 내딛고자 했던 나에게 상상할 수 없는 상처와 좌절을 안겨주었다.’

이 원장은 16일 이 책 출판기념회를 연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성연우 인턴기자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

#비리고발#내부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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