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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성 전문기자의 &joy]우습구나! 길 위에서 길을 찾고, 소를 타고 소를 찾는 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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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성 전문기자의 &joy]우습구나! 길 위에서 길을 찾고, 소를 타고 소를 찾는 이여!

동아일보입력 2013-07-12 03:00수정 2014-02-06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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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 스님 발자취를 따라 걷다
수덕사~천장사~일락사~개심사~서산마애삼존불
경허 선사의 발자취가 서린 천장암 뒤란 돌계단길. 경허는 이 길을 오르내리며 ‘산다는 게 풀끝 이슬’임을 깨우쳤다. 하루살이인생, 끝도 시작도 없는, 가도가도 황톳길임을 알았다. ‘하루라는 오늘/오늘이라는 이 하루에//뜨는 해도 다 보고/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알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죽을 때가 지났는데도/나는 살아 있지만/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천 년을 산다고 해도/성자는/아득한 하루살이 떼’(조오현 ‘아득한 성자’). 예산 수덕사=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나아갈 길이 없다 물러설 길도 없다

둘러봐야 사방은 허공 끝없는 낭떠러지

우습다

내 평생 헤매어 찾아온 곳이 절벽이라니

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져야 할 이 절벽에

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아지랑이들

우습다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

―조오현 ‘아지랑이’ 전문

경허 선사(1849∼1912)는 대자유인이다. 일체의 머무름도, 일체의 걸림도 없었다. 그는 문둥병 여인과 한방에서 지내기도 하고, 일부러 아녀자를 희롱한 뒤, 묵묵히 몽둥이세례를 견디기도 했다. 나중엔 ‘빈 거울 鏡虛(경허)’나 ‘깨우친 소 惺牛(성우)’라는 법명조차 벗어던졌다. 결국 서당훈장으로 산골(함경도 갑산)에 숨어 살다 눈을 감았다.

내포(內浦) 땅엔 아직도 경허의 발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 수덕사 개심사 일락사 천장사 부석사 간월암…. 경허가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던 천장사엔 스님이 용맹 정진했던 쪽방이 그대로 남아 있다. 부석사 심검당(尋劒堂) 현판은 경허가, 큰방에 걸려 있는 부석사(浮石寺) 현판은 만공이 썼다. 간월암(看月庵) 현판글씨도 만공 것이다. 부석사엔 만공이 수행하던 토굴도 있다.

경허는 체격이 건장했다. 얼굴도 부리부리한 달마화상 같았다. 제자 만공과 벌인 탁발만행 일화는 ‘아름다운 전설’로 남았다. 경허가 갑자기 물 긷는 어느 마을 처자에게 입을 맞추는 바람에 졸지에 동네 청년들에게 쫓겨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줄행랑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다리 아프다”며 걷기 힘들다던 만공은 바람같이 내달렸다던가.

‘가소롭다 소 찾는 이여/소를 타고도 소를 찾네/노을 진 방초 길에/이 일이 실로 아득하구나’(경허 ‘소를 찾다’에서)

내포는 ‘내륙 깊숙이 들어앉은 포구’를 말한다. 오늘날 태안, 서산, 당진, 홍성, 예산, 아산 등 가야산을 중심으로 열 고을이 바로 그곳이다. 아산만, 가로림만, 천수만에 연결된 하천을 통해 내륙 깊숙이까지 뱃길이 닿았다. 중국의 불교문화가 이곳을 통해 곧바로 백제에 밀려들었다. 태안마애삼존불, 서산마애삼존불, 예산화전리 사면석불 등이 바로 그 흔적이다.

내포 땅은 소박하다. 아늑하다. 낮은 땅과 둥글고 야트막한 산. 사람들도 서산마애삼존 부처님 얼굴 닮았다. 보리밥알갱이처럼 둥근 볼에 서글서글한 웃음. 보기만 해도 넉넉하다. 가운데 석가부처는 체격이 당당한 장자풍이다. 오른쪽 미륵부처 얼굴은 천진난만하다. 왼쪽 관음보살 웃음도 티 없이 맑다. 세 분 얼굴 모두 통통하다.

서산보원사(普願寺) 터는 서산마애삼존불과 가깝다. 걸어서 15분이면 충분하다. 장대한 당간지주와 5층 석탑이 남아 있다. 승려가 한때 1000명이 넘었던 절집이다. 보원사 터에서 개심사 가는 코스는 조붓한 오솔길이다. 아래엔 해미읍성이 한눈에 보인다. 그 너머엔 바다가 있다. 산은 높지 않고 야트막하다. 개심사(開心寺)는 ‘마음의 문을 여는 절집’이다. 소박하다. 심검당의 ‘구불퉁 기둥’이 늙은 어머니의 구부정한 등 같다.

‘홀연히 생각하니 도시 꿈속이로다!/천만고 영웅호걸 북망산 무덤이요,/부귀문장 쓸데없다 황천객을 면할쏘냐?/오호라, 이내 몸이 풀끝의 이슬이요, 바람 속의 등불이라’(경허 ‘참선곡’에서)

대원군이 절 불태우고 아버지 묘 이장▼

천자 2대 배출한다는 명당 ‘가야사 터’


‘천자가 2명 나온다’는 천하명당 남연군 묘 .
서산 예산 홍성에 걸쳐 있는 가야산엔 수많은 절과 탑들이 있었다. 현재 확인된 옛 절터만도 얼추 100개가 넘는다. 그만큼 내포가야산은 천하명당이다. 수정봉(453m)-옥양봉(621m)-석문봉(653m)-가야봉(678m)-원효봉(677m)이 연꽃잎처럼 빙 둘러 있다. 연꽃 한가운데 꽃심이 바로 옛 가야사 터이다. 가야사는 1846년 흥선대원군이 불태우고 그의 아버지 남연군(이구) 묘를 이장하는 바람에 졸지에 사라졌다.

남연군 시신은 가야사 금탑자리에 묻혔다. ‘2대에 걸쳐 천자(天子)가 나온다’는 혈처이다. 실제 묘를 쓴 이후 대원군 후손 중에서 대한제국의 고종황제(재위 1863∼1907), 순종황제(재위 1907∼1910)가 나왔다. 풍수지리상으로 ‘석중지토혈(石中之土穴)의 명당’이라고 한다. ‘사방이 돌로 쌓여 있는데 시신이 묻힌 자리만 흙’이라는 것이다. 1868년 독일 상인 에른스트 오페르트는 남연군 묘 도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무덤 주위에 돌이 워낙 많은 데다 관의 회벽이 두껍고 단단했기 때문이다.

가야산을 중심으로 북쪽엔 상왕산(307m), 남쪽엔 덕숭산(495m)이 있다. 상왕산엔 개심사 일락사, 덕숭산엔 수덕사 정혜사가 자리 잡고 있다.

▼“절터만 100곳 넘는 땅, 개발로 망가지면 안돼”▼
수덕사 주지 지운 스님

수덕사 주지 지운 스님(사진)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수덕사 살림은 기본이고, 속세의 온갖 크고 작은 일에도 자의 반 타의 반 얽혀 있다. 나무가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수시로 불어대니 어쩔 수가 없다. 한때 가야사 옛터와 보원사 옛터를 가로지르는 관통도로 건설을 앞장서서 막은 것이 그 좋은 예다. 송전탑 건설이나 골프장 건설에 반대한 것도 마찬가지. 옛 선사들의 발자취가 망가지는 걸 그대로 볼 수는 없었다. 결국 관통도로 대신 생태 탐방로를 만들기로 관할 행정부서와 합의를 이끌어냈다. 2010년 수덕사를 중심으로 중부지방산림청, 당진시, 서산시, 홍성군, 예산군 등과 사단법인 ‘내포문화 숲길’을 만들어 법인이사장을 맡았다. 스스로 무거운 짐을 짊어진 것이다.

“허허, 이 세상에 사람과 부대끼는 게 제일 힘든 것 같아요. 하루에도 몇 번씩 모든 것 훌훌 털어버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소임을 맡았으니 내 맘대로 그럴 수도 없고…. 이 내포가야산 일대는 이름이 ‘덕숭산-수덕사-덕산’으로 이어지는 ‘3덕(德)’의 땅입니다. 가야산 일대에는 옛 절터가 100여 개나 됩니다. 수많은 불교문화유산이 제대로 발굴 조사되지도 못한 채 땅 밑에 묻혀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런데도 무턱대고 개발부터 해버리면 그 소중한 유산들이 영원히 사라져버리지 않겠습니까. 사람들 생각은 서로 다를 수 있지만 부처님 덕으로써 이야기하면 못 풀어 나갈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내포숲길은 220km가 만들어졌고 올해 안으로 총 320km가 마무리될 것입니다.”

지운 스님은 1963년 9세 때 수덕사에 출가해서 거의 이곳에서만 산 토박이다. 젊은 시절 2년 서울생활을 빼놓곤 절집 밖에서 산 적이 없다. 경허, 만공 등 큰스님들의 일화도 많이 들었지만, 그보다는 ‘말보다 몸으로 하는 게 먼저’라는 가르침이 수덕사의 가풍이라고 믿는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어른 스님들로부터 그렇게 눈으로 보고 배웠던 것이다.

“자신을 낮추어야 행복합니다. 드러나지 않아야 평안합니다. 욕심이 생기면 나를 내세우게 되고, 자꾸 주장하게 됩니다. 그러다 맘대로 안 되면 화를 내지요. 물론 저를 포함해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화가 납니다. 문제는 그 화를 잘 다스려서 지혜로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새벽에 눈을 뜨면 도량의 쓰레기부터 줍습니다. 누구 보라고 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을 닦아 맑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야 다른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부드럽게 대할 것 아닙니까?”

▼경허의 빛나는 세 제자 ‘수월-혜월-만공’

경허 선사가 용맹정진했던 천장암 쪽방.
‘맏형인 수월은 북으로 가 북방을 비추는 상현달이 되었고, 혜월은 남으로 가 남방을 비추는 하현달이 되었으며, 만공은 홀로 중부에 남아 보름달인 만월이 되었다. 그리하여 세 명의 달이 이루어내는 달빛은 어느 날 어느 한시에도 우리나라의 전역을 잠시도 비우지 않고 낱낱이 비추고 있음으로써 비록 캄캄한 밤이라 할지라도 가야 할 먼 길은 밤에도 또렷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최인호 소설 ‘할’에서)

호랑이에겐 고양이새끼가 없는 법. 경허 선사에겐 ‘빛나는 세 제자’ 삼월(三月)이 있었다. 맏이 상현달 수월(水月·1855∼1928) 선사, 둘째 하현달 혜월(慧月·1861∼1937) 선사, 막내 보름달 만공월면(滿空月面·1871∼1946) 선사가 바로 그들이다. 수월과 만공의 나이 차는 16년, 스승 경허와 맏이 수월은 불과 6년 차밖에 나지 않는다. 1884년 이들은 천장사에서 스승 경허 선사를 모시고 함께 공부했다. 수월 스물아홉, 혜월 스물셋, 만공 열세 살. 경허는 당시 한 평도 안 되는 쪽방(1.3m×2.3m)에서 누더기 옷에 모기와 빈대에 물려가며 수행했다. 졸음을 쫓기 위해 송곳을 턱밑에 받쳐놓기도 했다. 세 제자들은 바로 옆방에서 함께 기거하며 스승을 따랐다.

수월은 짚신삼기 선사로 유명하다. 그는 평생 자나 깨나 천수경만 외우며 깨달음을 얻었다. “도를 닦는다는 것은 별거 아녀. 마음을 모으는 거여. 무얼 혀서든지 마음만 모으면 되는 겨. 하늘 천 따지를 허든, 하나둘 셋을 세든….” 그는 백두산 근처 고갯마루에 허름한 암자를 짓고, 오가는 배고픈 길손들에게 아무런 보상 없이 밥을 해주고 짚신을 삼아주며 살았다. 사납기로 이름난 만주의 개들도 그 앞에선 꼬리를 흔들며 온순해졌다.

혜월은 천진한 어린아이 그대로였다. 글 모르는 까막눈으로 소문났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평생 괭이로 땅을 가꾸어 농사를 짓고, 지게로는 산에 가서 나무를 하며 살았다. 가는 곳마다 황무지를 일궈 논밭을 만들었다. 그는 부산선암사 바위 밑에서 솔방울 가득 찬 자루를 메고 선 채 그대로 열반했다.

만공은 소박했다. 법문도 저잣거리 사람이 알 정도로 알기 쉬웠다. 만해 한용운(1879∼1944)을 “내 애인”이라며 아낀 것이나, 한참 아래인 김좌진 장군(1889∼1930)과 팔씨름하며 허물없이 지낼 정도로 소탈했다. 그는 1945년 8월 16일 수덕사에서 광복 소식을 들었다. 그는 제자들 앞에서 무궁화꽃송이에 먹물을 듬뿍 묻혀 한지에 ‘世界一花(세계일화)’라고 쓰며 말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요, 이 나라 저 나라가 둘이 아니요, 이 세상 모든 것이 한 송이 꽃이다. 머지않아 이 조선이 ‘世界一花(세계일화)’의 중심이 될 것이다. 지렁이 한 마리도 부처로 보고, 저 미웠던 왜놈들까지도 부처로 봐야, 이 세상 모두가 편안할 것이다.”

▼Travel Info▼

교통 △승용차=서울→경부고속도로→천안 나들목→국도 21호선→예산→수덕사, 서울→서해안고속도로→서해대교→당진 나들목→국도 32호선→합덕→지방도 622·609호선→덕산→수덕사, 서울→서해안고속도로→서해대교→송악나들목→국도 32호선 →예산→수덕사 △버스=서울남부터미널 수덕사행(하루 2회 2시간 30분 소요)

먹을거리 ▽신토불이묵집(041-337-5576) ▽산채정식 수덕골미락식당(041-337-0606) ▽추어탕 산초마을(041-338-3535) ▽어죽 예당가든(041-333-4473) ▽붕어찜 줄포회관(041-333-9000) ▽소갈비 연포가든(041-337-0324) ▽홍성 내당한우(041-632-0156) ▽서산 삼해횟집 밀국낙지탕(041-665-7878)

절집 토종된장 두리하나 된장(041-664-6359, 010-4706-6358)=서산마애삼존불 부근 보원사내.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일대 농가의 토종 콩으로 칠순 보살님이 2009년부터 빚은 것. 간장은 2005년산. 택배 가능.

수덕사 템플스테이(041-330-7789)=경허 선사 발자취 따라 걷기, 감자 구워 먹기, 수덕사대웅전 조석예불, 발우공양, 달빛참선, 108배 하며 염주 꿰기, 숲길명상과 산행, 불교문화유적 순례. 스님과의 대화, 덕산온천욕 등.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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