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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얼음처럼 박힌 상실의 아픔… 그대 어느 역으로 가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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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얼음처럼 박힌 상실의 아픔… 그대 어느 역으로 가십니까

동아일보입력 2013-07-06 03:00수정 2013-09-0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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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양억관 옮김/437쪽·1만4800원/민음사
기차역을 설계하는 엔지니어 쓰쿠루는 대학 시절 단짝 친구들에게 영문도 모른 채 절교당한 뒤 ‘향해야 할 장소’도 ‘돌아가야 할 장소’도 잃어버린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로부터 십여 년 만에 옛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떠나는 순례의 끝에서 그는 자신이 가야할 곳을 찾을 수 있을까?
전작들과 비교해 이번 신작 장편소설은 사람과 사람의 유대에 관심이 깊어진 하루키의 변화가 담긴 작품이다.

기차역 설계 엔지니어 다자키 쓰쿠루는 고교 시절 나고야에서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절대적 조화’를 느끼게 하는 4명의 친구와 단짝으로 지냈다. 이름에 색깔을 뜻하는 한자가 있어 각각 아카(赤), 아오(靑), 시로(白), 구로(黑)라고 불렀던 네 친구를 나고야에 남겨두고 홀로 도쿄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한 쓰쿠루. 2학년 여름방학을 맞아 고향에 돌아온 그에게 친구들은 이유조차 알려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절교를 통보한다. 존재를 부정당한 듯한 절망감에 죽음까지 생각했던 쓰쿠루. 당시의 아픈 상처도 이제 희미해져가는 삼십대 중반의 쓰쿠루는 친구들에게 자신과 절교한 이유를 묻기 위해 네 친구를 찾아간다.

쓰쿠루는 역사나 사회에 무심하고 내면으로 침잠하는 하루키 전작의 주인공과 연장선 위에 있다. 쓰쿠루가 한자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의미의 ‘作(작)’인 걸 생각하면, ‘작가’ 하루키는 물론 세상 속에 작업물을 남기며 살아가는 모든 현대인의 초상이다.

친구들과의 대면은 쓰쿠루가 애써 외면해 왔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순례의 여정이기도 하다. 순례의 끝에 그는 상처받기 쉬웠던 순진한 소년기를 졸업하고 ‘온갖 것들을 끌어안고 살 수 있는’ 어른으로 거듭난다. 순례자 쓰쿠루는 순간순간 순례를 계속할 용기와 결단을 요구받는다. 태어나서 한 번도 일본 밖에 나가 본 적이 없는 주인공이 친구 구로와의 만남을 위해 핀란드로의 장거리 여행을 결심하는 부분은 꽤나 상징적이다.

하루키는 5월 일본 교토대 강연에서 “나도 (주인공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이것은 성장 스토리로, 성장을 크게 하기 위해서는 상처도 크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했다. 작가의 이런 성장론은 소설 말미에서 쓰쿠루의 독백으로 반복된다.

‘사람의 마음과 마음은 조화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처와 상처로 깊이 연결된 것이다.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이어진다. 비통한 절규를 내포하지 않은 고요는 없으며 땅 위에 피 흘리지 않는 용서는 없고, 가슴 아픈 상실을 통과하지 않는 수용은 없다. 그것이 진정한 조화의 근저에 있는 것이다.’(363쪽)

가슴에 얼음처럼 박힌 상실의 아픔을 함께 녹일 ‘체온’에 대한 갈망은 하루키에게 전 세계적 인기를 가져다 준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의 그것과 상당히 유사하지만 ‘색채가 없는…’에서는 보다 구체화됐다. ‘그 차가운 중심부를 스스로의 힘으로 조금씩 녹여 내야 한다.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 동토를 녹이기 위해서 쓰쿠루는 다른 누군가의 온기를 필요로 했다. 자신의 체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388쪽)


클래식 음악 작품과 요리에 대한 애정과 세밀한 묘사, 독자들을 열광케 하는 하루키 특유의 인생에 대한 ‘쿨’한 잠언들은 신작에서도 여전하다. 다만 고립된 ‘개인’에서 ‘관계’와 ‘소통’을 향해 느리지만 착실히 나아가려는 몸짓은 작가의 전작들보다 한결 또렷한 느낌이다. 헤아려 보니 하루키도 올해 나이 예순넷. 그도 어느덧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무라카미 하루키#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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