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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지역서 전학 온 급우에 “빨갱이 척결”

동아일보

입력 2013-06-19 03:00:00 수정 2013-06-19 14:01:15

온라인 욕설 맹목적 전파… 10대들 ‘묻지마 지역감정’

이진성(가명·14) 군은 충격을 받았다. 전학 온 지 벌써 일주일이 넘었는데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기는커녕 더 멀어지는 기분이다. 최근에는 이런 말까지 들었다. “야, 냄새 나. 이쪽으로 오지 마.”

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이 군은 하루에 두 번은 샤워를 한다. 이런 그를 두고 친구들은 왜 냄새가 난다고 할까. 왜 걸핏하면 툭툭 치고, 말을 걸어도 대답을 잘 안 할까.

이유는 간단했다. 얼마 전 전학을 와서다. 서울의 A중학교로 전학 온 다음 날, 반에서 힘 좀 쓴다는 친구 한 명이 그를 불렀다. “너한테 홍어 냄새 난다.” 홍어는 최근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전라도 출신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이때부터 다른 친구들도 놀림 대열에 동참했다. 자연스럽게 왕따 분위기가 생겼다. 그리고 얼마 뒤 그의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이 군은 말수가 부쩍 줄었다. 심각하진 않지만 대인기피증까지 보인다. 그의 아버지는 “아이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지금은 아들을 위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 영문도 모르면서 지역감정 표현 남발


10대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습득한 특정 지역에 대한 거부감을 실제 생활에서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영문도 모르면서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발언과 행동을 스스럼없이 하는 10대가 늘고 있다. 이른바 ‘묻지 마’ 식 지역감정이 청소년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는 것.

이처럼 상황이 악화된 것은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 때문이란 분석이다. 특히 ‘일베(일간 베스트 저장소)’와 ‘오유(오늘의 유머)’ 등 10대가 몰리는 사이트들이 대표적이다. 겉으론 보수(일베), 진보(오유)를 외치지만 극단적인 표현으로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때가 많다. 이를테면 오유에 ‘부정선거 정황에도 경상도는 침묵한다’는 등 맹목적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글이 이어지는 식이다. 일베에 글을 자주 남긴다는 중학생 김모 군(14)은 “그냥 재미있는 놀이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고 쓰는데 중독성이 있다”고 했다.

기자가 서울의 B중학교로 찾아간 11일. 많은 학생이 지역감정과 연관된 단어를 자연스럽게 입에 올렸다. 10명 중 7명은 ‘빨갱이’, ‘홍어’, ‘노운지(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을 비하하는 표현, 운지는 추락을 의미하는 인터넷 은어다)’ 같은 단어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한다고 했다.

학생들의 휴대전화를 봤다. 한 학생은 카카오톡 창에 ‘빨갱이 척결’이라 적었다. 혹시 부모님이 경상도 출신일까. 대답은 이랬다. “그냥 유행처럼, 재미로 쓰는 건데…. 이유는 없어요.”

이 학교 정모 교사는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문제라고 했다. “아이들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고 글을 남기면서 특정 지역 관련 욕설을 스펀지처럼 흡수해요. 수요자가 그대로 전파자가 되면서 묻지 마 지역감정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셈이죠.”


○ 왜곡된 지역감정, 장기적으로 더 위협적

지난해 12월 대통령선거에선 10대의 왜곡된 지역감정이 그대로 나타났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따르면 대선 기간 10대들이 작성한 특정 지역 비하 글은 그 전의 대선과 비교해 3배 가까이 늘었다. 네이버 관계자는 “10대의 표현은 매우 적대적이고 과격한 게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서울의 A사립대에선 축제 기간에 전라도 지역을 비하하는 현수막이 올라왔다. 비난이 쏟아지자 슬그머니 내렸다. 학교 총학생회 관계자는 “문구를 만든 학생이 습관처럼 쓰던 말을 적었다가 생긴 해프닝”이라고 해명했다.

올해 초 케이블의 게임 전문 채널에선 선수가 닉네임으로 ‘북괴멀티전라도’라고 쓴 게 그대로 방송에 노출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신종호 서울대 교수(교육학과)는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표현은 10대에겐 장기적으로 더 위협적일 수 있다. 영문도 모른 채 내재된 지역감정은 전통적인 지역감정보다 더 풀기 힘든 ‘신(新)지역감정’으로 악화될 개연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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