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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공간에 빛과 어둠… “엄마 몸속처럼 느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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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공간에 빛과 어둠… “엄마 몸속처럼 느껴져”

동아일보입력 2013-06-03 03:00수정 2013-06-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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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개막한 ‘2013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가보니
설치미술가 김수자 씨 ‘호흡 : 보따리’전
제55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 단독작가로 선정된 설치미술가 김수자 씨는 전시장 안으로 빛과 자연을 끌여들여 관람객에게 새로운 공간을 체험하는 기회를 선사했다.바닥은 거울, 벽은 반투명 필름으로 뒤덮여서 무지갯빛을 발한다. 베네치아=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실내는 텅 비어있다. 바닥은 거울로, 유리벽은 반투명 필름으로 뒤덮은 공간 자체가 작품이다. 사방에서 밀려오는 자연의 빛이 만들어낸 무지갯빛 궁전, 그 속에 흐르는 나지막한 들숨날숨 소리가 휴식과 평온함을 선물한다. 전시장 내 관객의 모든 몸짓이 예술작품이 된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1일 공식 개막한 ‘2013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 전시는 ‘텅 빈 충만’으로 요약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권영빈)가 운영하는 전시관은 올해 김승덕 커미셔너(59·프랑스 디종의 현대미술센터 르콩소르시옴 공동디렉터)가 기획을 맡아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설치미술가 김수자 씨(56·사진)의 ‘호흡: 보따리’전을 선보였다.

시각적 장관으로 경쟁하는 다른 국가관과 달리 비우고 덜어내는 방식으로 자신을 향한 성찰과 사색의 시간을 갖게 한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에도 사람들이 한국관 앞에서 길게 줄을 서는 이유다.

1991년 한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아웃사이더로 작업해온 작가는 한국인에게 친숙한 보따리와 바느질을 퍼포먼스, 영상, 설치로 풀어내 국제무대에서 각광받고 있다. 이번 전시에 대해 그는 “자발적 망명에서 모국으로부터 받은 가장 영예로운 초대”라며 “30년간 작업을 총체적이면서도 가장 비(非)물질화된 환경으로 제시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 공간을 체험하다

휴대전화를 끄고 신발을 벗고 들어간 관객은 눈부시게 환한 빛의 방(‘호흡: 보따리’)에서 초월적 공간을 체험한 뒤 절대 침묵과 완벽한 어둠의 방(‘호흡: 블랙아웃’)으로 옮겨간다. 1분간 빛과 소리를 차단한 암실에서 내 몸과 호흡을 인식하게 된다. 지난해 허리케인 샌디가 강타한 뉴욕에서 전기와 온수 없이 생활하며 문명의 조건을 돌아본 작가는 자연 앞에서 오만한 문명을 통해서도 어둠이 온다는 사실을 은유한다.

빛과 색으로 가득한 ‘호흡: 보따리’는 바깥 풍경을 내부로 포용하면서 관객의 이미지를 무한 복제한다. 미술잡지 ‘드로스트 이펙트’의 빈센코 에시레노 기자는 “네덜란드 판화가 에스허르의 작품처럼 미로 같은 공간이 끝없이 순환, 확장되면서 여러 차원을 한공간에서 경험하게 만든 점이 흥미롭다”고 평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 정도련 부큐레이터는 “거창한 스펙터클을 선보인 국가관들과 대조적으로 불필요한 요소는 모두 빼고 절제한 점이 돋보였다”며 “숨통을 확 트이게 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 기억을 중첩하다

빛과 어둠을 대비한 한국관은 과시와 과잉의 시대에 한발 떨어져 침묵의 소리를 듣게 한다. 또한 빈방에 초대받아 각자의 추억과 기억을 되새기는 심리적 공간이기도 하다. 김승덕 커미셔너는 “유리창과 메탈로 이뤄진 한국관 구조를 최대한 살려 관객에게 빛과 색으로 이뤄진 순간의 경험, 그리고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여행을 제안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3월부터 베네치아에 체류 중인 고은 시인은 한국관을 둘러본 뒤 “모두 자기주장만 내세우는데 강력한 자아를 정화시키는 부드러운 자궁, 엄마 몸속으로 회귀한 느낌을 준다”고 감탄했다. 잠시 침묵하던 김수자 씨가 답했다. “내 생각과 일치하는 말씀이다. 자궁 속에서 접한 어둠, 마지막 숨을 내쉴 때 만나는 어둠, 두 어둠은 결국 빛의 연장이기도 하다. 인간과 자연, 어둠과 빛, 소리와 정적 등을 체험하며 자기 감각과 인식을 돌아보면 좋겠다.”
▼ 세상 모든 지식 한데 모은 상상의 박물관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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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광주 비엔날레 총감독 마시밀리아노 조니가 이끈 본전시


2013 베니스 비엔날레의 마시밀리아노 조니 총감독이 ‘백과사전식 전당’을 주제로 꾸민 본전시장. 베네치아=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1955년 11월 16일 이탈리아 태생 미국인 마리노 아우리티(1891∼1980)는 ‘백과사전식 전당’이라고 자신이 명명한 건물 디자인에 대한 특허를 신청했다. 세상 모든 지식을 집대성한 136층 규모의 박물관을 짓겠다는 구상이었다. 생전에 실현되지 못한 그의 꿈이 58년 뒤 부활했다.

2010년 광주 비엔날레 예술총감독을 지낸 마시밀리아노 조니 씨(40)는 2013 베니스 비엔날레(1일∼11월 24일) 본전시의 총감독을 맡아 아우리티의 ‘백과사전식 전당’을 주제로 정해 38개국 작가 150명의 작품을 선보였다. 참여 작가 중 60%가 작고했다는 점,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거나 주류와 동떨어져 활동한 아웃사이더들의 작품에 비중을 둔 점, 다양한 학문과 연구에 기반을 둔 점이 눈에 띄었다.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정보가 유통되기 전부터 지식과 상상, 이미지에 대한 갈망이 인류의 DNA에 박혀 있음을 엿보게 하는 전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베니스 비엔날레는 올해로 55회째를 맞았다. 본전시와 나라별 대표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는 국가관 전시(88개국 참여)가 두 축을 이룬다.

본전시의 구성은 20세기 초 유럽 문화를 되짚는 박물관형 전시에 가까웠다. 심리학자 카를 융이 자기 내면과의 대화를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 ‘레드북’과 아우리티의 건축 모형에서 시작한 본전시는 민화 신화 종교 철학 고고학 등 인문학 연구와 자료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과거와 현재의 만남을 시도했다.

보통 사람들의 결혼식과 기념사진 같은 기록물, 미국 여성작가 신디 셔먼이 모은 일반인의 앨범 같은 수집품도 예술작업과 대등하게 조명됐다. 전반적으로 ‘만인보’라는 주제 아래 임시 박물관의 개념을 제시했던 광주 비엔날레와 친연성이 두드러진다. 광주 비엔날레 참여 작가 중 36명이 겹친다. 조니 총감독은 “광주에서 시작한 연구 프로젝트의 제2권이라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올해 88개국이 참가한 국가전에선 첫 참가국인 앙골라에 국가관의 황금사자상이 돌아갔다. 앙골라관은 수도 루안다의 버려진 물건들을 만화경처럼 포착한 사진작가 에드송 샤가스의 작품을 전시했다.

베니스 비엔날레가 ‘예술계의 올림픽’이라고도 불리는 이유는 각 국가관이 자국 예술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기 때문이다. 이런 고정관념에 저항하는 시도도 있었다. 독일과 프랑스는 전시공간을 맞교환해 전시를 꾸몄다. 독일관에 둥지를 튼 프랑스관은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음악세계를 촉각적 체험으로 전시한 알바니아 출신 안리 살라의 작품을 전시했다. 프랑스관에 둥지를 튼 독일관은 독일 작가 로무알트 카르마카르 외에도 중국 작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등 다른 나라 출신 작가 3명의 작품을 함께 전시했다. 러시아관은 독일인 큐레이터가 전시 연출을 맡았다.

베네치아=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베니스 비엔날레#한국관#김수자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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