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란히 드러낸 치열한 작업과정… 예술가의 일기장 몰래 들춰보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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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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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나미술관 ‘아티스트 포트폴리오’전

지난 30년의 여정을 통해 작업세계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 김종구 씨의 ’30년 풍경’. 사비나미술관 제공
지난 30년의 여정을 통해 작업세계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 김종구 씨의 ’30년 풍경’. 사비나미술관 제공
신진 작가들이 미술관에서 전시 기회를 얻거나 국내외 창작스튜디오에 입주 작가로 선정되기 위해선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자신이 해온 작업을 파일이나 문서 형태로 정리한 작품집, 즉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일이다.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이 자기 그림을 샘플로 고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용도로 사용했다는 포트폴리오는 오늘날 예술 분야를 넘어 다양한 분야의 진학과 취업과정에서 전문적 기량을 보여주는 참고자료를 말한다.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이 기획한 ‘아티스트 포트폴리오(Artist's Portfolio)’전은 포트폴리오를 화두로 삼아 예술가의 또 다른 자화상을 조명하는 자리다. 사진 회화 설치 분야에서 강홍구 김종구 노석미 뮌 유현미 원성원, 디자인 분야에서 박우혁&진달래, 슬기와민 8개 팀이 참여했다.

강재현 전시팀장은 “포트폴리오란 작가의 문제의식과 가치관, 작품세계를 담은 기록물이자 일기장 같은 것”이라며 “작품 구상과 제작 방식, 작업의 변화과정 등 작가의 내면과 작품의 속살을 엿볼 수 있는 전시”라고 소개했다. 3000∼4000원. 5월 24일까지. 02-736-4371

○ 폭넓게 혹은 친밀하게

이번 전시는 단순히 그간의 작업을 정리해 보여주는 획일적 구성이 아니라 각기 취향대로 작품의 개념과 형식을 이해할 수 있게 개성을 살린 점에서 돋보인다. 자기 관점에서 재해석한 8가지 형태의 포트폴리오를 비교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1층에 들어서면 흰 벽에 직접 그림을 그린 뒤 이를 소재로 제작한 영상작품을 곁들인 유현미 씨의 ‘미술관 지킴이’가 관객을 반긴다. 회화와 조각을 결합해 설치작품을 만들고 이를 사진으로 촬영하는 핵심적 제작 과정을 친절하게 소개한 섹션이다. 1990년대부터 쇳가루 작업을 시작한 김종구 씨는 대학 시절부터 최근까지 작업의 흐름을 연대기적 아카이브(archive·기록 보관소) 형태 공간으로 구성했다. 사진과 스케치, 영상과 조각이 한데 모인 ‘30년 풍경’을 통해 그의 예술세계를 폭넓게 살필 수 있다.

강홍구, 노석미 씨는 작품 이면의 배경을 드러냈다. 사진가 강 씨는 기존 작업을 나열하는 대신 세상에서 빛 보지 못한 테스트용 이미지와 그 실패 원인을 낙서처럼 전시장 벽에 남겼다. 회화 일러스트 오브제 작업을 오가는 노 씨는 다양한 장르의 결과물을 똑같은 크기의 액자로 만들어 벽에 걸고 자화상과 작업실 의자를 곁들였다.

○ 개성적으로 혹은 객관적으로

포트폴리오는 1차적으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들지만 작가 스스로 작업을 정리하는 계기도 제공한다. 미디어아티스트 그룹 뮌의 경우 지난 10년간 작업을 축소 모형으로 만들어 이를 개성적인 오브제로 재구성했다. 특정 시리즈를 선택해 새로운 작품 형태로 만든 경우도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 슬기와민은 지금까지 했던 책과 인쇄물의 디자인을 임의적으로 해체 조합하는 영상을 만들었고, 박우혁&진달래는 문자디자인 작업에 자주 활용해온 기호와 도형으로 작품의 철학이 담긴 공간을 연출했다. 원성원 씨는 사진연작 ‘일곱 살’의 소장용 포트폴리오를 제작했다.

국내외 시각예술 아티스트 50여 명의 포트폴리오를 망라한 아카이브 라운지도 흥미롭다. 아날로그형 바인더부터 디지털로 진화한 포트폴리오까지 볼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작가에겐 그간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예비 작가에겐 작품에 임하는 태도를 배우고, 관객에겐 작가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전시다.

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아티스트 포트폴리오#사비나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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