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식당 착한 이야기]서울 응암동 튀김전문점 ‘요요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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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가 “기름 쓸만한데 왜 갈아요” 안타까워 하기도

결혼 13년차인 부부는 ‘먹거리 X파일’ 착한 식당에 선정됐을 즈음 둘째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았다. 겹경사였다. 신 씨는 현재 임신 8개월이지만 매일 아침 남편과 함께 튀
김 재료를 손질한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결혼 13년차인 부부는 ‘먹거리 X파일’ 착한 식당에 선정됐을 즈음 둘째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았다. 겹경사였다. 신 씨는 현재 임신 8개월이지만 매일 아침 남편과 함께 튀 김 재료를 손질한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네 번째 이직 선언이었다. 이번에는 회사를 옮기는 게 아니라 음식 장사를 하겠다고 했다. ‘밥 한 번 안 지어본 주제에 음식 장사라니….’ 다섯 살배기 아들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착한 아내는 남편을 한 번 더 믿기로 했다.

남편은 40쪽 분량으로 이러저러한 음식점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아내 앞에 내밀었다. 마케팅 회사에 다닌 경험을 살려 SWOT(강점, 약점, 기회, 위협 요인) 분석과 장단기 계획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지만 아내는 “아이템 자체가 별로”라며 퇴짜를 놓았다. 난감해하는 남편에게 이번에는 아내가 말했다. “차라리 분식집을 해보자. 당신도 나도 튀김은 좋아하잖아.”

부부는 튀김 전문 분식집을 창업하기 위해 바닥부터 다졌다. 남편은 사표를 내고 일식 요리사 출신인 큰동서의 주점에서 숙식을 하며 튀김 기술을 익혔다. 튀김으로 입소문 난 식당에 아르바이트로 취업해 어깨너머로 운영 노하우를 배우는 한편 집에 소형 전기 튀김기를 들여놓고 밤마다 메뉴를 개발했다. 집 안에는 늘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 2011년 3월, 부부는 전세를 월세로 돌린 돈으로 주택가 골목에 자그마한 가게를 열었다. ‘요요미’의 시작이었다.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 위치한 튀김 전문 분식집 요요미는 지난해 11월 채널A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에서 착한 식당 19호점으로 선정됐다. 선정 이유는 단순하다. 깨끗한 기름을 사용한다는 것.

신선한 식용유는 튀김 맛을 결정짓는 기본 요소지만 기름 값을 생각하면 이 원칙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 요요미는 18L 한 통당 3만7000원 하는 식용유를 매일 한 통 반씩 사용한 후 폐기한다. 방송이 나간 후 프로그램 게시판에 “그렇게 깨끗한 기름을 그냥 버리면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항의가 올라왔을 정도다.(요요미의 폐유는 재활용 업체가 수거해 친환경 디젤 연료로 만든다)

14일 ‘착한 튀김’을 맛보기 위해 요요미를 찾았다. 손님을 받는 시간은 낮 12시지만 박종명(38) 신현주 씨(39) 부부는 오전부터 무척 분주해 보였다. 눈코 뜰 새 없는 주인 부부를 뒤로하고, 가게를 둘러봤다. 그런데 이 분식점, 어딘지 좀 이상했다.

요요미의 가장 큰 특징은 ‘느린’ 분식이라는 점이다. 분식은 대표적인 인스턴트 음식이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주문이 들어온 후에야 튀김옷을 입히기 시작한다. 오전에는 재료 준비한다며 손님을 돌려보내더니, 낮 12시 이후엔 주문 후 음식을 받기까지 최소 10∼20분은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통상 주문하면 5분 이내로 나오는 분식에 길들여진 이들에게 튀김을 기다리는 10분은 너무 긴 시간이다. 기자가 찾아간 날도 대기시간을 듣더니 고개를 저으며 떠나는 손님이 더러 눈에 띄었다. 짧은 시간 많은 손님을 받아서 수익을 올려야 하는 분식집의 전형적인 시스템을 거부하는 셈이다.

재료도 다르다. 보통의 분식집은 공장에서 제조된 튀김을 다시 튀겨서 판매하지만 이곳에서는 매일 쓸 재료를 주인이 직접 손질한다. 주인 부부가 아침부터 바쁜 이유였다. 튀김용 새우와 오징어, 각종 야채를 직접 다듬고, 김말이는 당면을 삶고 양념을 해 김으로 싸는 작업까지 모두 직접 한다.

“식물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 더 잘 자란다고 하잖아요. 음식을 만들면서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주문을 외워요. 손으로 만든 음식, 정성이 깃든 음식은 맛도 다르지 않겠어요.”(남편 박 씨)

부부는 2년 전 가게를 열면서 ‘내 아이에게도 자신 있게 먹일 수 있는 음식을 만들자’고 약속했다. 매일 새 기름을 사용하고, 튀김 재료를 직접 손질하는 것도 그 약속에서 비롯됐다. 특히 과거 암 수술을 두 차례 했던 아내는 식재료를 고르는 기준이 엄격한 편이다. 국산 새우는 잡히는 시기가 한정돼 있어서 태국산을 쓰지만, 오징어는 경북 포항 구룡포, 고구마는 전남 해남, 양파는 전남 함평, 단무지는 경기 여주 등 대부분 국내 대표 산지에서 수확한 것들을 사용한다.

“저희처럼 단골 대상으로 하는 동네 장사에서 가장 중요한 게 믿을 수 있는 음식을 파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좋은 재료로 정성들여 팔면 자연히 손님들도 알아줄 거라고 믿었죠.”(아내 신 씨)

요요미의 ‘대표’ 튀김 3종류. 위에서부터 오징어튀김, 김말이튀김, 새우튀김.
요요미의 ‘대표’ 튀김 3종류. 위에서부터 오징어튀김, 김말이튀김, 새우튀김.
이렇게 깐깐하게 재료를 고르고 수고스럽게 만드는 탓에 요요미의 튀김 가격은 비싸다. 새우튀김이 마리당 1300원이다. 김말이와 오징어, 고구마튀김은 개당 800원, 야채튀김은 2개에 1000원이다. 서울 번화가 튀김전문점보다는 저렴하지만 5000원이면 튀김 잔치를 벌일 수 있는 여느 동네 분식점에 비하면 2배가량 된다. 가격은 이 부부에게도 고민이다. 박 씨는 직원 1명과 아르바이트생 2명의 인건비나 가게 임차료 등 운영비를 제외한 순수 재료비만 전체 매출의 40%라고 했다. 그는 “물가 상승 때문에 최근 튀김 값을 100원씩 인상해야 했다. 특히 야채 가격이 너무 올라 김밥은 결국 메뉴에서 뺐다”고 말했다.

요요미에는 어린 자녀를 데려와 함께 튀김과 떡볶이를 먹는 주부들이 많이 눈에 띈다. 주부들 사이에서는 방송이 나가기 전부터 ‘깨끗한 튀김’이라며 입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예쁠 요(姚)와 맛 미(味)의 합성어인 상호처럼 이곳 튀김은 모양도 예쁘다. 당면 꽁지가 삐져나와 꽃의 수술 같은 김말이튀김과 나뭇가지를 닮은 가느다란 오징어튀김 등이 한 접시에 어우러져 있으니 꽃꽂이가 연상된다.

그렇다면 맛은 어떨까. 이곳의 단골이라는 장예림 씨(24)는 “이곳의 튀김은 다른 집보다 느끼함이 덜하고 모양도 예쁘다”고 평했다. 좋은 재료로 만든 튀김은 맛도 좋다. 튀김옷이 얇아 식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있다. ‘먹거리 X파일’ 제작진에 따르면 종종 ‘착한 식당이 맛있는 식당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영돈 PD조차 요요미의 새우튀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맛본 튀김 중 최고”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사실 요요미 튀김의 진가는 튀김이 식은 후 더 빛난다. 금세 눅눅해지는 여느 튀김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바삭한 식감을 유지한다. 여기에는 이 부부의 튀김 기술도 한몫했다. 원재료의 맛을 살리는 것과 함께 ‘시간이 지나도 맛있는 튀김’은 가게를 준비하는 1년 동안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었다.

“예컨대 오징어튀김은 막 튀겼을 때는 바삭한데 금방 눅눅해지고, 튀김옷도 잘 벗겨지잖아요. 그런데 오징어 몸통을 가로로 가느다랗게 칼질해 튀기면 오징어 식감을 살리면서 맛도 오래가요. 이 방법을 찾기까지 오징어 수십 마리를 난도질했죠.”(신 씨)

착한 식당으로 선정된 다른 식당들처럼 요요미도 방송에 소개된 직후 한동안 유명세에 시달렸다. 프로그램을 보고 몰려드는 인파에 한 달 동안은 튀김 주문 후 대기시간이 2시간 이상으로 늘었다. 1분마다 한 번씩 전화 주문과 격려 인사가 오는 통에 일주일간 전화 응대를 포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부부는 “화장실에 다녀오면 ‘손님 기다리게 하면서 제 볼일 다 본다’고 욕을 먹던 시기였다”며 웃었다.

“방송 보고 전남 여수와 경남 창원 등지에서 오신 손님도 계셨어요. 그런데 재료가 다 떨어져서 그냥 돌아가셔야 했을 땐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고요.”(신 씨)

방송 후 손님이 많이 늘었지만 요요미의 운영 방식은 그다지 변한 게 없다. 그날 준비한 재료가 떨어질 때까지 영업하는 방침은 그대로다. 신 씨가 둘째를 임신하며 아르바이트 직원을 따로 두긴 했지만 튀기는 일을 박 씨가 전담하는 것도 여전하다. 몸은 고되지만 깨끗하고 질 좋은 튀김을 만든다는 자부심은 더 커졌다. 부부는 요요미를 운영하는 지난 2년간 손님 서너 명만 와도 튀김대 앞에서 절절매던 ‘튀김 하수’에서 이제 손님이 떼로 몰려와도 당황하지 않을 만큼의 ‘튀김 중수’가 됐다고 자평한다.

두 사람은 “요요미에서 튀김 맛을 본 후엔 다른 곳에서 튀김 못 먹겠다”는 얘기를 들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들은 앞으로도 재료 준비부터 즉석 튀김까지 ‘노동집약적인 시스템’을 계속 고수할 계획이다.

“‘요즘엔 사장이 잘 안 보인다, 방송 나오면 사람은 다 변하기 마련이다’는 말씀을 하시는 손님들이 늘었어요. 저는 계속 튀김 튀기고 있었는데, 제가 사장처럼 안 생겼나 봐요. 그런 말씀 들을수록 ‘나는 절대 변하지 말아야지’ 다짐하죠.”(박 씨)

그 고집이 미더웠다. 네 번째 이직은 성공이었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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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미#튀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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