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상근]7번방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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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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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근 교육복지부장
송상근 교육복지부장
영화 ‘7번방의 선물’이 국내에서 8번째로 관객 1000만 명을 넘겼다. 끝날 무렵에 극장을 둘러보니까 훌쩍대거나 눈시울을 붉힌 관객이 많았다. 옆자리의 아내 역시 마찬가지였다. 네이버의 평점 코너에는 지금까지 3만8500명 이상이 참여해 9.28점(10점 만점)을 줬다.

졸작이라는 평가도 이어진다. 대체로 이런 얘기다. 관객을 ‘초딩’으로 아는지 말도 안 되는 억지 설정의 연속, 경찰과 검찰에 대한 비판은 비현실의 극치, 너무 유아스러운 설정과 스토리가 영화에 몰입할 수 없게 만들었다….

1997년에 마지막 사형 집행

재미와 감동을 느꼈지만 황당한 부분에 쓴웃음을 지은 건 사실이다. 사실과 논리라는 잣대를 들이대면 특히 그렇다. 예를 들어보자. 어떻게 판사는 경찰과 검찰의 수사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6세 지능의 장애인(예승이 아빠) 진술에 의문을 품지 않고 사형을 선고하는가.

기자가 오늘 하려는 얘기는 이 부분과 관련이 있다. 예승이 아빠의 사형집행일. 1997년 12월 23일이라고 나온다. 예승이의 생일이어서 관객의 마음을 더 안타깝게 만든다. 같은 해, 같은 달에 실제로 사형수 23명이 형장에서 사라졌다. 날짜는 영화보다 1주일 늦은 12월 30일이다.

작가 공지영은 택시를 타고 가다가 이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자신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고, 가슴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울컥 하고 올라왔고, 분노와 회한이 버무려지면서 끔찍한 기분이었다고 술회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소설로, 영화로 나온 계기였다.

정부가 사형을 집행한 시점은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맞아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체제로 들어가던 즈음이었다. 공지영은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그해가 가던 그 무렵, 거리는 어둡고 한산했다. 무심히 거리를 지나가다가 돌아보면 이상하게 불빛들도 어둡고 소음도 낮았다. 온 나라가 무덤 속처럼 적막하다고 느껴지던 무렵이었다.”

법무부는 “장기 미집행자에 대한 통상적인 형 집행임과 동시에 정부의 엄정한 법 집행 의지를 표명, 범법자들에게 법의 엄정함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 사회기강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부도의 위기 속에서 흉흉한 민심을 다잡기 위해 극약처방을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국내에서의 사형 집행은 처음이 아니었다. 1992년 12월 29일(9명), 1994년 10월 6일(15명), 1995년 11월 2일(19명). 김영삼 정부 시절에만 세 차례였다. 이럴 때마다 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는 항의성명을 냈다. 사회적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무마하려는 의도라고, 인명 존중이라는 세계적 추세와 어긋난다고.

정부는 1997년 12월 30일 이후 더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한국이 ‘사실상의 사형제 폐지국가’로 분류되는 이유다. 하지만 강력사건이 벌어지면 논란이 불거진다. 작년에 특히 그랬다. 어린이와 여성이 성폭행당하고 목숨을 잃으면 흉악범을 처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 꿈꾸며

모두가 만족할 해법을 찾기는 힘들다. 기자 개인적으로는 사형제를 당분간 유지하되, 집행에는 계속 신중했으면 한다. 범죄자 처단보다는 피해자 지원에 더 신경 쓰면 좋겠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를 제안하면서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 구현’이라는 목표를 위해 ‘범죄 피해자 보호 및 지원 강화’를 넣었듯이 말이다.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 23명 중 4명은 안구와 시신을 기증했다고 동아일보에 나온다(1997년 12월 31일자 39면). 자신들의 죄를 조금이나마 씻으려는 마음에서였을까. 사형수가 기증한 안구로 세상의 빛을 다시 본 이들은 지금 살아있을까. 이들은 ‘7번방의 선물’을 봤을까.

송상근 교육복지부장 songmoon@donga.com
#7번방의 선물#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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