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만에 ‘민청학련 사건’ 누명 벗은 김지하 “27억 받고 도망간 女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4일 14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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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적 필화사건'은 법정 최하한형 선고유예

유신시대 대표적인 저항시인 김지하 씨(72)가 재심을 통해 39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그는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됐었다.

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원범 부장판사)는 대통령 긴급조치 제4호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선동 등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7년여 간 옥살이를 한 김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유신 헌법을 비판하고 독재 정권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은 후 큰 고난을 당했다"며 "당시 사법부가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점에 진실로 사죄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은 반국가단체로 지목된 민청학련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한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았다"며 "당시 재판부가 근거로 삼은 긴급조치 4호는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해 무효이고, 피고인의 행위도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또 재판부는 "수사기관이 구타와 고문 등 가혹행위를 했다는 점에서 민청학련 사건은 형사소송법상 재심 대상에 해당한다"며 "다만 오적 필화사건은 재심 대상이 아니어서 유·무죄 판단 대신 양형 판단만 다시 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김 씨가 1970년 '사상계'에 정부 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시 '오적(五敵)'을 게재해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 대해서는 법정 최하한 형인 징역 1월의 선고유예를 선고했다.

징역 1월 선고유예는 판결 확정 후 한 달 동안 특별한 사정이 발생하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오적 사건은 수사기관의 가혹행위 등을 증명할 자료가 제출되지 않은 법리상 한계 때문에 유죄 판단을 유지한 점을 양해해 달라"고 설명했다.

김 씨는 일부 혐의에 대한 선고유예 판결이 아쉬운 듯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법대를 응시했다. 그는 취재진에게 "오적 사건 때문에 수십년 동안 풍자시를 쓸 수 없었는데 선고유예 판결을 받은 점이 아쉽다"며 "앞으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오적 시인이 이렇게 말 안하면 재미없다"면서 "(국고에서) 27억 원씩 받고 도망간 여자도 있는데 사형선고 받고 얻어터진 김지하가 몇 푼 받아서야 되겠느냐"고 말했다.

한편, 김 씨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을 배후조종한 혐의로 구속돼 비상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투옥됐다. 이후 국제적으로 구명운동이 전개되면서 10개월 만에 풀려났지만, 사건의 진상을 알리는 글을 썼다가 재수감돼 6년간 복역했다.

김 씨는 2010년 11월 서울중앙지법에 재심을 청구했고, 지난해 10월 31일 재심 개시 결정을 받았다. 그는 대선 기간인 지난해 11월 한 시국강연회에서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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