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LIFE]‘통닭’은 어디가고 치킨만… 왜 1.5kg짜리를 쓸까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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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7억 5000만 마리 뜯는 대한민국 대표 간식, 통닭 이야기

1960년 문을 연 서울 명동 ‘영양센타’ 본점에서 통닭을 굽는 모습. 노릇한 껍질이 무척 먹음직스럽다.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a.com
1960년 문을 연 서울 명동 ‘영양센타’ 본점에서 통닭을 굽는 모습. 노릇한 껍질이 무척 먹음직스럽다.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a.com
《 닭고기는 서민의 음식이다. 살림살이가 어려웠던 옛날에도, 사위가 왔을 때 소나 돼지고기는 못 줘도 씨암탉 한 마리 정도는 잡아줄 수 있었다. 올 한 해 우리나라 국민이 먹은 닭은 무려 7억5000만 마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프라이드치킨’과 ‘치맥(치킨+맥주)’으로 대표되는 닭고기는 외식 산업의 큰 축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동아일보 주말섹션 ‘O₂’가 ‘국민 간식’ 닭고기에 대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사실들을 알아봤다. 》
종이에 싸서 굽는 닭고기
요즘 우리가 먹는 닭고기는 튀김 요리가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전통 닭고기조리법엔 구이나 튀김은 별로 없고 찌거나 삶거나 조리는 ‘습식 요리’가 대부분이었다. 전통음식 연구가인 한영용 청운대 겸임교수(식품영양학)는 “그중에서도 특히 찜 요리가 많다”고 설명했다.

옛 조리법 중 특히 재미있는 것이 규합총서(閨閤叢書·1809년)에 나온다. 이것은 원래 꿩고기 요리법이지만 닭고기 조리에도 많이 쓰였다. 먼저 닭고기를 깨끗한 종이에 싸고 그것을 물에 적셔 굽는다. 닭고기가 반만 익었을 때 종이를 벗기고 기름장을 발라 구워 먹는다. 닭고기 찜과 구이의 중간쯤 되는 요리라고나 할까. 종이에 싸 화롯불에 올려놓은 닭고기는 살짝 찐 것과 비슷하게 조리가 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닭 요리 체인점으로는 1960년 서울 명동에 문을 연 ‘영양센타’가 꼽힌다. 외국에서 전기로 닭을 굽는 것을 본 창업주 이도성 씨가 ‘우리나라에서도 통하지 않을까’란 기대로 가게를 열었다. 소박한 기대는 ‘대박’으로 이어졌다. 바삭한 닭 껍질과 쫄깃한 속살은 온 국민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후 전국 방방곡곡에 영양센타 분점이 생겨났다.

지금도 1960, 7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늦은 밤 아버지가 들고 오신 종이봉투에서 나던 고소한 냄새를 기억한다. 누군가가 버스나 전철에 통닭 봉투를 들고 타면 승객 모두가 입맛을 다셨다.

치킨의 시대가 열리다

지금과 같은 미국식 닭튀김(프라이드치킨)은 1970년대 후반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치킨 프랜차이즈는 1980년대부터 빠르게 늘어났다. 당시만 하더라도 통닭집 3개만 운영하면 집을 한 채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한 프랜차이즈업체 사장은 매일 저녁 수금한 돈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돈다발 위에 이불을 펴고 잤다는 이야기도 있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걸쳐 흥미로운 현상이 일어났다. 국내 업체들이 개발한 양념통닭이 미국식 치킨의 아성을 위협한 것이었다. 이 업체들은 대구 등 지방 도시에서 사업을 시작해 서울에 진출했다는 점에서도 특이했다. 1990년 3월 23일자 동아일보는 양념통닭이 우리 입맛에 맞는 매콤한 맛을 통해 기존 닭고기 요리의 느끼한 맛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1993년에는 트럭에서 장작으로 굽는 ‘장작구이 통닭’이, 2000년대 초중반에는 ‘찜닭’이 인기를 얻었으나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지금도 국내 외식용 닭요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튀김 종류. 최근에는 웰빙 바람을 타고 오븐 등을 이용한 구이 메뉴가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 식용닭은 3kg넘어
통닭용으로 쓰이는 닭은 대부분 ‘브로일러’라 불리는 육계(肉鷄)다. 지금은 산란용과 고기용 닭이 정확하게 구분되지만 예전 우리나라에는 그런 구분이 없었다. 일찍 출하하는 삼계탕용으로는 수탉이 주로 쓰였고 암탉은 알을 낳게 하다 고기용으로 쓰는 게 대부분이었다. 육계 사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70년대 초부터. 육계 품종은 대부분 서구에서 들여온 것들이다.

옛날 닭은 지금보다 크기가 작았고 성장 속도도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닭의 체중은 육계 품종이 나온 이후 매년 꾸준히 늘어났다. 국립축산과학원의 서옥석 박사는 “예전에는 2kg까지 닭을 키우려면 5개월 정도 걸렸지만 요즘에는 40일이 채 안 걸린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통닭용으로 쓰이는 닭은 체중이 1.2∼1.5kg 나가는 것들이다. 튀김용 육계는 한 달 정도 키우면 그 정도 무게가 나간다. 토종닭은 5개월 정도 키워야 같은 무게가 된다.

흥미로운 것은 왜 한국에서는 1.2∼1.5kg 무게의 닭을 식용으로 쓰느냐이다. 미국에서는 3kg 이상 되는 닭을 식용으로 쓴다. 김한웅 한국계육협회 상무는 “사료 값 때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답은 “소비자의 기호 때문”이다. 한정된 금액 안에서 소비자에게 ‘통닭 1마리’를 온전히 제공하려면 1.5kg 내외의 닭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덩치가 작은 국산 닭을 수입 닭과 구별할 수 있게 해주는 힌트가 되기도 한다. 삼계탕용 닭은 튀김용보다 더 작다. 뚝배기 같은 그릇에 1마리가 다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삼계탕용으론 산란계와 육계의 잡종인 ‘백세미’가 쓰인다. 생후 35∼38일이면 800g∼1kg이 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닭은 부화 후 70∼140일 된 것이 가장 맛있다. 지방이 적은 닭고기의 맛은 이노신산과 글루타민산 등의 물질이 좌우하는데, 닭이 성장하면서 그 함량이 늘어난다. 그러나 닭이 성적으로 성숙하는 생후 5개월(20주령)부터는 고기가 갑자기 질겨진다. 따라서 5개월 이상 된 닭의 고기는 찜용으로 많이 쓰인다.

영혼을 울리는 닭고기 수프
단백질과 미네랄,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한 닭고기는 예로부터 건강식품의 대명사로 꼽혀 왔다. 몸살이 나거나 몸이 허할 때 닭고기를 먹는 것은 세계 공통이다.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에서도 우리나라에서처럼 보양식으로 닭죽을 먹는다. 서양에서는 으슬으슬 감기 기운이 돌 때 할머니나 어머니가 끓여주는 진한 국물(닭 뼈를 우려냄)의 수프가 이른바 ‘영혼의 음식’으로 불린다. 닭고기 수프에는 ‘유대인의 페니실린’이란 별칭도 있다.

닭고기는 지방이 적고(가슴살의 경우 1.2%) 칼로리가 낮아 건강에 좋은 식품으로 꼽힌다. 미국 암연구협회(AACR)와 세계암연구재단(WCRF)에서는 암 예방 식단으로 닭고기와 같은 흰 살코기를 섭취할 것을 권장한다. 그 덕에 닭고기는 미국에서 쇠고기를 제치고 육류 소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 섬유질이 가늘고 연해 소화력이 약한 어린이나 노인들의 영양식으로 좋다. 한방에서도 닭고기는 비장과 위장을 따뜻하게 해 소화력을 높이고 골수를 튼튼하게 해 준다고 여긴다.

닭 요리와 관련해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어느 샌가 ‘통닭’이란 말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요즘엔 모두들 치킨이란 말을 쓴다. 입맛이야 세월에 따라 변하는 것이지만 우리말 어휘 하나가 덩달아 잘 쓰이지 않게 된 것은 섭섭하지 않을 수 없다.

양계 농가들은 겨울이 그다지 반갑지 않다고 한다. 날씨가 추워지면 삼계탕이나 치맥의 소비가 줄기 때문이다. 양계 농가들을 위해서라도 이번 연말엔 집에서 닭고기 요리나 한번 해 먹어보면 어떨까. 서양 사람들은 추수감사절 같은 명절에 칠면조 구이를 만들어 먹는다. 그것처럼 우리도 오븐에 통닭을 한번 구워 보자. 따끈따끈하고 고소한 통닭이 옛 기억과 함께 가족 모임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려줄 것이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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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통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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