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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신석호]남북대화의 ‘좌경’과 ‘우경’

동아일보

입력 2012-10-17 03:00:00 수정 2012-10-17 03:00:00

신석호 국제부 차장
꼭 40년 전인 1972년 10월 17일 남한 박정희 정권이 ‘10월 유신’을 선포하자 평양 주재 동유럽 외교가에 비상이 걸렸다. 남한은 왜 독재 강화에 나섰을까? 북한의 대응은? 전년부터 시작된 남북대화는? 다음 날인 18일 동독대사관을 방문한 소련의 쿠르바초프 장군은 동독 외교관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박정희는 북한과의 통일 협상을 주도하기 위해 자신의 지위를 강화하려는 것 같다. 북한도 남북대화가 지속되기를 원한다. 7·4남북공동성명의 원칙을 강조해 박정희 정권을 궁지로 몰고 반공법 폐지를 요구하며 남한에 (야당이 집권할 수 있는) 민주화 상황을 조성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쿠르바초프의 예측은 맞았다. 북한은 10월 유신을 공격하는 대신 7·4남북공동성명으로 절정에 오른 대남 평화공세(peace offensive)를 계속해 대화를 통한 남한 적화 노력을 계속하기로 했다. 미국 우드로윌슨센터와 한국의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북한대학원대가 발굴해 어제 동아일보에 보도된 옛 동독 외교문서는 10월 유신 당시 북한이 대남(對南) 강경책 대신 유화책을 선택한 속내를 생생히 보여준다.

40년 전 북한의 목적은 적화통일이었고 대화는 수단이었다. 당시 북한은 사회주의 진영 내에서 상대적으로 ‘잘나가는’ 우등생이었다. 북한의 국력은 많은 면에서 남한을 능가했다. 정치적 경제적 우위를 토대로 남한과 대화해 친북세력의 힘을 키우면 박정희 체제가 스스로 무너질 수 있다는 게 김일성의 속셈이었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대북 ‘햇볕정책’도 같은 논리였다. 압도적인 국력의 우위를 기반으로 북한과의 대화 창구를 확보한 뒤 최고지도자의 대남 적대의식을 바꾸고 남한을 동경하고 지지하는 엘리트와 주민 수를 늘리면 자연스럽게 북한의 변화와 남한이 주도하는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거라는 가정이었다.

햇볕주의자들의 과오는 수단인 대화를 목적시하고 남북관계로 다른 실정(失政)을 덮어보려 한 것이었다. 노무현 정권은 임기를 다섯 달 앞두고 무리한 정상회담을 추진해 정권 교체에 한몫했다. 두 정권에서 10년 공들여 구축한 남북의 대화 채널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닫히고 잘려나갔다. 물론 남북관계 경색의 근본적인 책임은 북한에 있지만….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대화 제의를 ‘위장 평화공세’로 못 박았다. 남북 간 대화를 책임 있는 당국이 주도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한 나머지 다양한 채널을 활용하는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대화가 단절된 상황에서 나온 북측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으로 남북관계는 파탄상태에 처했다.

요즘 유력 대선후보들은 한결같이 남북대화의 복원을 외치고 있다. 북한의 변화와 바람직한 통일이라는 뚜렷한 목표의식을 잃지 않는다면, 대화를 목적으로 혼동하는 ‘좌경’과 적과의 대화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 ‘우경’을 극복한다면, 대화는 여전히 유용한 수단이다.

문제는 누가 대통령이 되건 그 대화가 말처럼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북한은 대화의 조건으로 천안함 연평도 사건에 대한 남측의 역(逆)사과와 훨씬 더 비싼 경제적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3대 세습체제에서 더 많은 권력을 차지하려는 북한 엘리트들의 권력투쟁이 계속되면 남측과 대화할 여유도, 생각도 없을지 모른다. 젊은 최고지도자 김정은은 너무 커져버린 남한과 대화를 하다간 ‘샅바를 잡힌다’며 아예 중국만 쳐다볼지 모른다. 북측과 대화할 수 있을 때는 하고 싶지 않고, 대화하고 싶을 때는 하기 쉽지 않은 최근 남측의 엇박자가 안타깝다.

신석호 국제부 차장 kyl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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