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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 손끝서 우려낸 지리산 茶는 예술”

동아일보

입력 2012-09-26 03:00:00 수정 2012-09-26 03:00:00

홍차의 나라 영국서 온 한국茶 전도사 안선재 서강대 명예교수

《 “한국 차(茶)를 마실 때 자연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 참 좋습니다. 지리산 할머니들이 정성껏 따서 손으로 덖고 비벼 만든 차는 ‘기술’이라기보다 ‘예술’의 경지를 보여줍니다.” 24일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에 있는 안선재(영국명 브러더 앤서니·70) 서강대 명예교수의 오피스텔에 들어서자 나무 테이블 위에 가득 놓인 차와 다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홍차의 나라’ 영국에서 온 그는 아침식사 때는 영국식으로 홍차에 우유와 설탕을 탄 밀크티를 마시고 낮에는 맑은 한국 차를 즐긴다고 했다. 》
한국 차와 한국 문학을 사랑하는 안선재 서강대 명예교수는 정년퇴임 후 학교 근처에 오피스텔을 마련해 한국 문학작품을 번역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회장인 그는 최근 이 학회가 발행한 연간 학술지 ‘Transactions’ 86호에 논문 ‘조선 초기와 후기의 차’를 발표했다. 한국의 다도를 정립한 초의선사, 대표적 다서인 ‘다부(茶賦)’를 쓴 이목, 차 문화를 꽃피운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 커뮤니티로, 1900년 한국에 머물던 외국인 선교사 및 외교관 17명이 한국을 연구하기 위해 만든 학회다. 고종의 외교 고문 호머 헐버트, 배재학당을 세운 헨리 아펜젤러, 연희전문학교(연세대)를 세운 호러스 언더우드 등이 창립 멤버다.

안 교수는 “창립과 동시에 창간한 영문 학술지 Transactions는 외국인이 발행한 최초의 한국학 학술지”라며 누렇게 낡은 1호 원본을 보여줬다.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는 현재 1000여 명의 활동 인원 중 70%가 외국인이다. 학술지 출간 외에 강의와 문화답사 등을 통해 한국을 연구하고 있다. 창립 당시 본부가 있던 영국으로부터 창립 허가를 받기 위해 단체명에 ‘왕립’을 넣었을 뿐 영국 왕실과는 관련이 없다.

안 교수는 20여 년 전부터 한국의 차 문화에 빠져 2007년 ‘The Korean way of tea(한국의 다도)’라는 제목의 영문서적을 공저로 출간했다. 2010년에는 초의의 ‘다신전’과 ‘동다송’, 이목의 ‘다부’를 묶어 번역한 ‘Korean tea classics(한국의 옛 차)’를 출간했다.

차 수확 시기인 매년 4, 5월이 되면 그는 지리산 화엄사 인근과 경남 하동에 내려가 1년 동안 마실 야생차를 구해 온다. “1500여 년 전 스님들이 중국에서 차 씨앗을 가져와 지리산 부근에 뿌렸습니다. 그게 지금까지 야생차로 자라고 있죠. 그런데 수십 년 동안 소규모로 수제차를 만들어 오던 할머니들이 하나둘씩 돌아가셔서 그 명맥을 이을 사람이 없어지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영국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그는 1970년대에 종파를 초월한 수도원인 프랑스 테제공동체에 머물며 수행하다 그곳을 방문한 고 김수환 추기경을 만났다. 김 추기경의 초대로 1980년 수사로 한국에 온 뒤 서강대에서 영어영문학을 가르쳐 왔고, 1994년 귀화했다.

그는 정년퇴임한 후에도 서강대 근처에 오피스텔을 마련해 한국 문학작품 번역에 매진하고 있다. 고은의 ‘화엄경’, 천상병의 ‘귀천’ 등 한국 시·소설 30여 권을 영어로 번역했으며 대한민국문학상 번역부문 대상(1991년), 대산문학상 번역부문 대상(1995년), 펜 번역문학상(1996년), 옥관문화훈장(2008년) 등을 수상했다. 그가 번역한 8번째 고은 시집 ‘일인칭은 슬프다’가 다음 달 영국에서 출간된다. 그는 11월 고은 시인과 함께 영국 올드버러에서 열리는 시 축제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한국 문학의 매력은 일제강점기, 6·25전쟁, 분단, 민주화운동 등 파란만장한 한국의 역사와 한국인의 마음을 깊이 있게 보여주는 것이지요.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에는 그런 힘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기자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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