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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고도녀’ 김완선 다시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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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고도녀’ 김완선 다시 뛴다

동아일보입력 2012-09-25 03:00수정 2012-09-2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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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고양이 닮은 도시여자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아우, (밖에 나오니) 너무 좋다. 점심? 못 먹었어요. (제 신곡) 다운도 좀 받으시고 컬러링도 좀 바꿔주시고!”

서울 청계천변 카페 옥상에 올라온 김완선(43)은 커다란 고양이눈을 한 차가운 도시 여자의 풍모에 거침없는 입담으로 기자를 움찔하게 했다. ‘응답하라 1987’ 같은 드라마가 나온다면 1회 첫 장면은 이 여자의 ‘써니텐’ 광고가 될지 모른다. 김완선이 1990년 낸 5집(‘가장무도회’ ‘나만의 것’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은 한국 여자가수 앨범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100만 장 이상 팔렸다. 1986년 ‘오늘밤’으로 데뷔한 뒤 독보적인 외모와 춤으로 1980, 90년대 가요계에 폭탄을 던졌다.

그는 최근 기획사 ‘완선 W 엔터테인먼트’의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미니앨범 ‘더 비어’도 냈다. 펑크록밴드 옐로우몬스터즈의 ‘벤자민’, 감성 팝 싱어송라이터 에피톤 프로젝트의 ‘오늘’ 등 인디 뮤지션들의 곡을 애잔한 감성으로 재해석했다. 댄스곡 ‘캔 온리 필’은 클래지콰이의 DJ 클래지에게서 받았다. ‘나는 가수다’로 유명해진 작곡·편곡가 돈 스파이크와 김완선이 공동 프로듀싱했다.

“가수가 되고 싶어 했던 처음 맘으로 돌아왔어요. 그때 꿈꿨던 가수의 꿈을 지금 다시 꾸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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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댄스곡 ‘슈퍼러브’로 6년 만에(“5년이라고 해주세요. 자꾸 나이도 늘리고 다 늘려, 다!”) 가요계에 돌아왔던 그가 이번엔 인디 뮤지션들과 손잡은 이유가 궁금했다.

“제 색을 찾는 과정이에요. 가수로서의 방향성, 아직도 갈등돼요. 지금 아이돌도 (저처럼) 10, 20년 뒤엔 나이에 맞는 다른 걸 찾아 나서겠죠.”

그는 데뷔하던 17세 시절을 떠올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땐 틀에 갇혀 있었고, 그게 싫었다”고 했다. “사람들이 제게 춤만 기대하는 게 감옥이었죠. 인순이의 리듬터치에서 데뷔 준비하던 15세 때부터 작곡가 신병하 씨로부터 화성학과 오케스트라 편곡을 배웠어요.”

초등학교 시절 ‘황인용의 영팝스’에서 나오는 킹 크림슨,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의 음악에 탐닉했던 조숙한 아이는 자기 곡도 몇 곡 썼다. “‘너무 서정적이다. 이미지와 안 맞는다’고 해서 앨범에 못 실었어요. 상처받고 (작곡을) 확 포기해버렸죠. 반항심리로 날 방치한 거죠. 나, 왜 그랬을까?”

인순이의 매니저이던 이모 한백희 씨 밑에서 훈련받고 데뷔해 가수활동을 한 그는 1997년 독립했다.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없더라고요. 아장아장 기던 애한테 뛰라고 하니 길을 잃은 거죠.” 방황하다 2006년부터 3년간 하와이 오아후 섬에 머물며 미술을 공부했다. 돌아온 김완선은 고심 끝에 지난해 가수로 컴백했고 비스트의 용준형, 클래지, 윤종신, 뮤지 등의 작업에 참여했다. 뮤지컬 ‘뉴 롤리폴리’에도 출연했다.

그는 미혼이다. 남자친구 대신 ‘남자인 친구’들이 많다고. “손무현 이태윤 같은 남자 뮤지션들 위주.” 결혼은? “난 자유 없으면 못 산다고 내가 그랬잖아요. 연애도 잘 못해요. 남자 다루는 데는 소질 없어.”

‘완선 W 엔터테인먼트’의 W는 여성(women)의 약자다. 여자로서 여자 연예인만 키우겠다는 뜻. 연습생 중 하나가 마리(최혜리)다. “어렸을 때 노래하는 걸 보고 가수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신곡 ‘오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그는 김완선의 조카다. ‘제작자: 연예인=이모: 조카’의 등식이 반복된다. “어쩌죠…. 운명인가봐요.”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대중음악#김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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