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동북아]<下>미래 100년 한국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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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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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4강사이 ‘중견국 외교’ 강화로 새 질서 창안자 역할해야

한중일 3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의 반목과 갈등의 역사는 100여 년간 이어져 왔다. 이제라도 화합과 평화의 새 시대로 전환하려는 노력을 벌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과거 100년’이 아닌 ‘미래 100년’을 위한 동북아의 새 질서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 과거에 발목 묶인 동북아

독일이 촉발한 ‘20세기 인류 최대의 비극’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유럽은 전쟁의 상처와 서로에 대한 미움으로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러나 종전 이후 60여 년이 흐르는 동안 유럽은 유럽연합(EU)이라는 울타리 안에 27개국이 함께하는 거대한 통합 프로젝트를 완성해가고 있다. 1962년 7월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과 콘라트 아데나워 서독 총리가 프랑스 랭스 대성당에서 일궈낸 역사적 화해가 결정적 촉매가 됐다. 독일은 깨끗이 과거를 사죄했고, 앙숙 관계였던 프랑스와 독일은 이제 유럽 통합의 양대 축이 됐다.

반면 동북아는 갈등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거부한 채 영토 문제로 동북아 분열을 조장하는 일본에 대한 한국 중국의 앙금이 누적되면서 통합의 발목을 잡고 있다. 상호 불신과 견제 속에 한중일 3국은 초보적인 수준의 안보 협력조차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각국의 정권 교체기를 맞아 민족주의가 격하게 분출되고 있고, 주요 2개국(G2)으로 떠오른 중국과 미국의 패권경쟁은 동북아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물론 유럽과 동북아의 통합을 단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우영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유럽에서 ‘민족’은 근대적 소산이지만 동북아에서 민족은 오랜 역사에서 뿌리를 찾는 개념이어서 차이가 크다”며 “동북아 국가들의 영토와 민족의 크기가 너무 달라 통합으로 갈 때 1 대 1의 균형성이 갖춰지지 않는다는 점도 통합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동북아가 분쟁의 역사를 끊고 통합으로 가기 위해서는 과거사 청산이 선행돼야 한다. 조성환 경기대 교수는 “한중일 3국의 지도부가 유럽처럼 진실한 사과와 관용을 바탕으로 한 대승적 화해 노력을 경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신기욱 스탠퍼드대 교수는 미국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는 “미국이 전범재판을 하면서 진주만 공격 등에 집중한 반면 아시아 국가들의 고통에는 무관심했고 일왕을 존치시키는 등 잘못한 점이 있다”며 “미국이 나서지 않는 한 일본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마냥 일본의 변화를 기다리기보다는 동북아가 새로운 협력의 틀을 짜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를 위해서는 동북아 각국이 참여하는 다자 협력기구의 설립 등 정치·제도적 접근과 함께 ‘동북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 형성 등 문화·정서적 변화가 병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EAI) 이사장은 “향후 1000년까지 바라보는 장기적 관점에서 ‘동아시아 신(新)질서 건축’을 논의해야 한다”며 ‘복합 네트워크 외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동북아 국가들이 냉전질서에 따라 양분됐던 외교의 틀에서 벗어나 외교의 저변을 더 넓게 확대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그는 “21세기에는 군사와 경제력 외에 문화, 지식 같은 소프트파워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미래 외교의 청사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한국, 중견국 외교 강화로 극복”


한국의 외교 현실은 답답한 상황이다. 전통적인 한미동맹을 유지하는 동시에 미국의 라이벌인 중국과의 관계를 발전시켜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대한(對韓) 투자액 규모 2위이자 한국 제조업의 배후기지 역할을 하는 일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재집권한 뒤 동진정책을 펴고 있는 러시아도 무시할 수 없는 상대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저서 ‘전략적 비전’에서 “미국이 쇠퇴하면서 야기될 세계 패권질서 변화로 지정학적 위험에 빠질 가장 대표적인 나라는 한국”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주변 4강 사이에 낀 한국으로서는 현명한 전략적 선택이 절실하다. 동북아가 새 질서를 구축하는 과정에 한국이 전략적 외교를 통해 주도적 역할을 하면 현재의 외교적 난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외교 전략이 ‘중견국(middle power) 외교’의 강화다. 그동안 한국은 중-일 사이에서 나름대로 중견국가 역할을 해 왔다. 한 예로 2007년부터 한국 주도로 3국 외교장관회담이 시작됐고 이를 토대로 3국 정상회담이 개최되고 있으며, 지난해 서울에는 한중일 협력사무국이 설립됐다.

이숙종 성균관대 교수는 “중국·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나쁘지 않고 중-일 관계보다 한중, 한일 관계가 더 좋기 때문에 한국은 전략적 역할을 많이 할 수 있다”며 “강대국 사이에서 중재자나 관리자가 되기는 어렵더라도 네트워크를 활용해 ‘창안자’ 역할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외교의 방향으로 ‘보편주의 외교’를 강조하는 견해도 있다. 사안별로 유·불리를 따져 오락가락하는 외교를 펼칠 게 아니라 일관된 정책으로 국제사회의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경우 ‘인권유린은 자행되어선 안 된다’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중심으로 접근하는 방식이다. 봉영식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보편주의 외교는 절실한 과제”라고 말했다.
:: 중견국 외교 ::

약소국이나 강대국이 아닌 중견국가가 자신의 지위를 최대한 활용해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국제사회에서 평화유지, 원조, 인권 등 분야에서 적극 활동함으로써 신뢰를 쌓는 외교방식이다. 캐나다 호주 등이 대표주자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한국#중국#일본#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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