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인사이드/김지영]‘애니팡’ 해보셨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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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오피니언팀 기자
김지영 오피니언팀 기자
‘애니팡’의 인기가 거세다. 애니팡은 무료 모바일 문자메시지 서비스 ‘카카오톡’ 기반의 스마트폰 전용 게임. 제한시간 1분 동안 같은 동물 세 마리 이상을 가로 혹은 세로로 맞춰서 없애는 게 게임의 규칙이다. 가만, 헥사잖아. 1980년대 오락실을 풍미한 헥사도 세 개 이상 같은 그림 맞추는 게 룰이었다. 역사도 오래됐고 매뉴얼도 간단한, 이런 그림 맞추기 게임은 앱스토어에 수천 개가 떠 있다. 얼마 전만 해도 비슷한 게임 하나를 받아 갖고 놀다가 지웠다.

그런데 규칙도 딱히 다를 바 없는 애니팡이 7월 말 출시된 지 두 달도 안 돼 1200만 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하루 이용자는 700만 명, 동시접속자 수는 200만 명을 돌파했다. ‘노래는 강남스타일, 게임은 애니팡’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전철역에서, 버스에서, 화장실에서 앉았다 하면 애니팡이다. 지인의 50대 이모도 최근 애니팡에 푹 빠졌다고 한다.

별로 새로울 것 없어 보이는 이 게임의 인기몰이 비결은 무얼까? 종종 애니팡을 즐긴다는 하지현 건국대 의대 교수는 “애니팡이 쉽고 단순하다는 바로 그 특징이 사람들을 끄는 비결”이라고 말한다. 새것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지 않다는 건 대중성의 포인트다. 애니팡도 룰이 단순해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사회적 피로감이 있다고 하 교수는 분석한다. “요즘 세상은 그러잖아도 바쁘고 할 일도 많은데 게임에서도 복잡한 기술을 새로 익혀야 하는 부담을 지고 싶지 않은 심정이 애니팡 열풍에서 읽힌다”는 것이다.

그런데 비슷하게 단순한 게임 중에서도 왜 애니팡이 유독 떴을까? 분주한 현대사회의 단면은 애니팡의 또 다른 세일즈 포인트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게임은 카카오톡과 연동돼서, 카카오톡에 등록된 지인들의 점수를 보여주고 등수를 기록한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아는 사람들과 경쟁한다는 얘기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인터넷에서 만나 스스럼없이 게임 한 판을 벌이던 온라인게임에 비하면, 폐쇄적인 구조다. 그런데 순위 정하기를 ‘아는 사람들끼리’로 제한한 이 특징이 오히려 경쟁심에 더욱 불을 붙인다. 학교에서 시험 보고 친구들과 성적을 비교하는 것과 흡사한 상황이다. 현대사회의 경쟁, 더욱이 한국인의 정서 중 핵심을 건드리는 ‘등수 매기기’란!

사진 제공 동아일보 DB
사진 제공 동아일보 DB
애니팡을 하려면 사이버머니 격인 ‘하트’가 필요하다. 하트를 다 쓰면 8분 뒤에 다시 제공되지만, 기다리기 지루하면 돈을 주고 살 수도 있고 게임을 사용하는 친구들한테 받을 수도 있다. 애니팡 사용자들이 게임을 하고자 하트를 너무 많이 주고받는 통에 ‘스팸하트’란 말이 나올 정도다. 하트를 소진해 게임을 그만뒀다가도 친구에게 카카오톡으로 하트를 받으면 다시 게임을 해야 할 것 같은 유혹이 든다. 또 나도 게임에 접속해 하트를 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도 느낀다. 카카오톡 메시지로 하트를 자주 받는다는 시인 오은 씨는 “하트는 피로를 풀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다시 경쟁에 돌입하게 만드는 양날의 검 같은 게 아닐까”라면서 “어쩌면 경쟁과 투쟁이 끝없이 반복되는 사회의 거울”이라고 말한다.

한병철 독일 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 교수는 ‘피로사회’라는 저서에서 “21세기 사회가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했다”고 밝혔다. 그만큼 눈에 보이는 성과를 위해 피로를 감수하며 매진하는 세상이다. 애니팡이라는 단순한 게임에서 나는 이런 성과 일로로 치닫는 사회의 그늘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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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오피니언팀 기자 kimjy@donga.com
#대중문화#애니팡#카카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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