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性교육’이 답이다]<下> 성범죄 예방 교과서 만들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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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을때 택배 오면?”… 일상속 매뉴얼을 가르쳐라

“제가 어렸을 때 이런 교육을 받았다면 그 끔찍한 죄를 짓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땐 왜 그런 기회가 없었을까요. 성범죄가 뭔지도 잘 몰랐던 제가 한심하네요.”

얼마 전 교도소를 방문해 성범죄자를 대상으로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주는 교육을 실시한 성교육 전문가 이현숙 대표는 한 30대 수강생으로부터 이처럼 뒤늦은 후회의 소리를 들었다. 이 대표는 “학교 성교육이 왜 중요한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고 했다.

최근 한 남학생이 고교 시절 성범죄 전력을 숨기고 성균관대에 입학해 물의를 빚었다. 해당 학생을 포함해 남자 고교생 16명은 지적장애 여중생을 한 달간 집단 성폭행하는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상당수는 중상위권 성적에 부모가 교사나 공무원인 안정된 가정의 자녀였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피해자가 크게 저항하지 않아 합의가 된 줄 알았다”고 주장했다. 사건담당 경찰관은 “의사표현 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인을 성폭행하고도 자기 기준에서만 판단한 것”이라며 “그 발언을 듣고 ‘그 학생들이 성폭행이 뭔지 제대로 배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고 말했다.

실효성 있는 성범죄 예방교육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전문가들의 6가지 제언을 정리했다.

① ‘현장형 수업’을 하자

성교육은 청소년들의 일상생활에서 언제든 적용 가능한 ‘현장형’이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성폭력의 정확한 기준이 무엇이고 성폭력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성교육 시간에 정립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초등학생들에게 “수영복을 입었을 때 가려진 부분은 부모가 만지더라도 ‘안 된다’고 외치라”고 가르칠 정도로 세밀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또 성폭행 위험에 처하면 ‘무조건 소리를 지르라’고 할 게 아니라 “성폭행범이 팔을 뻗었을 때 닿을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 침착히 대응하고 그 범위 밖이라면 소리를 지르며 도망쳐라. 성폭행범은 적발될 위험을 무릅쓰고 피해자를 굳이 쫓아가지 않는다”는 현장 상황에 맞는 대처법을 가르쳐야 한다.

② 성범죄 예방 교과 만들자

전문가들은 성범죄 예방 내용을 지금처럼 여러 과목에 나눠놓고 ‘수박 겉핥기’로 끝낼 게 아니라 통합된 정규 과목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초중고교 교육 과정에 맞춰 체계적인 교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교육 효과를 높이려면 연령이나 성향 등 학생 개인의 특성에 맞게 소규모로 나눠 맞춤형으로 교육해야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성범죄 피해 대처 요령에 대해 집중교육하고 중고교생은 성폭력 개념, 올바른 남녀 관계 정립에 중점을 둬야 한다.

③ 툭 터놓고 얘기하자

학교와 가정에서 성에 대해 솔직히 말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미국과 덴마크 등 선진국에선 1차적인 성교육자가 부모라는 인식이 강해 자녀들이 민감한 주제를 두고 부모와 대화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미국 현지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들이 성관계나 동성애 등에 대해 부모와 대화할 때 편안함을 느꼈다고 답한 비율이 65%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교사가 성교육 시간에 콘돔 사용법을 알려줬다가 ‘성관계를 부추긴다’는 학부모 항의를 받고 강의에서 피임법을 빼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④ 가정으로 확대하자

교사는 매년 바뀌지만 부모는 자녀의 ‘평생 교사’다. 정부가 초등학교 교사들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성범죄 위험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응답자 48.7%가 ‘가정 성교육 강화’를 꼽아 가장 많았다. 하지만 부모의 성교육 관련 지식 수준은 한참 모자란다. ‘아하 서울청소년성문화센터’ 홈페이지에 올라온 상담글을 보면 “자위를 하는 아들을 야단쳐야 하느냐” “초등학생 남매가 컴퓨터로 야한 사진을 보는데 어떡해야 하느냐” 등의 문의가 상당수다. 전문가들은 집에 성교육 관련 서적을 비치해 놓으라고 조언한다. 책이 손에 닿는 곳에 있으면 자녀가 자연스럽게 읽고 부모와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다.

⑤ 성교육 연령을 낮추자

최근 성범죄 대상이 되는 연령층이 낮아지면서 성교육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현재 학교 성교육은 2차 성징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5학년 이후 이뤄지지만 이를 최소한 초등학교 입학 단계로 앞당겨야 한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2010년 전국 보건교사와 보육원 교사 1756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이상적인 성교육 시작 시기로 응답자 59.4%가 3∼5세를 꼽았고 초등학교 1∼3학년이라고 생각하는 교사가 16.9%를 차지했다.

⑥ 교육 전문교사 양성하자

성범죄 예방교육 전문 교사가 턱없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성교육 교사가 성폭력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과 풍부한 사례가 없으면 ‘성교육은 역시 뻔하다’는 학생들의 선입견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다. 현재 보건교과에는 성범죄 예방 관련 내용이 비교적 상세히 포함돼 있지만 보건 교과를 채택한 학교는 7.8%에 불과하고 이들 학교에서마저 성범죄 예방교육은 뒷전이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성범죄#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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