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donga.com

육의전 박물관 문 열어… 유리판 위 걸으며 옛 시전행랑-피맛골 유적 구경
더보기

육의전 박물관 문 열어… 유리판 위 걸으며 옛 시전행랑-피맛골 유적 구경

동아일보입력 2012-08-30 03:00수정 2012-08-30 03:18
뉴스듣기프린트
트랜드뉴스 보기
건물 올리면서 유적도 보호… 문화재 보존-개발 상생해법 제시
30일 개관하는 육의전 박물관은 발굴 유적 위에 대형 유리를 깔아 관람객이 유리판 위를 걸어다니면서 내려다볼 수 있게 설계됐다. 육의전 박물관 제공
2007년 서울 종로 도심 한복판 빌딩 공사 현장에서 조선시대 육의전(六矣廛) 터가 발견됐다. 육의전은 비단과 무명, 명주, 종이, 모시(베), 생선을 팔던 여섯 개의 시전(市廛·관아에 물품을 공급하고 특정 상품에 대한 독점 판매권을 가진 상인의 점포)을 말한다. 발굴 유적은 시전 상인이 창고나 생활공간 등으로 사용했던 행랑(行廊·대문 양쪽이나 문간 옆에 있는 방) 유구(遺構·옛 건물의 구조와 양식을 알려주는 자취) 등이다. 2008년 1월 문화재위원회는 이 유적을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이곳에 건물을 신축할 수 없게 된 건물주는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과 함께 묘안을 짜냈다. 건물을 세우는 대신 지하에 박물관을 지어 발굴 유적을 보존하기로 한 것. 이렇게 시작한 육의전 박물관이 유적 발굴 후 4년 8개월 만인 30일 종로2가 ‘육의전 빌딩’ 지하 1층에 개관한다.

박물관은 15, 16세기 육의전과 15세기 피맛골(조선 백성들이 고관대작의 행차를 피해 자유롭게 다니던 좁은 골목길) 유적 위에 대형 유리를 깔아 관람객이 유리판 위를 걸으며 관람하게 설계됐다. 개발과 발굴 등으로 대부분 사라진 피맛골의 원형은 오직 이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다.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면 유리판 없이 유적의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유적과 더불어 조선시대 시전의 역사와 체계, 거래 방법과 도구, 뒷이야기 등도 확인할 수 있다. 육의전 가게들은 단골의 이름을 적은 수첩인 복첩(福帖)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를 조상의 위패와 나란히 모실 정도로 귀하게 여겼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한번 단골이 되면 보통 7∼8대 이상 이어졌고, 가업을 잇는 자식에게 재산이 아닌 복첩을 물려줬다는 사실은 조선시대 상인이 신용을 매우 중시했음을 알려준다.

주요기사

박물관장을 맡은 황 소장은 “육의전 박물관은 문화재 보존과 개발의 상생 해법을 찾은 결과물”이라며 “발굴 현장을 그대로 보존해 시민에게 보여주는 이 박물관이 고고학 발굴유적 전시관의 모범사례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성인 3000원, 청소년 2000원, 경로자 및 어린이 1000원. 월요일 휴관. 02-722-6162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주요뉴스

1/3이전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