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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선생 死因 논란 재점화 핵심 3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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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선생 死因 논란 재점화 핵심 3인 인터뷰

동아일보입력 2012-08-24 03:00수정 2012-08-24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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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선생 死因 논란 재점화… 핵심 3인 인터뷰
《 장준하 선생(1918∼1975·사진)의 유골에서 타원형의 골절 흔적이 발견돼 사인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동아일보는 장 선생 의문사 사건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는 취지에서 핵심 인물 세 사람을 인터뷰했다. 장 선생이 사망할 당시 등산에 동행했던 유일한 목격자인 전직 교사 김용환 씨, 김대중 정부 시절 장 선생 의문사 사건을 조사했던 대통령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양승규 초대 위원장, 이달 1일 장 선생의 유골을 유족과 함께 검안한 국내 법의학계 권위자 서울대 이윤성 교수다. 장준하 선생은 1918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에 광복군과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다. 광복 이후에는 월간 사상계를 창간했으며 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박정희 정권에 항거하던 선생은 1975년 8월 17일 경기 포천시 약사봉에서 등산 도중 추락사한 채 발견됐다. 정부는 실족사로 발표했지만 일각에서는 타살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
▼ “유골이 나왔지만 달라지는 것 없다” ▼

■ “실족사 목격” 김용환씨


“유골이 세상 밖으로 나왔어도 하나뿐인 진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1975년 8월 17일 경기 포천시 약사봉에서 발생한 장준하 선생 추락사의 유일한 목격자 김용환 씨(69). 그가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 때 모습을 드러낸 이후 8년여 만에 처음으로 언론에 입을 열었다. 22일 오후 4시 반경 충남 당진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고혈압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으로 가던 김 씨는 1시간가량 이어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 내내 “또다시 고통 받고 싶지 않다. 나는 더이상 할 말이 없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반복했다. 원형 골절 부위가 선명한 장 선생의 두개골 사진이 공개되면서 ‘타살’ 의혹이 다시 떠올랐지만 김 씨는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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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본보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용환 씨. 김씨는 사진촬영을 원하지 않았지만 본보는 장준하 실족사에 대한 의혹이 공론화됐다고 판단해 게재한다.
김 씨는 누군가가 망치 등의 흉기로 두개골을 가격한 흔적이라는 주장에 대해 “14m 높이에서 추락했으니 큰 상처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37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나”며 “선입견을 갖고 보면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 보이기 마련”이라고 주장했다.

대선을 앞두고 다시 장 선생의 죽음이 논란이 되는 데도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무슨 이야기가 나오든지 정치적 싸움의 구실이 될 뿐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는 “사실상 종결된 것 아니냐. 두 번에 걸쳐 철저하게 조사를 했으니 이미 결론이 난 것과 다름없다”며 “내 말을 믿지도 않으면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같은 이야기를 또 반복하라고 강요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더이상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날 괴롭히지 않았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장 선생의 추락 지점을 명확히 찾지 못하고 진술이 일관되지 못하는 등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여전히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그는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수십 년이 지난 뒤 산 속에서 같은 장소를 찾는 것이 가능한 일이냐”며 “머릿속으로는 정확히 기억한다. 장 선생이 떨어진 그곳에는 자갈이 많았고 위쪽으로는 모래가 있었다. 조사위와 함께 현장검증을 한 후에도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산을 여러 번 올라 추락 지점을 찾으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장 선생의 장례식과 그후 추모행사들에 참석조차 안 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에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그는 “장례식과 장지에 갔었다. 장 선생을 추모하는 자리에는 참석해서 그의 넋을 위로했다. 내가 나설 처지가 아니라 뒤쪽에서 조용히 있다 왔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은 것뿐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장 선생은 나를 극진히 보살펴줬고 나도 그만큼 선생님을 따랐다”며 “내가 은혜를 받은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진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추가 조사에 대해서는 단호한 자세를 보였다. 그는 “솔직히 조사 안 했으면 좋겠다. 너무 힘들다”라며 “하지만 세 번째 진상조사를 한다고 해도 떳떳하게 받아들이고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김 씨는 교직생활을 하다 1967년 장준하 선생이 국회의원에 출마하자 간사직으로 도왔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1999년 3월 교감으로 정년퇴직한 뒤 지금은 부인과 함께 밭농사를 짓고 있다.


당진=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 “팩트만 말했는데 좌우 제각각 해석” ▼

■ 유골 검안 이윤성 서울대교수


21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연구실에서 본보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는 이윤성 서울대 의과대 법의학연구소 교수.
“유골을 본 뒤 인터뷰를 스무 번도 더 했지만 제 말을 정치색 없이 보도한 매체는 없어요.”

21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연구실에서 만난 서울대 의과대 법의학연구소 이윤성 교수는 인터뷰 내내 ‘과학적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일 장준하 선생 묘 이장을 참관하며 고인의 유골을 검안했다. 고인의 두개골에서 지름 6∼7cm의 타원형 골절 흔적이 발견된 것과 관련해 그는 “처음 본 순간 망치로 때린 것 같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고 말했다. 검안 결과를 검토한 뒤 그는 “유골의 머리뼈 골절은 (망치 같은) 둔체에 의한 손상이지만 가격에 의한 것인지, 넘어지거나 추락하면서 부딪쳐 생긴 것인지는 판단할 수 없다”는 소견을 내놨다.

“한 가지 결론을 두고도 해석이 분분해요. 타살됐다고 믿는 사람들은 ‘망치로 친 게 뻔히 보이는데 왜 속 시원히 말을 못 하느냐’고 하고, 다른 편에선 ‘이미 실족사로 결론이 난 일을 괜히 망치 운운하며 들쑤신다’고 욕을 하죠. 답답할 뿐이에요.”

이 교수는 장 선생의 죽음이 ‘망치로 인한 타살’임을 단언할 수 없는 몇 가지 법의학적 근거를 제시했다. △타원형 골절 바깥의 방사형 골절은 일반적으로 망치 가격보다 훨씬 큰 충격에 의해 발생한다는 점 △망치에 맞은 시신에는 여러 차례 내리친 상처 자국이 흔히 발견되는데 장 선생의 경우 한 개뿐이라는 점 △시신 두피에 망치 가장자리 모양으로 찢어진 상처가 남아야 하는데 고 조철구 박사가 1993년 민주당 진상조사위에 낸 검안 소견에는 이 같은 내용이 없었다는 점 등을 꼽았다.

시신의 오른쪽 골반 뼈가 여러 조각으로 부서진 사실이 새롭게 밝혀진 것과 관련해 이 교수는 “골반 뼈는 사람의 힘으로 부수기에 무리가 있어 추락에 따른 손상일 가능성이 크다”며 “망치에 맞은 뒤 절벽으로 굴러 떨어졌거나 추락으로 머리와 골반이 같이 손상됐을 가능성 모두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지금이라도 정확한 사인에 근접하려면 고인의 모든 뼈를 X선 촬영을 해 미세한 골절이 있는지 확인하고 생체조직에 독극물이나 마취제가 남아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현장에 간 목격자 추락 바위 못찾아” ▼

■ “타살” 양승규 1차 진상규명委長


20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 자택에서 양승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초대 위원장이 동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깨진 장준하 선생님의 두개골을 본 순간 ‘감춰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기 마련’이라는 마태복음 구절이 떠오르더군요. 장 선생님은 등반길에서 실족사한 게 아니라 당시 정권에 의해 계획적으로 살해됐다고 봅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장 선생 의문사 사건을 조사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양승규 초대 위원장(78)은 20일 본보 인터뷰에서 “37년 만에 장 선생의 유골이 우리를 다시 찾아온 것은 진실을 밝히라는 무언의 시위”라며 “진범을 잡지 못하더라도 사인을 밝히기 위해 반드시 재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양 전 위원장은 장 선생의 죽음을 ‘정보기관원에 의한 타살’로 단언한다.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로 알려진 김용환 씨의 진술이 구체적이지 않아 믿기 어렵다는 이유다. 그는 2001년 5월 31일 목격자 김 씨와 장 선생이 추락사 한 경기 포천시 약사봉 현장을 찾았다. 진상규명위 직원 10여 명과 전문산악인 3명도 함께 갔다. 정상 부근에 도착한 양 위원장은 “김 씨에게 ‘당신이 장 선생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는 바위를 찾으라’고 했는데 김 씨는 한동안 산등성이를 오르내렸지만 제대로 지목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양 위원장은 “당시 김 씨 진술에 따라 장 선생이 추락한 지점으로 가자고 요구했다. 하지만 사고 당시에는 그 지점에 갔다고 주장한 김 씨가 ‘추락 지점인 그 바위에는 (너무 위험해) 접근할 수 없다’고 하더라. 그는 시신 발견 지점도 지목하지 못했다. 그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양 전 위원장은 “현장검증을 끝낸 뒤에 김 씨에게 ‘이제 그만 진실을 털어놓으라’고 했지만 그는 ‘장 선생은 실족사하셨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했다.

양 위원장은 그동안 여러 차례 진상규명위가 열렸는데도 사인을 밝히지 못한 이유에 대해 △사인과 관련한 공식적 의학기록이 없었던 점 △유일한 목격자인 김 씨가 진술을 번복해가며 ‘실족사’임을 일관되게 주장하는 점 △장 선생에 대한 국정원 사찰기록이 사고일 전후로 비어 있었고 기무사에서 관련 정보제공을 거부한 점 등을 지적했다.

channelA ‘타살 의혹’ 두개골 오른쪽에 선명한 골절

고현국 기자 mck@donga.com
#장준하 선생#실족사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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