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망 37년 만에 다시 불거진 장준하 死因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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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維新) 시절인 1975년 사망한 장준하 씨의 사인(死因)이 그의 유해 이장(移葬)을 계기로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장준하기념사업회는 16일 장 씨의 유골 사진을 공개하고 “국가가 책임지고 즉시 장 선생 사망 사건에 대한 전면적 재조사와 진상규명에 착수하라”고 촉구했다. 민주통합당은 ‘의문사 진상조사위’를 구성해 의혹 확인에 나서기로 했다.

장준하기념사업회와 유족은 경기 파주시 광탄면 천주교 공동묘지에 묻혀 있던 장 씨의 유해를 이달 초 새로 조성한 ‘장준하 기념공원’으로 이장하면서 유골 사진을 찍었다. 머리 뒤쪽에서 6cm 크기의 둥그런 함몰 흔적이 발견되자 유족들은 “망치 같은 것으로 가격한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유골을 검시한 이윤성 서울대 교수는 “머리뼈 등의 골절은 둔탁한 물체에 의한 손상으로 보인다”면서도 “누군가의 가격에 의한 것인지, 부딪혀 생긴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장 씨는 37년 전 경기 포천시 약사봉 계곡 절벽에서 추락해 사망한 것으로 당시 수사기관이 결론을 내렸다. 중앙정보부가 막강한 힘을 행사하던 유신 독재시절에 장 씨의 시신은 간단한 검안만 거친 뒤 매장됐다. 유족들도 “독재정권에서 사인이 제대로 밝혀질 리 없다”며 부검에 반대했다. 하지만 장 씨가 산에 오를 때는 등산코스로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는 벼랑길을 택한 점 등을 들어 수사 결론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1993년 ‘장준하 선생 사인규명 진상조사위원회’가 재조사를 시도했지만 결정적 증거는 찾지 못했다. 2004년엔 노무현 정부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다시 조사를 벌였으나 결론은 ‘진상규명 불능’이었다. 당시 유골 감정을 검토했지만 유족과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 등이 “사람을 두 번 죽일 수 없다”며 반대해 무산됐다.

장 씨의 37주기 추모식이 어제 파주 통일공원에서 열렸다. 비록 법적으로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함몰 흔적이 있는 유골 사진이 공개된 만큼 논란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현재로선 타살인지 추락사인지 단정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죽음의 진실을 찾아내는 것이 우선이며 이 사건을 예단(豫斷)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장 씨는 유신에 저항했던 대표적인 반체제 인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의원은 새누리당의 유력한 대선주자다. 민주당 대선주자들은 이 사건을 빌미로 박 의원에 대한 공세를 펴고 있다. 일부는 대선 경선 후보 사퇴까지 요구했다. 장 씨의 사인을 타살로 단정해 유력 대선후보를 공격하는 소재로 쓰는 것은 옳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상규명이다.
#사설#장준하#장준하 사망 논란#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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