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구는 내 인생, 은퇴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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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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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 짱구 목소리 주인공, 66세 성우 박영남 씨

짱구 목소리 연기로 유명한 성우 박영남 씨는 온라인에 떠도는 은퇴설을 일축하며 “밥숟가락 들 힘이 있는 한 마이크 앞에 서고 싶다”고 말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짱구 목소리 연기로 유명한 성우 박영남 씨는 온라인에 떠도는 은퇴설을 일축하며 “밥숟가락 들 힘이 있는 한 마이크 앞에 서고 싶다”고 말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내가 짱구야, 내가. 내 삶이 짱구지. 짱구처럼 장난스럽고 단순하게 살았어.”

눈을 감고 들으면 딱 짱구다. “어엄마아∼ 학교 갔다 오겠습니다아∼” “짱아야∼ 너 왜 자꾸 나만 따라다녀어∼ 귀찮게스리” 하는 짱구.

그런데 눈을 떠보니 곱고 단정한 할머니가 웃고 있다. 미운 다섯 살 짱구 목소리의 주인공은 예순여섯의 할머니 성우 박영남 씨였다. 1999년부터 13년간 그는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 말려’에서 짱구 목소리를 연기해왔다. 5일 케이블채널 투니버스에서 시작된 시즌12에서 그가 빠지자 인터넷에서 ‘지병설’ ‘은퇴설’이 제기될 정도로 그의 부재 자체가 화제였다.

“무슨 지병이고 은퇴야. 그저 만성위염일 뿐이야. 남들 1년에 한 번 휴가 내듯 쉴 때도 좀 있어야지 했어. 그런데 몸이 많이 아픈 것도 아닌데 후회가 막심해. 시즌12도 그냥 할걸.” 시무룩한 목소리마저 짱구스러웠다.

시즌11까지 13년간 ‘짱구’ 도맡다 시즌12 때 쉬어

그는 1966년 TBC 성우로 입사한 뒤 1980년 언론사 통폐합 때 KBS로 자리를 옮겨 8기 성우로 활동했다. “성우가 되기로 마음먹었을 땐 예쁜 여주인공 할 줄 알았지. 그런데 아톰으로 떠버려서….” ‘우주소년 아톰’의 아톰 목소리 연기로 실력을 인정받은 뒤로는 주연급 남자아이 배역을 도맡다시피 했다. ‘마루치 아라치’의 마루치, ‘개구리소년 왕눈이’의 왕눈이, ‘날아라 슈퍼보드’의 손오공, ‘아기공룡 둘리’의 둘리, ‘원피스’의 쵸파 모두 그의 목소리로 녹음됐다.

그중에서도 짱구는 그가 가장 오랫동안 연기해온 캐릭터다. 어수룩하고 능청스러운 짱구 목소리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짱구는 능구렁이에 심술쟁이야. 똑똑한데 바보인 척하지. 게다가 너무 재랄을 해(법석을 떨어). 움직임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짱구가 뛰어가면 내가 ‘허허허허∼’ 하며 호흡을 맞춰야 하지.”

짱구 연기를 오래 해서인지 그의 행동은 꼭 짱구를 닮았다. 우유 배달원이 우유 배달 신청하라며 현관문 초인종을 누르면 장난기가 발동한다. “초인종 소리가 너무 지겨워서 짱구 목소리로 ‘엄마 안 계신데요∼’ 했지. 배달원도 깜빡 속았어. ‘언제 들어오시냐’는 말에 나도 모르게 또 ‘모르겠는데요∼’ 했지.(웃음)”

내년 ‘짱구는 못 말려’ 시즌13 때 반드시 복귀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 말려’의 캐릭터 ‘짱구’. CJ E&M 제공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 말려’의 캐릭터 ‘짱구’. CJ E&M 제공
육순(六旬)이 지난 나이에도 명랑한 아이 목소리를 유지하는 비결은 뭘까. 날달걀 한 판을 삼키는 식의 묘책을 기대했지만 그는 “타고났다”고 했다. “어렸을 때 소꿉놀이를 하면 혼자서 인형을 들고 엄마 역할도 했다가 아빠도 했다가 그랬어. 부모님은 내가 방에서 친구랑 노는 줄 알고 문도 안 열었대. 국어 수업시간엔 항상 내가 일어나서 책을 읽었지. 낭독이 끝나면 박수도 엄청 받았어. 내 목소린 하나님이 주신 큰 축복이야.”

건강을 회복한 지금은 EBS ‘딩동댕 유치원’의 인형극 ‘요술코 몽구리’에서 몽구리 목소리를 연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정말 아끼는 캐릭터는 역시 짱구다. 시즌13에선 꼭 짱구를 다시 맡겨 달라고 제작진에 말해 놓았다고 했다. 내년에 개봉하는 ‘짱구는…’ 극장판 후속편에도 욕심을 내고 있다.

“짱구를, 그리고 내 목소리를 아껴주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어. 어린아이처럼 내 나이를 잊고 살아서 행복하지. 할머니답지 못하다고? 에이 몰라, 나도 짱구처럼 신나게 살지 뭐. 유치원에 내가 뜨면 손주들 어깨가 쫙 펴지는걸.”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짱구#성우 박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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