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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습니다, 피천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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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습니다, 피천득 시인

동아일보입력 2012-05-17 03:00수정 2012-05-17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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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수필과 시는 같아”… 100여 편 남겨
5주기 맞아 시 세계 분석… 19일 학술대회
달무리 지면 - 피천득

달무리 지면
이튿날 아침에 비 온다더니
그 말이 맞아서 비가 왔네

눈 오는 꿈을 꾸면
이듬해 봄에는 오신다더니
그 말은 안 맞고 꽃이 지네》

“나 자신 시인이 되고 싶었고, 직접 시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독자들이 내가 쓴 수필과 산문을 많이 사랑하게 되면서 내가 쓴 시들이 그것에 가려진 듯한 느낌이 듭니다. 사실 나에게 있어 수필과 시는 같은 것입니다.”

수필집 ‘인연’을 남긴 금아(琴兒) 피천득 선생(1910∼2007·사진)은 1997년 펴낸 번역시집 ‘내가 사랑하는 시’(샘터)의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수필가로서의 명성이 커 ‘시인 피천득’이 가려진 데 대한 아쉬움의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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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5주기를 맞아 ‘시인 피천득’을 기리는 행사가 열린다. 중앙대 인문과학연구소, 한국비교문학회, 한국영어영문학회는 19일 서울 동작구 중앙대 서라벌홀에서 ‘한국문학과 피천득’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

정정호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기조발제문 ‘피천득의 1930년대 초 등단기의 작품 활동 개관’에서 “피천득의 시는 결코 그의 수필보다 수준이 낮지 않지만 우리 문단은 시와 수필 양쪽 분야에서 탁월한 피천득을 그대로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며 “피천득 수필의 특성은 그것이 시적이라는 데 있으므로 그의 수필은 일종의 ‘산문시’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평가했다.

금아는 짧고 서정적인 시 100여 편을 남겼는데, 70여 년의 작품 활동 기간을 고려하면 많은 양이 아니다. 하지만 정 교수는 “피천득은 시의 경우 수필과 달리 절필하지 않고 적은 양일지언정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써왔다”고 설명했다. 금아는 1970년대 중반부터 수필을 쓰지 않았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붉은 악마’라는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정 교수가 1930년대 초 금아의 등단 이후 3년 9개월간 발표된 작품들을 분석한 결과 금아는 시 시조 수필 동요 단편소설 번역시 등 37편의 작품을 꾸준히 냈는데 그중 11편이 시, 14편이 시조였다. 또 금아는 1932년 5월 동아일보에 시조시인 이은상에 관한 평론을 3회에 걸쳐 발표할 정도로 시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이경수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발표문 ‘피천득 시 세계의 변모와 그 의미’에서 그의 시가 현대 시문학사에서 소외된 데 대해 “피천득의 시는 대체로 소박하고 동시의 범주에서 읽을 수 있거나 현대시조의 형식을 취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번역가로서의 금아를 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창국 중앙대 명예교수는 발표문 ‘피천득과 번역’에서 “피천득은 셰익스피어 시 중에서도 형식과 기교가 가장 정교한 소네트 154편 전부를 명쾌하게 번역했다”며 “흔히 번역문이 애매할 때 원문으로 돌아가 해답을 얻지만 피천득의 소네트 번역은 분명하고 자연스럽고 아름답기 때문에 오히려 원문이 애매할 때 피천득의 번역문과 대조해 보면 뜻이 자명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문학#피천득#피천득 5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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