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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김일성, 1975년 中에 남침 요구…中 답변은

동아일보

입력 2012-05-16 08:12:00 수정 2012-05-16 13:41:18

베트남, 캄보디아 혁명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 1975년 봄 중국을 방문한 북한 김일성 국가주석은 '남조선 해방'을 위한 군사적 행동에 대한 중국의 지원을 요청했지만 당시 미국과의 데탕트를 추구하며 한반도 긴장완화를 원치 않던 중국으로부터 거절당한 것으로 옛 동독 외교문서에서 확인됐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당시 김 주석의 남침 의지를 만류하며 오히려 1971년 7·4 남북공동성명 채택으로 활발하다 1973년 말 중단됐던 남북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 우드로윌슨센터 '북한국제문서연구사업'(NKIDP) 프로젝트팀이 최근 발굴, 15일(현지시간) 연합뉴스가 입수한 옛 공산권 국가의 비밀 외교전문에 따르면 1975년 4월18일부터 26일까지 이뤄진 김 주석의 방중 때 발표된 양국 코뮈니케가 "모든 의제에 합의를 이뤘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대남 정책을 비롯한 대 소련, 미국 등 주요 이슈들에서 양국은 많은 견해차를 드러냈다.

평양주재 동독대사관이 김 주석 방중 직후인 4월과 5월에 보낸 3건의 외교전문들은 "김 주석의 방중일정은 급하게 짜여졌다"며 "김 주석 방문의 주요 목적은 인도차이나의 혁명 전개 상황을 바탕으로 향후 대남전략을 중국과 조율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본국에 보고했다.

김 주석이 방중을 전후한 4월17일과 30일 공산반군에 의해 캄보디아 프놈펜과 베트남 사이공이 함락되면서 인도차이나 공산혁명은 정점으로 치닫던 시기였다.

김 주석은 4월19일 방중 첫 연설에서 `남조선 해방'을 위한 매우 호전적인 내용의 성명을 밝혔고 특히 "남조선에 혁명적 상황이 생길 경우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고, 전쟁을 통해 남조선 인민은 오로지 잃을 것은 분계선이며 얻을 것은 통일"이라고 강조했다고 외교전문은 전했다.

김 주석은 한반도 통일에 대해 "전 세계 반제국주의 해방투쟁의 중요한 고리"라고 역설했고, 동독대사관은 김 주석은 "연설에서 매우 군사적인 측면을 강조했다"고 분위기를 부연했다.

이에 대해 중국 측은 한반도 통일은 김 주석이 승인한 7·4 남북공동성명의 3대 원칙(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특히 "1972년에 본격화됐지만 1973년 말부터 정체상태에 빠진 북·남간 대화가 지속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동독대사관은 "중국이 미국 및 남한과 대결하려는 북한의 정책에 관심이 없다는 점을 드러낸 것"이라며 "이는 한반도에 불안정한 상황을 초래해 중국에도 예측하기 힘든 위험을 야기할 수 있고, 중국이 추진하는 미국, 일본과의 관계개선 정책을 위협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동독은 또 "중국으로서는 자국의 대외, 국내정책상의 이해때문에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대결을 원치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며, 김일성을 온건한 방향으로 설득하기 위해 그들의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고 보고했다.

동독대사관은 이와 함께 "양측은 김 주석 방중이후 모든 분야에서 완전한 합의를 이뤘다고 밝혔지만, 이와는 반대로 양측은 주요 현안에서 각자의 입장을 고수했다"고 밝혔다.

이견을 드러낸 분야는 대남정책은 물론이고 공동 코뮈니케에서 단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은 소련을 비롯, 사회주의 형제국가에 대한 정책, 미국. 일본에 대한 정책들이라고 동독 외교관은 전했다.

동독은 "김 주석의 방중기간 오랜 협상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중국은 공동 코뮈니케에서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을 제외하고는 양자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결과를 포함시키지 않았으며, 중국 지도부의 답방 언급도 들어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주석은 이번 방중을 통해 북한의 대남정책에 대한 중국의 전폭적이고 무조건적인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시도를 성공시키지 못했고, 보다 장기적인 차원에서 양국의 견해차를 확인하게 됐다고 동독은 분석했다.

김 주석은 당시 방중에서 건강이 좋지 않았던 마오쩌둥 주석과 저우언라이 총리를 각각 한차례 면담하고, 덩샤오핑 부주석과 19, 20, 21, 25일에 네 차례에 걸쳐 회담을 가졌다.

동독 대사관은 김 주석 방중 2년 반후인 1977년 11월17일 본국에 보낸 외교전문에서 1960년대 중반 문화혁명 당시 악화된 북중관계는 차츰 개선돼 1975년 김 주석 방중으로 관계회복의 정점에 달했지만 김 주석의 대남 군사적 해법 지원에 대한 중국의 거부와 향후 양국 국내사정과 이해 등으로 다시 좋지 않게 됐다고 분석했다.

동독은 "1976년 마오쩌둥 사망 이후 북한은 중국에 대해 보다 독립적인 노선을 취하는 등 보다 동등한 파트너국으로 자리매김하는 경향을 강화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와 함께 "중국도 자국의 이익이 직접적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에는 북한의 대외정책에 대해 무조건적인 지지를 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며 "하나의 사례가 한반도 긴장악화를 꺼리는 중국이 1976년 8월 북한에 의해 벌어진 판문점 도끼사건에 대해 유보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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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파견한 우드로윌슨센터 연구원 채리아 서울대 강사는 "김일성 주석의 1975년 4월 방중은 1961년 이후 14년만에 대표단을 이끌고 공식적으로 북한을 방문한 것"이라며 "당시 방중의 의미는 북중 관계와 북한의 대남전략을 이해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이벤트이지만 정보의 한계로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채 강사는 "동독 외교문서는 김일성 방중의 성과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며 "북한에 대한 중국의 태도가 결국 1970년대 후반 김일성 주석이 중국과 소련과의 삼각 외교축에서 북한의 입장을 재조정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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