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쓴 사람도 못지우는 포털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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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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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달리면 삭제 어려워
일부 개인정보 노출 등 고통… “글 지워달라” 항의 잇달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작성자가 임의로 글을 지울 수 없어 삭제를 요청하는 글이 지속적으로 올라온다. 다음 화면 캡처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작성자가 임의로 글을 지울 수 없어 삭제를 요청하는 글이 지속적으로 올라온다. 다음 화면 캡처
대학원생 강모 씨(26·여)는 4년 전 네이버 지식IN에 “남자친구와 만난 지 600일을 기념해 호주로 여행을 가려 하는데 좋은 호텔을 추천해 달라”는 글을 올렸다가 낭패를 봤다.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새 남자친구가 생겼지만 당시 올렸던 글을 삭제할 수 없었던 것. 강 씨는 “답변이 달린 질문은 삭제할 수 없다”는 네이버 상담원과 몇 차례 전화로 말씨름을 한 뒤에야 글을 지울 수 있었다. 강 씨는 “쓰는 건 자유롭지만 지울 때는 그렇지 않았다”며 “내가 쓴 글인데 왜 마음대로 못 지우게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최근 NHN 다음 SK커뮤니케이션즈 등 주요 포털사에는 ‘글 지워 달라’는 항의성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IN’ ‘다음 지식인’ ‘네이트 지식인’ 등 공개 게시판은 일반 카페나 블로그와 달리 작성자 임의로 글을 삭제할 수 없도록 돼 있어 글 게시자들이 본사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IN은 답글이 달린 글을 삭제하려면 게시자가 답글 작성자에게 직접 연락해 답글부터 지운 뒤에야 삭제가 가능하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으려면 포털 고객센터로 ‘글을 지워야 하는 사유’를 상세하게 적어 보내 승인을 받아야 한다.

다음 지식인 역시 댓글이 달린 뒤엔 작성자가 해당글을 삭제할 수 없다. 욕설이나 음란성 유해 글이라면 작성자가 직접 포털사로 자신의 신분증 사본 등 정보를 보내고 신고해야 삭제가 가능하다.

네이트 지식인도 개인적으로는 글을 지울 수 없고 해당 게시글을 신고한 뒤 신분증을 첨부해 보내면 회사 측이 판단해 지워준다. 포털들은 “블로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달리 게시판은 상호 응답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작성자 마음대로 글을 지울 수 있도록 허락하면 게시판 운영이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복잡한 과정을 거치다 보니 과거 올렸던 글 가운데 개인 신상이 노출되거나 글로 인해 갈등이 생기더라도 빠르게 대처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피해자도 적지 않다. 특히 댓글 하나만 달려도 마음대로 글 삭제가 불가능해지는 사실을 잘 아는 일부 누리꾼은 작성자를 골탕 먹이기 위해 게시글의 내용과는 전혀 무관하게 ‘삭제 방지’라는 댓글을 달기도 한다. 한 여고생은 “네이트 지식인에 친구의 뒷담화를 올렸는데 댓글이 많이 달려 당황스럽다”며 “친구가 내 아이디(ID)를 알고 있는데 글이 삭제가 안 돼 고민”이라고 하소연하는 글을 한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다. 일부 누리꾼은 포털사와의 갈등 끝에 한국소비자원에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수영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포털사이트 게시판은 질의응답의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존재하는 집단 지성의 장인만큼 게시글 삭제 조건을 엄격하게 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며 “다만 포털사들은 이용자들에게 글을 작성하기 전에 자유로운 삭제 권한이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공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송금한 기자 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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