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색채… 1세기 걸친 화가의 외길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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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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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세 화가’ 윤중식展 5월 3일∼6월

우리 나이로 100세를 맞이한
 윤중식 화백은 예술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엄정한 자기 관리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과 그림에서 일관된 맥락을 지켜왔다. 50년을 
거주한 서울 성북동 집의 마당에 뿌리 내린 150년 수령의 늘 푸른 소나무처럼 그는 당당한 현역 화가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우리 나이로 100세를 맞이한 윤중식 화백은 예술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엄정한 자기 관리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과 그림에서 일관된 맥락을 지켜왔다. 50년을 거주한 서울 성북동 집의 마당에 뿌리 내린 150년 수령의 늘 푸른 소나무처럼 그는 당당한 현역 화가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 시간의 이끼가 정갈하게 내려앉은 서울 성북구 성북동 언덕배기의 2층 벽돌집. 마루에 들어서자 단정한 양복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있던 은발 신사가 일어나 인사를 건넨다. 조급한 질문에도 그는 서두르지 않고 자신에게 익숙한 속도로 답한다. 그렇게 2시간을 훌쩍 넘겼지만 깍듯한 경어체, 꼿꼿한 자세엔 흐트러짐이 없다. 그는 바로 우리 나이로 100세를 이르는 상수(上壽)를 맞이한 서양화가 윤중식 씨(99)다. 1970년대 작품부터 지난해 완성한 4점 등 유화 70여 점과 드로잉, 구아슈(불투명 수채화), 자료를 선보이는 12년 만의 개인전이 3일∼6월 3일 서울 성북구립미술관에서 열린다(02-6925-5011). 1세기에 걸친 생존 화가의 삶과 예술을 조명한 국내 최초이자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전시다. 》
윤중식 화백이 96세의 나이에 완성한 ‘가을’(2009년 작). 그의 풍경화에선 향토적 서정성과 강렬한 색채감각, 수평적 면 분할과 수직의 이미지가 조화를 이룬다. 성북구립미술관 제공
윤중식 화백이 96세의 나이에 완성한 ‘가을’(2009년 작). 그의 풍경화에선 향토적 서정성과 강렬한 색채감각, 수평적 면 분할과 수직의 이미지가 조화를 이룬다. 성북구립미술관 제공
노화가의 여정엔 일제강점기, 전쟁과 분단 등 한국 근현대사 100년의 빛과 그늘이 새겨있다. 1913년 평양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숭실학교 졸업 후 일본 도쿄의 제국미술학교(현 무사시노대학)에서 수학했다. 6·25전쟁으로 고향과 가족을 빼앗긴 그는 1954년 첫 개인전 이후 향토성과 서정성, 강렬한 색채미를 기반으로 독자적 화풍을 구축했고 국전 심사위원과 홍익대 교수 등을 지냈다.

이번 전시에서도 찬란한 빛의 신비를 담은 노을과 일출, 비둘기 등 즐겨 그렸던 소재가 등장한다. 이 중에서도 수평적 면 분할, 수직의 이미지가 촘촘히 짜인 양식화된 풍경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랑과 평화를 향한 그의 꿈이 농밀하게 응축된, 이상화된 정경은 잔잔한 울림을 남긴다.

○ 고독하고 치열하게

윤 화백은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등과 서양화 2세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지만 그의 이름은 대중과 친숙한 편이 아니다. 평생 그림만 파고들었을 뿐 화단이나 미술시장, 언론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었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인터뷰를 수락한 화가는 냉철하고 엄격한 성품으로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섬세한 감성과 온화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그는 동아일보와의 ‘오래된 인연’을 떠올리며 기사 스크랩을 펼쳐 보였다.

“1963년 홍승면 논설위원과 속초 지역을 1주일 여행하면서 연재를 했다. 그때 삽화도 숱하게 그려서 생활에 보탰다. 나이 들면 기억력이 감퇴한다는데 난 아직도 예전 일이 생생해서 괴로울 때도 많다. 전쟁 직후 고단한 세월을 보내면서도 그림을 그릴 때 행복했다. 지금도 가장 행복한 순간은 캔버스 앞에 서있을 때, 그림이 내 생각대로 풀릴 때다. 그래서 오래 사나 보다. 다들 떠나고 너무 외로우니까 이젠 그만 가면 좋겠는데….”

고개를 떨구고 잠시 침묵하더니 화가 도상봉, 박수근과 서울 종로에서 막걸리 마셨던 이야기도 들려주고, 이중섭은 세 살 아래, 김기창은 동갑이라며 “참 좋은 화가들”이라고 일러준다. 예술이 돈과 명예를 얻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었던 시절을 공유한 동료들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 여여하고 꿋꿋하게

“나의 시간, 나만의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아끼고 간직하려 노력했다. 내 작업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2000년 발간한 화집에 적었듯이 그의 일생을 관통한 화두는 오직 예술이다. 반세기를 성북동에서 살았듯이 그는 회화의 소재나 표현에 있어서도 초지일관을 고집했다. 평론가 오광수 씨는 이를 “자신에 대한 확고한 조형의식과 애착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평했다.

헤어지기 전 악수를 청하니 손힘이 어찌나 센지 뼈를 으스러뜨릴 기세다. 그 좋아하는 그림을 놓고 싶지 않아 누구보다 자기 관리에 더 엄정했을 면모가 엿보였다. 요즘도 날마다 2층 작업실에서 붓을 잡는 화가. 그 존재가 빛나는 것은 인기와 작품값이 아니라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과의 싸움을 여여(如如)하고 꿋꿋하게 치러낸 결과다. 험난한 여정을 지나 노년의 고독이란 견고한 벽 앞에 다시 선 화가. 지나온 길이 그랬듯이, 오늘도 그림 속에서 삶의 기쁨과 살아갈 힘을 길어 올리는 평생 현역 작가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윤중식#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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